마라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

250719토

by 연하

처음 마라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것은 임용고시가 끝난 후 첫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때다.

그전까지는 마라톤이라는 용어와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하는지, 준비과정이나 그것을 대하는 마음 자세, 뛰는 동안의 고통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첫 남자친구는 같은 학교 한 학번 위 선배였다. 우리는 3학년 때와 4학년 때 연속으로 같은 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며 서로의 얼굴을 익혔다. 그는 임용고시를 한 번에 합격했고, 나는 재수 끝에 합격하면서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임용고시를 갓 마쳤을 때는 그가 여자친구가 있었고, 7월에는 여자친구가 없었기에 만나게 되었다. 우리의 공통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학교를 그만둘 수 있을까였다. 그는 유학휴직 같은 방법들을 제시했고, 나는 사업을 하거나 글을 파는 것이나 블로그 따위의 말을 했다. 임용고시 재수를 하기 전 아르바이트에서 인간에 대한 환멸을 경험했고, 주식에 대한 지식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주식을 안 하는 사람은 금융지식이 없고 돈 욕심이 없으니, 나와 같이 갈 수 없다는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에 다치지 않기 위해 전사람을 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더더욱 돈에 몰두하며 임용고시에 몰두했기에 임용고시가 끝난 발령대기기간 동안에는 완전한 돈미새로 전락해 있었다.


영화 메멘토에 나오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주인공처럼, 예전의 일기장을 모두 버리고, 그 당시 좋아하던 사람이 포함된 팀원과 같이 찍었던 인생 네 컷을 버렸다. 그렇게 한다면 알바 사장이 좋아하는, 즉,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에 유리한 사람으로 갱생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당시 나의 자기혐오가 작동되는 매커니즘은 나는 알바 사장도 싫어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 나는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라는 삼단논법, 즉 개똥철학이었다. 인지편향오류같은 것에 오래도록 빠져있었으며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일종의 정신적 자해를 했다. 새벽 6시까지 나를 깨어있게도 했으니 신체적 자해도 있었다고 본다.


과거 자의식과잉에 가깝던 나는 영화 메멘토 공부법으로 1년 동안 자아를 잊고 공부한 결과 임용고시에 합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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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헤어진 이유는 그 당시에는 내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고, 그가 장거리연애 기간 동안 내가 사는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고, 한 남자를 만나기보다 모처럼 시험에도 합격했으니 다양한, 더 나에게 잘 맞은(누가 더 잘 맞는 건지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남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사실은 그 또한 그 당시의 나에게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폰으로 바꾸거나 해외여행 가는 걸 싫어하고, 오로지 경기에서 집세 나가는 것만 생각하고, 돈을 모을 거라고 하면서 청춘을 내동댕이치는, 진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에만 찌든 그런 스물넷이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는 나의 가장 어린 날이었는데 말이야. 이렇듯 나는 점점 시스템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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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당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는 돈을 더 벌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학교에만 집중하고, 헬스장을 1년 결제해 놓고도, 크로스핏을 하고 주말에 수영을 가는 등 운동에 몰두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기 세상의 온갖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다 찾아봤다. 그때 남자친구는 너는 작가 만나고 싶어?라는 말을 헤어지는 날에 했는데, 내가 그를 얼마나 남자친구로서 존중하고 있지 않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나는 종종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나는 존중받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떠한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알바시절 나는 존중받지 못한 삶을 살았으므로.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그 시절의 나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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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는 마라톤을 함께 나가자고 했다. 그런데 나는 뛰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해서 안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그는 나와 데이트가 있기 전 친구와 마라톤을 뛰고 나와의 데이트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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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헤어지고 외로운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예전에 좋아했던 찢어버린 인생 네 컷 속의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그는 경기도에 올라오면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봄에는 말이 꽤 잘 통하는 남자와 한강에 갔고, 여름에는 얼굴은 꽤 마음에 들지만 대화코드가 맞지 않는 남자와 한강에 갔다. 가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겨울은 혼자 도쿄와 뉴욕을 갔다. 그러는 동안 그 해 여름에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5km를 어떻게 뛰지, 10km를 어떻게 뛰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작한 지 9개월쯤 되는 올해 3월에는 대회에도 나가고, 10km를 1시간 안에 뛸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하다 보니 운동이라도 꾸준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성실한 일인지, 일을 빼먹지 않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인간다움을 지탱시켜 주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남자친구가 10시만 되면 잠이 온다며 전화를 끊으려 했는데, 내가 직장인이 되어보면 알 거라고 했다. 나는 좀처럼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르는 성격이라 그때 그가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또 마침 작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읽게 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년 마라톤을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더 마라톤이라는 것의 미장센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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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에는 한 달도 안 되어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헬스장도 잠깐 멈춰놓고 글을 쓴다고 집에서 맥북 pages를 열어놓고 소설 쓰기를 시도했는데 완성된 소설은 없고, 독립출판 모임을 하나 들어가 놓고, 에세이 작업을 좀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체지방률은 30%를 향해 가고 있으며, 직장은 1,2분씩 지각을 하며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매일 출근하고 있으며, 밴드모임과 수원에 있는 글짓기 모임 단톡방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며, 그 독립출판 모임이 속해있는 모임의 대규모 모임에 오늘 저녁에 참가하기로 했다. 문예창작과 대학원이나 전문가과정도 관심이 있었는데, 고민을 하다가 등록하지는 않았다.


직장에서는 독후문예 겸 연극강사를 뽑았는데, 나도 연극이나 문학을 전공했으면 어땠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4층 복도에 다양한 문화권의 책으로 도서관을 조성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약간의 감정적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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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제는 너무 외롭기도 하고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해서 헬스장에 갔다.

그저께는 카페 갔다가 바로 옆에 있는 헬스장에 가려고 했는데, 장화만 신고 오고 갈아 신을 운동화를 안 가져와서 결국 운동을 하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갔다.


일주일, 이주일동안 비가 오는 장마철이다. 처음 이별을 접했을 땐 이 장마철이 참 무겁고 우울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나락도 락이라는 말을 하며 털어낼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


가끔은 글쓰기가 나의 우울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갑자기 신춘문예에 응모해볼까, 작가로 돈을 벌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뭐든 집착을 하게되면 병이 난다. 그래서 잘 써야겠단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쓰기로 했다. 매일 쓰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글을 매일 쓰는 것보다 운동을 매일 하는게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제 카모무늬 버뮤다 바지를 무신사 어플에 들어가서 샀다.

헬스장에 사람들을 보니 테토 남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샀다.

인스타를 1주일 정도 참은 적이 있었는데 정신 건강에 별로 좋지 않아 다시 폭풍 업데이트 중이다.

나는 좀처럼 오프라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니 온라인에서라도 시끄러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다니던 모 모임에서는 전 남자 친구와 알려지지 않은 연애를 했던 탓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 26년째 반복되고 있으므로 재테크와 근테크를 하기로 하자.

건강과 돈만 있으면 나락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확신하는 전부다. 다른 것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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