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

by 연하

이 테이블에는 아무도 정상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오히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의심하게 했다. 어쩌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정상 아닐까. 밖의 사람들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연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나름 일리 있는 생각인 것 같았다.


에어컨 바람과 술은 뒤섞여 머리를 어지럽게 했고,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테이블 위에 있는 로제 떡볶이를 종이컵에 담았다.


"잘생겼고 돈도 많아요." 그녀가 그에게 끌린 이유인 듯했다.

20살인 그 여자애는 인스타그램 dm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 일 때문에 바빠 전화는 하루에 한 번 정도 하지만, 카톡은 그래도 꽤 잘되는 편이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섹스를 한다고 했다. 문제는 그와 자신의 집은 편도로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그녀가 항상 그의 집으로 가고, 그가 그녀의 집으로 온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경기도 수원에 살고 그는 왕십리에 산다고 했다.


"몇 살인데요" 내 옆에 앉은 엘레나라는 여자가 물었다.

"26살."

나와 동갑이군.


테이블에는 대여섯 명 되는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스무 살 여자애가 하는 말을 듣고 생각나는 걸 이리저리 물었지만 대화는 왠지 천장에 달린 에어컨 날개처럼 헛도는 건조한 느낌이었다.


*


"첫 차까지 시간도 뜨는데 노래방 가실래요"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47분이었다. 거기 있는 한 남자애가 1시간 선결제를 했고, 노래방을 가서 대부분 기억에 남지 않는 재미없는 노래들을 불렀고, 소리만 꽥꽥 질러댔다. 두 명은 담배를 피웠는데 에어컨 냄새와 섞여 답답하게 했다.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도중에 밖으로 나갔는데 새벽이라 텅텅 빈 김에 추가로 받은 서비스 30분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한양대에 다닌다는 남자애와 함께 나오니 해는 이미 떠 있었고, 지하철이 운행 중이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 가기가 싫었다. 자취방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이 정도로 피곤하다면 분명 또 지하철 쇠봉에 머리를 몇 번 박고, 옆 사람의 어깨에 실수로 기대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긴 옷을 가져오지 않았기에 허벅지 반 위로 올라오는 바지를 입은 내 다리는 지하철의 에어컨에 40분 넘게 벌벌 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졸리는 마당에 병점행이 아닌 인천행을 타서 40분이 아니라 1시간 넘는 여정이 될 우려도 있었다. 짜증스러운 과거가 스쳐 지나가자 올해 임용을 다시 봐서 서울로 옮겨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는 돼지국밥집이 있는데 거기 갈래?"

한양대는 가격이 착한 곳을 알고 있다며 거기서 해장을 하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지만, 수면욕이 식욕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상태였고, 어디라도 눕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 주변에서 산다고 했지. 혼자 사니"

그는 혼자 자취를 하고 있으며 어차피 오늘 딱히 계획도 없는 듯 했다. 자고 가도 되긴 하는데 많이 비좁다고 했다.

나는 그런 거 상관이 없고, 안전이 문제라면 내가 먼저 가겠다 했으니, 별 문제는 없겠다 생각했다. 아까 이야기할 때도 그중 유일하게 '정상'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면 바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를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했고, 그 역시 같은 이유로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


자취방은 빌라들이 모여있는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는데, 아마 역 주변은 가격이 높아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과잠처럼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일단 거짓말은 아니군. 신뢰감이 상승했다.


침대에서 자도 되냐고 했고, 그는 그러라고 했다. 그도 피곤하지만 지금 자면 밤낮이 바뀌어버린다며 자기는 오늘 밤까지 한 번도 안 잘 예정이라고 했다.


눈을 뜨니 9시였고 3시간 정도 잤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돼지국밥을 먹었고, 또래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눈 후 헤어졌다.

둘 다 서로의 연락처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으므로 굳이 인스타그램 아이디 같은 것은 교환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국밥 결제를 했기에 계좌번호로 송금을 해주었는데, 예금주로 그의 이름이 떴을 때 비로소 우리가 서로의 이름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자취방에 돌아오니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갈색 마룻바닥을 따스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습하면서도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니 아늑하게 느껴졌다. 갈색 블라인드를 모두 내리니 깜깜해져 전등불을 켰다. 화장실에서 샤워한 후 복층 계단을 타고 올라가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저녁이었고 휴일이 하나 더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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