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포비아

by 연하

*포비아: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지나친 공포심을 느끼고 이를 회피하려는 심리


학교라는 공간에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 17살이 되던 해, 대구에 있는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 지망과 2 지망에는 여고를 썼지만 둘 다 떨어지고 그냥 거리가 가까운 집 앞에 있는 사람들이 안 좋다고 하는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딱히 실망하지도 않았다. 외고, 과고, 자율형 사립고, 예술고 등의 선택지들이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별도 안내를 하지 않아 나에게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한 선생님이 우리 반에 있는 공부를 잘하는 애한테 과학고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을 때였다. 그렇지만 미리 알았다고 해도 딱히 선지원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너무 가고 싶다, 나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그곳에서 3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평생에 걸쳐 학교를 싫어하게 되었다.


먼저 무용실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무용실은 지하에 있었는데 무용실 문을 열면 지하실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했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연습, 체육시간 티니클링 연습 같은 것들. 그리고 그곳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삼면으로 둘러싸여 있는 거울에서 얼굴에 흉이 많아진 나를 보며 울기 같은 것들. 화장으로 흉을 덮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피부과 의사가 당분간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여 한동안 거울을 보지 않고 다녔다. 흉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생긴 발진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내 온몸을 뒤덮었다. 의사는 치료 방법이 딱히 없다고 했고,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들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20대 중반쯤이 되면) 자연스레 가라앉는다고 말해주었다. 7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암울해졌다.


학교 체육복을 좋아하지 않았다. 온통 회색인 데다가 무늬도 없었다. 체육복 디자인은 전교생에게 악명이 높았는데 마침 다른 반에 체육복 뒤에 유성 매직으로 그림을 그려준다는 남자애가 있었다. 그 애는 7반이라고 했다 학교 복도는 대문자 I자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 반과 반대편인 그 반 복도를 지나가며 사전조사를 하러 갔다. 그 애가 그린 그림을 보니 믿음이 갔다. 그의 체육복 뒤에는 로봇그림이 있었는데, 나는 로봇보다는 조금 반려동물이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이나 풍경화 같은 것을 원했다. 하루는 석식을 먹고 양치를 끝내고 복도로 나오는 길에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고 있는 그를 발견해 그에게 가서 일상 풍경도 가능하냐고 물으니 그는 자기 반에 자기가 그린 그림들이 있다며 조금 기다려줄 수 있나고 물었다. 그는 표지가 갈색인 A4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종합장을 꺼내더니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고양이, 말, 사탕 같이 일상물을 그린 펜화가 여러 개 있었다. 나는 그가 그린 그림들 중 해변과 개를 가리키며 이런 그림을 포함시켜서 내 체육복 뒤에도 매직으로 그림을 그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해변 위에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있고, 모래사장에 개가 더위에 지쳐 누워있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다른 사람의 반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는 복도에서 그림을 그려주었고, 나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옆모습과 손의 움직임을 관찰하였다.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데다가 친절하다. 17년 인생 처음으로 두근거림을 느꼈지만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그와 비슷하게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여자애가 나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다가가 웃었고, 그도 그녀를 보며 활짝 웃으며 손을 잡았다. 마치 나는 경쟁 상대도 안된다는 듯이.


그 외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30명이 넘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야 한다는 점, 점심과 석식을 더 받으려면 급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우리 학년이 일찍 받아서 앉아서 1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점, 화장실에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데 교직원 화장실을 쓰면 선생님이 한 소리를 한다는 점, 급식실이 밖에 있어서 겨울에는 춥다는 점, 자습시간에 너무 시끄러워 이어폰을 껴야 한다는 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계속 들어서 귀가 아프다는 점, 그 노래가 질렸다는 점, 재미있는 동아리가 없다는 점 등 많은 안 좋은 것들이 있어 자퇴를 하는 건 어떨까를 생각해 봤지만, 나 말고 자퇴를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동네에 없을 것 같았다. 자퇴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벌이게 될 실랑이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자퇴를 한다고 해도 딱히 할 것 없이 지루할 게 뻔해서 사는 것 자체가 귀찮은 것이며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이 지루함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몇몇 여자애들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서로 선물을 하고 운동장 산책도 하고 서로의 반을 찾아가기도 했다. 나도 괜찮은 남자애가 있나 싶어서 한 달 동안 쉬는 시간마다 학교 복도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눈에 띄는 남자애는 없었고, 남녀분반이었다. 목요일마다 2시간씩 있는 동아리는 인문독서 동아리라는 이름으로 체호프의 갈매기나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와 같은 극본을 낭독하는 동아리였는데, 거기도 딱히 눈이 가는 남자애가 없었다.


딱히 그래서 어쨌든 이 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그리고 17년째 살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이 도시를 벗어나기로 했다.


*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예습, 복습,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수능 공부를 하는 것이었는데, 학교에서 성적표를 돌리며 사인을 하라고 했다. 그 말은 즉, 서로의 전 과목 성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한 여자 아이는 내가 공부를 잘하지만 네가 부럽지는 않고, 자신은 자기가 인정하는 여자애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할까 생각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와 말 한마디 하지 않다가 주말이 되면 세계사에 있는 종교전쟁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설명을 해달라는 전화를 해왔다. 그럴 때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줄 때 암기가 잘된다는 한 학자의 표를 떠올리며 설명을 하면서 싸가지가 없다는 평판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


제일 난감한 순간은 운동장에서 하는 체육 시간에 자유 시간을 줄 때나 수학여행을 갈 때, 체육대회였다. 그때마다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을 강제로 가지게 되었다.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으니 원래 같이 다니는 무리에 내가 추가되는 등으로 모둠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대충 알아들은 후 적당히 호응을 하였다. 아무래도 나와 영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이 도시를 탈출할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는 새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어느덧 19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계절의 시작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랑 비슷한 하루가 지나면 잊힐 자기소개서를 밤을 새 가며 완성하고, 그다음 날은 수능에 별로 도움 되지 않을, 내신에도 들어가지 않을 학교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잤다.


'탈출'


차가운 바람과 함께 오래도록 바라왔던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1화소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