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계획
26년 동안 아주 끌리는 남자를 찾지 못한 제이는 국제연애를 하고 싶어 졌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에 갔던 발리 여행에서 마음에 드는 외국인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호주 멜번에 산다고 했다. 어쩌면 제이는 자신의 미적 기준이 한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녀의 노력으로 얻어낸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그녀는 '호주 쪽을 좀 알아봐야겠어.'라고 말했다. 매사에 느린 것 같은 그녀이지만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것에는 달랐다. 사람은 본래 다양한 면모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무엇에 끌리는지 비교적 선명하게 알아채는 편이었다.
제이는 당장 결혼할 마음도 없었고, 결혼은 한국인과 하더라도, 외국인과 사귀어 보고 결혼을 해야 결혼생활이 순탄할 것 같다고 했다. 제이는 누구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제이는 마음속에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었는데.
1. 춤을 잘 추고 싶다.
2. 몸매가 좋아지고 싶다.
3. 글을 쓰고 그것을 삶의 증거로서 남기고 싶다.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 등의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질만한 욕구를 제외하고 제이만의 특징이라고 할 것은 이 3가지라고 했다.
제이가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인 제이를 배려하여 조퇴를 굳이 결재받지 않아도 수업이 끝나면 퇴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제이가 근무하는 학교는 안양에 있는 꽤 규모가 있는 학교였는데 2학기는 기간제 교사를 지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하지 않은 편이었고, 편의도 많이 봐주어서 근무하기 편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제이는 점심을 먹고 1시쯤 퇴근하여 자취방에서 글을 쓰고, 집 앞 댄스학원에서 춤을 배웠다. 일주일에 2번 힙합과 코레오를 배웠는데 한 주에 한 곡씩 나갔다 제이는 후반부 안무 배우기 전인 수요일에 혼자 2시간 정도 자취방 앞 대거울에서 연습을 헸다. 얼마 전에 글을 쓸 때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샀던 노트북 거치대 위에 맥북을 올려놓고 수업 때 찍어온 영상을 틀고 안무를 외우고 익숙해지면 표정 연습까지 해서 생동감 있게 춤을 출 수 있도록 노력했다.
춤 학원에 가지 않는 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한 날은 헬스장에 가서 2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제이는 먹는 것을 좋아했고, 근무하는 학교의 급식이 맛있었기 때문에 제이는 체지방률을 근육의 무게를 늘리는 방법으로 맞추리라 작정한 듯했다.
어쨌든 집과 학교, 헬스장, 춤학원, 가끔씩 카페를 가는 제이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한때 남자친구를 사귀려고 매주 서울을 가던 때도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을 알고, 그나마 느낌이 왔던 남자는 갑자기 삼겹살이 먹고 싶어 동네 앞 삼겹살집에 갔을 때 만난 것으로 따졌을 때 사랑은 멀리 나간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쨌든 그것은 제이가 더욱더 여행을 갈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제이는 외국에서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를 할 생각도 있었기에, 1년 정도 살 국가를 탐색할 필요도 있었다. 임용고시를 합격하여 공무원 신분으로 교사를 하고 있는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제이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난 워킹홀리데이 가려면 교사 그만두고 가야 해" 6개월 일하고 6개월 쉬고, 원하는 지역의 학교의 면접을 봐서 사는 제이를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내년에는 서울 기간제 교사 면접을 봐서 되면 서울로 방을 옮길까 해" 경기도에 살고 있는 나는 원래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교감이 마음에 안 드는 이곳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5년 정도 있어야 하는 게 싫었다.
그래도 나는 대부분의 날들은 제이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고, 미래의 월급이 보장된다는 사실에 꽤 안정감을 얻고 있었다. 제이는 가끔 자신이 정교사를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지만 이미 재수까지 한 마당에 이런 시험을 한 번 더 보는 것은 아무래도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재수 때 할 만큼 했어. 이번에도 떨어지면 정말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했어."
제이는 한때는 잠을 3시간 까지 줄이기까지 했으며, 잡생각이 많은 그녀였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집중을 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원래부터 교사에 큰 뜻을 품고 교대에 가고 임용을 친 것도 아닌 제이는, 그냥 이대로 조금 더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장 직업을 갖는 것보다 흘러가는 시간을 잡는 것이, 제이에게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나 또한 그런 제이의 선택이 그녀의 성향 상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제이와 6개월 만에 만났을 때 나에게 물었다.
"이번 겨울에 호주 어때?"
제이는 호주는 한국과 날씨가 반대이니 여름일 것이라며 운동을 해야 할 이유를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발리에서 입었던 비키니를 한 번 더 꺼낼 기회가 왔어.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학교 급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조금 절제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