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반가웠다. 안양역에서 만나 같이 갈까,라는 내 말에 금요일에 오전부터 홍대에서 쇼핑을 할 것 같다며 집으로 갈 때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금요일에 출근을 해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안양에서 홍대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원래 신규 교사가 안양으로 발령이 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나는 3월 발령이 아닌 9월 발령이었고, 희망 지역으로 선택했던 안양에 발령이 날 수 있었다.
제이는 원래 서울에서 살고 싶었지만 방은 구린데 집값이 장난이 아니라며 일단은 서울과 그나마 가까운 안양에서 살기로 했다고 했다.
클럽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제이는 이번 주 금요일 어떠냐고 물어왔다. 나는 왠지 제이와 함께라면 첫 신고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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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년 내내 기숙사에 살았고, 제이는 1학년에만 기숙사에 살고 2학년때부터는 자취를 했다. 학교 기숙사는 모든 학생을 수용하지 못했고 꽤 경쟁률이 있는 편이었다. 지역 점수와 학점을 합산하여 기숙사에 들어갈 사람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제이는 나와 같이 대구 출신이어서 지역 점수를 만점을 받았지만 학점이 워낙 낮다 보니 2학년 때는 선정되지 못하였다. 제이는 금요일은 항상 공강이었고, 공강이 아니어도 4번 결석이 F였기에 3번 정도는 항상 수업을 빠졌다.
그녀는 금요일과 토요일은 거의 학교에 보이지 않았고, 일요일 늦은 밤이나 월요일 새벽에 학교에 돌아오곤 했다.
1학년 2학기 때 기숙사 식당에서 그녀를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목요일 마지막 수업을 출석체크만 하고 빠져나가는 것 같던데 정기적으로 가는 곳이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클럽에 간 후 홍대에 있는 춤 학원에 등록했다고 했다. 학원 수업이 6시에 시작한다며 4시 30분에는 나가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조원들에게 피해가 간다며 팀플이 없는 수업만 찾아들었다.
나는 제이처럼 무언가에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한 편 나에겐 딱히 그런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게 학점을 버리게 하는 열정, 그런 것이 나에게는 없었다. 재미있지도 않은 수업을 꾸역꾸역 듣고 있는 것,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조금 아껴보겠다고 시험기간에는 기숙사 방이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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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날, 대학생이랍시고 미팅, 과팅, 각 학년들과의 대면식에 나갔다. 대학생이면 알아야 한다고 하는 술게임을 배우고 선배 몇 명과 안면을 텄다. 여자 선배들은 몇 학번에 누가 신입생을 꼬시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니 조심해라는 등의 말을 해주었다. 제이도 그때는 같은 생각이었는지 과 학생들과 몇 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과행사에도 몇 번 얼굴을 보였다. 그때는 수업도 제때제때 나오는 듯했다. 배드민턴인가 테니스 동아리도 하나 들어갔다고 말했던 것 같다. 학교 주변 식당에서 그녀가 동아리 사람들과 회식을 할 때도 몇 번 마주쳤고, 학생 식당에서 과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 것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때부터 제이가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름방학 때 그녀가 집으로 택배 보낼 상자를 1층에 내려두려고 하는 그녀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방학 때 학교에 남아있지 않는 학생들은 짐을 싸서 집으로 보내야 했는데, 아마 그녀는 집으로 가는 듯했다. 2학기부터는 아예 방에서 들어가 나오지 않거나 아침 일찍 어디를 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듯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2학년 때부터 자취를 시작해 나는 학교가 아니면 그녀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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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그녀를 막연하게 동경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그 애의 군더더기 없는 인상과 깔끔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옷 스타일도 좋아했다. 그녀는 과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는데, 피한다기보다는 그녀의 흥미를 끄는 다른 일들이 이미 많아 미처 어울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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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그녀와 접점이 없었던 나는 미처 그녀에게 밥을 같이 먹자거나 따로 말하지 못했다. 한때 그녀에게 "우리 나가서 밥 한 번 먹자"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왠지 나에게 약간은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녀는 자신과 내가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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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그녀에게 연락을 한 것은 내가 첫 번째 자취를 시작했던 초등교사가 된 후 발령 첫 해였다. 카카오톡 프로필을 둘러보던 중 환하게 웃고 있는 제이의 사진을 보았고, 오히려 지금 그녀는 나를 만나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녀는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대학생 때의 그녀는 항상 바빴기 때문이다. 임용 공부를 하면서 답답할 때마다 홍대로가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제이는 클럽 이야기를 꺼냈고, 처음으로 홍대를 가게 된 것이다.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만나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