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의 보름달
포르투, 포르투, 나의 포르투.
어떤 장소는 단 하루를 있어도 평생 가슴에 남는다. 포르투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하얀 슈퍼문, 한밤 중의 에스프레소, 그리고 달빛 아래 탱고를 추는 사람들……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떠나야 했던 도시. 포르투의 이상하고 낭만적인 기운은 날 따뜻한 공기 속으로 밀어 넣었다. 포르투는 모든 사람들이 따뜻한 공기 속에 들어가 둥둥 떠다니는 듯한 도시였다.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이상하게 아련한.
그 해 봄, 난 교통사고를 당했다. 여느 때와 같은 차림으로 출근길에 나선 때 였다. 블라우스와 펜슬 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나는 노트북을 한 손에 든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또각또각 집앞을 나섰다. 귀를 막았으니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길은 마냥 조용하게만 느껴졌다. 골목 모퉁이를 돌자마자 예상치 못한 거센 힘이 나를 뒤에서 쿵 하고 박았다. 나는 거의 날아가다시피 앞으로 넘어졌다. 노트북은 케이스에 넣지 않은 채여서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고, 하이힐은 벗겨진 채 뒤에서 나뒹굴었다. 차가 느린 속도로 달려서 망정이지 아니었음 허리마저 두 동강이 날 뻔했다.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주변에 있던 경비 아저씨와 운전하던 할아버지가 부축했다. 일어나고 보니 내가 설 수 없단 걸 알았다. 점잖은 할아버지는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서지도 못하고 정신도 못 차리는 날 우선 차에 태우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차에 타자 회사에 연락해야겠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부장님께 오늘 출근 못할 것 같다고 사고 경위를 메시지로 보내고 나자 그제야 눈물이 났다. 주룩주룩 말도 없이 눈물만 계속 흘리는 날 할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해 휠체어를 태워 응급실에서 진료를 볼 동안 내내 곁을 지켜주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에 의해 몸이 날아가는 충격은 생각보다 강했다. 난 골절 진단을 받고 한 달 간 깁스 신세를 지게 되었다. 집 밖을 나가기는 커녕 사고 트라우마에 밖이 무섭기만 했다. 회사에선 당장 일 할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지만 사고를 당하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는 한 달 간 재택 근무하는 걸로 회사와 합의하고 오랜만에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로 내려갔다. 사고로 몸만 다친 게 아니란 걸 부모님 댁에서 지내며 알았다. 매일 쓰던 일기를 쓸 수 없던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쉴 거면 제대로 쉬자고, 스스로에게 절필 아닌 절필 선언을 했다.
포르투는 그 해 가을에 갔다. 발이 다 낫고, 회사에 복귀하고, 남자친구가 생긴 후였다. 두 계절이 지나 많은 것이 바뀌어 그런지 오랜만에 혼자 여행하려니 어색했다. 기차로 포르투 역에 도착해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마리아는 포르투갈인 특유의 짙고 검은 곱슬머리에 낮고 느긋한 말투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급하던 사람도 차분히 가라앉게 되었다. 마리아는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집을 소개해주었다.
“버스가 주말에 없는 지 몰랐어요. 내가 나갈 수가 없어서 미안해요. 화장실과 주방 사용하고 싶은 대로 사용해요. 그리고 옆 방엔 게스트가 한 명 더 있어요. 지금은 나갔고 아마 밤이나 들어올 거에요.”
요새 에어비엔비는 숙소만 덩그러니 있고 게스트가 알아서 입퇴실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리아의 집은 정말 마리아가 살고 있어서 친구 집에 머무는 기분이 들었다. 난 짐을 놓고 잠시 집을 둘러보았다. 마리아의 집은 예술적 감각이 돋보였다.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인 그의 취향이 온전히 집안 곳곳에 베어 있었다. TV가 아니라 초록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보이게 소파를 배치했고 한 켠엔 작업용 테이블을, 그 뒤론 원을 형이상학적으로 그려놓은 큰 그림 두 점을 걸어놓았다. 내 방엔 지나칠 정도로 깔끔한 침대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리아는 향에 불을 붙였다. 은은한 향 냄새가 온 집안에 스며 들었다.
마리아 집에서 바다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바다가 보고 싶어 길을 나섰다. 사진으로만 봤을 땐 비키니를 입고 당장 뛰어 들고 싶은 바다였는데 실제 포르투 해변은 시커먼 바위가 가득하고 흐린 하늘 아래 파도는 거셌다. 이런 날씨에 해수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해변을 걷던 나는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낚시꾼을 만났다. 낚시꾼은 기다란 낚시대를 바다에 널어놓고 왼손은 울타리에, 오른손은 허리춤에 올려놓은 채 살짝 울타리에 기울여 서 있었다. 먼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은 상념에 젖은 건지 아니면 삶의 무게를 담담히 견디고 있는 건지 구분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반대편에서 방파제를 내려다보며 성난 파도를 한참 바라보았다. 방파제의 파도는 해변에서 본 것보다 훨씬 활발했다. 해가 거의 지고 해변가에 늘어진 건물들에 하나 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낚시꾼은 돌아가기 위해 낚시대를 정리했다. 나도 돌아갈 시간이었다. 왠지 모르게 이 성나고 어두운 바다 앞에서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짐을 다 꾸린 낚시꾼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예의의 의미인 것 같았다. 아기 고양이를 받아들 듯 조심히 핸드폰을 받아 든 그는 이것이 나의 가장 소중한 사진이 될 지도 모른다는 태도로 정중히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내 곁을 둘러싼 따뜻한 공기가 허리춤까지 올라왔다.
숙소에 돌아오니 마리아와 다른 게스트가 있었다. 게스트는 키가 크고 이마가 넓어지려 하는 유러피안 남자였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보았음 직한 흐릿한 인상에 별 다른 이미지가 남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거실 식탁에서 수다를 떨다 와인을 따고, 각자 들고 온 간식을 안주로 한 잔 두 잔 마시기 시작했다. 사는데 기술적으로 필요한 대화는 아니었다. 누가 무슨 일을 하고 돈을 얼마 받고 같은 이야기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삶,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초에 물을 주듯 가끔씩 사람의 정신에 꼭 필요한 그런 이야기들. 마리아는 취기가 오르니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그거 알아? 내일 슈퍼문이 뜬대.”
“슈퍼문?”
“응. 달 있잖아. 아주 크고 하얀 보름달이 뜰거야.”
“여기서 볼 수 있어?”
“볼 수 있지. 아마 한국에서도 볼 수 있을 지 몰라.”
포르투갈에서 내일 밤, 슈퍼문이 뜨는 우주쇼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꽤 진지하고도 호기심 있게 이야기를 꺼낸 마리아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지 알아본다며 기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난 한국에 없으므로, 별 의미는 없었지만 궁금하긴 했다.
“한국에선 잘 안 보일 것 같아.”
우린 다시 와인 한 모금을 하고 우주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또 종교에 관한 이야기도 한 것 같다. 대화의 한 자락 한 자락은 와인과 함께 흘러가고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따뜻한 기운 만큼은 꽤 오랫동안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새벽까지 10년지기 친구들 마냥 웃고 떠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나니 이미 다들 나가고 집에 없었다. 한국에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남자친구가 새벽 일을 하며 부른 노래를 남겨놓았다. 선선한 새벽 공기와 공기를 가르며 내뿜는 입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노래였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노래를 들으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 한국에 가기 싫다. 한국에 가고 싶다. 때론 상반되는 두 마음이 함께 공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늘이 맑은 날의 포르투는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모양새였다. 바다는 언제 성이 났었냐는 듯 고요하고 잔잔하게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바다를 끼고 달리다 강변으로 진입하니 거대한 아치 철교가 강 양쪽의 도시를 우아하게 이어주고 있었다. 포르투는 돔 루이스 1세 철교가 아니었다면 꽤 다른 이미지의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양쪽의 강변엔 오래된 건물들이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커다란 벽돌로 아치를 쌓아 벽 혹은 지반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은 모습이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며 본 한강변의 느낌도 있었다. 물론 집의 스타일이나 디자인은 서울과 매우 다르지만 강의 범람을 대비하기 위해 높은 지대를 만드는 지혜는 비슷했다.
구시가지의 골목은 마음 놓고 길을 헤매도 좋을 만큼 볼거리가 많았다. 거리 곳곳 주변경관과 어울리게 그려놓은 벽화하며, 언제 지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어 내가 그 시절로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상점들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해리포터의 영감이 되었다는 렐루 서점, 거리 곳곳의 기념품 가게, 식당 등등 모든 장소가 나무 손잡이 하나까지도 반짝반짝 윤이 났다. 정처 없이 길을 걷다 성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시간을 보니 얼추 미사 시간이 가까워진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온갖 금 장식으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복음을 읽고, 성체를 받아 모시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내 옆에 있던 포르투갈 아줌마는 빛나는 미소를 하고 나에게 볼키스를 선사했다. “평화를 빕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성당을 나와 골목에 있는 에끌레르 집에서 이제까지 먹었던 중 가장 맛있는 에끌레르를 먹고 클레리구스 탑 앞의 공원에 누워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했다. 여기가 너무 좋아 한국 가기 싫어질 정도라고 하니 다정하게 말한다.
“그럼 내가 가면 돼지.”
숙소로 돌아오니 마리아가 집에 있었다. 마리아는 날 보자마자 신이 난 듯 물었다.
“우리 달 보러 갈래? 슈퍼문!”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마리아가 차를 시내 쪽으로 몰았다. 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좀 전에 여기를 떠나오면서 속으로 ‘안녕’ 인사 했는데, 또 여길 오게 되네.”
“그런 말은 쉽게 하지 않아도 돼.”
마리아는 달을 잘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으려했다. 우리는 철교 위를 지나 높은 산으로 계속 달려갔다. 위로위로. 좀 더 위로. 닿을 수 없는 별에 손을 닿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처럼 마리아는 계속 위쪽으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달은 좀체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서 달아나려는 듯 달은 점점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린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마리아는 에스프레소가 먹고 싶다고 했다. 밤 12시에 에스프레소라니. 그러나 놀랍게도 야외 카페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마리아는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했다. 영국 남자인 전남편과 아들은 런던에 살고, 자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가스등 아래 주름진 그녀의 얼굴엔 고독이 베어났다.
마리아와 난 구시가지를 함께 걸었다. 낮에 왔을 때와 밤의 느낌은 매우 달랐다. 거리엔 사람이 없고 매우 고요했다. 클레리구스 탑 위쪽으로 하얀 달이 보였다.
“이제서야 보이네. 하지만 저걸 슈퍼문이라 부를 순 없어.”
달은 이미 하늘 꼭대기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유리같이 새하얀 빛을 청초하게 내뿜고 있었다. 마리아는 내게 인상 깊은 카페를 하나 더 보여주었다. 벽에 온갖 골동품을 균형감 있게 전시해 놓았고, 한쪽 벽면에 진짜 자동차 상판을 걸어 놓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였다. 거리엔 사람이 없었지만 카페 안엔 사람이 많았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사람들은 왁자지껄한 파티를 즐기는 듯 했다.
“하나 더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카페에서 나오더니 마리아는 바로 그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성큼성큼 밟고 올라갔다.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는 보폭이었다. 조명 하나 없는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며 살짝 무서워졌다. 그러나 2층에 올라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눈앞에 보인 건 한 편의 동화였다.
분홍빛 어스름한 조명 아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탱고였다.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음악을 느끼는 남자와 여자. 천천히 발을 맞추며 큰 원형으로 도는 여러 커플들. 달콤한 음악에 맞춘 정갈하고 진지하고 집중한 스텝. 서로가 매우 소중한 무엇인 양, 조금 더 세게 쥐면 거품처럼 사라질까 부드럽게 파트너를 안고 하얀 달 아래 춤을 추는 사람들. 요정의 마법이 땡하고 깨지면 모두가 멈춰버릴 것 같았다. 꿈속에 있는 것처럼 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밀롱가야. 서로가 원하는 상대와 자유롭게 춤을 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믿을 수가 없어. 꿈꾸는 것 같아.”
마리아는 말 없이 웃었다. 하얀 달, 한 밤의 에스프레소, 밀롱가를 추는 사람들. 우리는 지금 마법의 세계에 와 있다. 그리고 그 때 무언가 내 속에서 알을 깨고 나오듯, 껍질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다음 날 새벽, 마리아는 날 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차 한 대 없는 불 켜진 터널을 통과하는 것은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에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마법의 나라에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대륙의 서쪽 끝에서 다시 동쪽 끝으로. 마리아는 내 짐을 차에서 내려주고 내가 샌딩 비용을 지갑에서 꺼내는 걸 조용히 기다렸다. 두 손을 맞잡고 수줍고 어색하게 미소를 짓던 마리아. 돈을 건네자 더 수줍은 손으로 건네 받던 마리아. 나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그녀를 안았다.
남자친구에게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떠나기 싫으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자, 무엇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펜도 없고 종이도 없어 소셜 미디어에 무작정 떠오르는 말들을 이륙하기 전까지 뱉어냈다. 아마도 그건 하얀 달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교통사고가 나고 일기를 쓰지 못하게 된 이후 6개월 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다. 안녕이란 말을 쉽게 하고 싶지 않다. 때론 그리운 것은 지구의 양 반대쪽에 있다. 그러니 어디든 가도 내가 그리운 걸 만날 수 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순간이 떠오른다. 난 밀롱가를 추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 하얀 달 아래 에스프레소를 마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