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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Oct 21. 2022

여행은 길을 잃을 때 시작된다

오가키 가는 기차

 한숨이 나왔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서 있는 곳에서 한 바퀴 뱅 돌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플랫폼 사이로 사람들이 파도치듯 들어왔다 열차가 오면 솨 하며 사라졌다. 알아듣지 못하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한 발자국 내딛지 못한 채 연거푸 한숨만 쉬었다. 기차에서 쪽잠 자느라 구겨졌던 몸은 피곤이 풀리지 못한 채 다시 굳어졌다. 나는 길을 잃었다. 

 가야할 곳은 오사카, 아니 교토, 아니 나고야인가. 종국엔 모두 가야할 곳이지만 지금 당장 가야할 곳은 나고야였다. 정신차리고 나고야로 향하는 기차가 어디에 있는지 살폈다. 노선을 보니 내가 내린 곳에서 직행은 없는 듯하고, 빙 돌아서 가는 노선이 가장 가까운 시간에 있었다. 오가키. 오가키,라는 곳에서 갈아타면 나고야로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우선 오가키로 가자. 수중에 땡전 한푼 없는 신세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었다. 


 30분 전, 난 오사카행 기차에서 자고 있었다. 내 생에 스스로 돈을 벌어 떠난 첫 해외여행이었다. 대학교 단짝 친구와 의기투합해 여행사에서 항공, 호텔, 기차표가 포함된 자유여행 패키지를 예약하고 하루하루 공들여 계획을 짰다. 이른바 도쿄-오사카 4박 5일 패키지, 도쿄에서 3일 머물고 밤기차로 오사카로 이동해 2일 머무는 스케줄이었다. 일본의 대도시는 여자친구들끼리 가서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도쿄의 화려함에 잔뜩 취한 우리는 흥분했고 이 여행이 완벽하게 끝나리라는 데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오사카에선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가리란 원대한 계획까지 세우고 부푼 마음으로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날새는 줄 모르고 잠을 자던 우리는 열차가 정차했을 때 깨우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이 들어와 어서 나가라는 손짓으로 승객들을 내보냈다. 영문도 모르고 잠이 덜 깬채로 기차에서 내렸다. 나고야역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멍하니 서 있으니, 승무원이 옆칸을 가르켰다. 사람들은 짐을 들고 이미 좌석이 꽉 찬 객실로 들어가 좀비처럼 빈 공간을 채웠다. 

 “기차가 분리되나봐요.”

 누군가 말해줬다. 같은 칸에 타고 있던 한국 사람들이 알아보니 기차가 중간에 분리되어 간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탄 객실이 분리되는 칸이었다. 미리 알려주지 않은 여행사에 불만이 솟구쳐 올랐다. 여행사 직원은 같은 패키지를 예약한 몇 명의 한국 사람들을 모아 한꺼번에 오사카행 기차를 태우고 자기 할 일을 다 한 채 이미 사라진 뒤였다. 1박을 기차로 이동하는데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게 된데다, 자리까지 이동해 오사카까지 서서 가야했으니 당연히 화나는 상황이었다. ‘서울가면 항의해야지’란 생각을 하며 가방에 손을 넣으려 움직였다. 그 때, 무언가 잘못되었단 걸 느꼈다. 

 “힙색이 없어.”

 나는 당시 간단한 소지품만 들어가는 힙색을 엉덩이에 차고 다녔다. 잠을 자며 불편해 잠시 풀어놓았는데 그걸 놓고 내린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힙색에 지갑이 있었다. 나는 아직 출발하지 않은 열차에서 튀어나가 급히 직원을 불러 손짓발짓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심각해보였는지 이미 분리된 객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다른 직원이 “무슨 일이에요?!”하며 뛰어 나왔다. 일본어를 알아 들은 건 아니지만 정황상 그 말은 분명 ‘무슨 일이에요’ 였다. 상황설명을 들은 직원은 다시 객실로 들어갔고 좋은 소식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자다가 엉겁결에 옆칸으로 옮기고, 가방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채고 다시 열차 밖으로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0분 정도 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동안 나는 하늘이 무너졌다. 

 잠을 제대로 못 자 짜증이 얼굴에 푹 패인 사람들은 오사카로 달리는 기차에서 아침이 밝아오는 풍경을 보거나 서서 졸았다. 나와 내 친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무겁게 논의했다. 나는 가방을 누가 훔쳐 갔을리는 없다고 보고 나고야 역 분실물 센터로 가서 다시 확인을 해보겠다고 했다. 친구는 오사카 가기 전 교토 역에 내려서 날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나고야에 도착하면 힙색이 있을 거란 희망 하나로, 난 다음 역에서 무작정 내려 친구와 이별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오가키로 향하는 기차에 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티켓 없이 무임승차하는 신세라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아무 좌석에 앉았다. 곧이어 덩치 큰 일본 남자가 내 옆에 앉았다. 일본 사람들은 대게 조그만데 이렇게 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면도를 했지만 거뭇거뭇한 수염 자국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난 눈마주치지 않으려 조심했다. 혹시나 야쿠자면 큰일이잖는가. 

 하지만 사람의 생존 본능은 참으로 강인했다. 이 열차가 오가키로 가는 게 맞는지 한번 더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내 옆자리 남자가 야쿠자인 것보다 더 간절했다. 툭툭 치는 건 실례가 될테니 언젠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물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그를 바라봤다. 그는 내 쪽을 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로 포문을 열었다. “스미마셍” 남자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영어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문장을 고르고 골라 물어봤다. “이 열차가 오가키행 열차입니까?” 다행히 그가 알아듣고 맞다고 해주었다. 나는 두 번째 질문을 했다. “오가키에서 나고야로 갈 수 있지요?” 그가 다시 맞다고 해주었다. 나는 안심한 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연발했다. 이번엔 그가 나를 바라봤다. 내가 쳐다보니 나에게 “웨어 아유 프롬?”이라고 물었다. 내가 “아임 프롬 코리아” 라고 답하자 그가 잠깐의 뜸을 들였다.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침이 꿀꺽 넘어갔다. 한국인이라는 게 뭐 어떻지? 역사에 민감한 사람인가?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Welcome to Japan.”

 웰컴 투 재팬. 길 잃은 강아지가 따뜻한 손길을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일까. 환영한다는 투박하지만 진심어린 말 한마디에 난 불 위의 마시멜로우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살면서 이 나라에 온 걸 환영한다는 말을 들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모두가 아는 말이지만 여행하면서 그 나라 현지인에게 생각보다 듣기 쉽지 않은 말이 ‘웰컴’이다. 그 만큼 마음이 없으면 쉽게 나오기 힘든 단어인 것이다. 18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 후로 아직까지도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용기 있게 말을 건넨 그는 알고보니 일본 남부 지방에서 홋카이도까지 기차 여행을 하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건 그가 정말 쑥스러워서 였던 것이다. 순한 곰처럼 생긴 청년과 길 잃은 강아지 같았던 나는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순간 여행은 길을 잃을 때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진정한 여행은 비행기를 탄 후나, 일본 땅에 도착해서 부터가 아니라 잃어버린 지갑을 찾으러 예기치 못한 여정을 떠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여행이란 모름지기 오딧세우스처럼 외눈박이 거인도 만나고 폭풍우도 헤치며 나아가는 것임을, 기차 안 청년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살면서 가끔 내가 진짜 여행을 시작했던 그 기차 안을 떠올린다. 내 인생이 길 잃은 여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건 3년 간의 백수생활이 끝나고도 한참 후 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PD에 도전하기 위해 야심차게 언론고시를 시작했다. 결과는 별볼일 없었다. 일반 기업에도 간간이 이력서를 넣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대기업 공채가 시작되면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원을 했다. 서류에서 탈락하면 ‘나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니까’라는 명목으로 자기 위안을 삼았다. 방송사 시험에서 탈락하면 ‘아직 어리니까. 좀 더 공부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위로로 자신을 달랬다. 

 난 취업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알지못했다.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온전한 책임을 지는 것인데, 그 무렵의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순진해 자기소개서에 감상적인 소설이나 패기만 잔뜩 버무려 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PD가 정말 내 꿈이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 시기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혹은 남들에게 말할 명목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아무리 자기 위안을 해도 지원하고 떨어지길 수차례 반복하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고민했다. 백수생활 2년 정도 되었을 무렵, 결단이 필요했다. 고상하게 ‘고시’라는 이름이 붙었을 지언정 어차피 취업을 위한 시험에 불과했다. 박사 학위 딸 것도 아닌데 입사를 위한 시험에 그렇게 오랜 시간 목을 메는 건 아니라고, 이 정도 해서 안되면 시험이든 PD든 내 적성이 아닌거라고, 쓰디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만 다시 1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떨어진 자존감은 운동으로, 여행으로 극복하고 백수 경력 3년을 꽉 채우고 연말에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주변에 나 자신밖에 없다. 다 지나고 나서 보니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처음으로 길을 잃었던 때가 그 시기였다. 역설적이지만 백수 경험이 없었다면 회사 생활 13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일이 힘들어 ‘때려칠까’ 생각할 때마다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러면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놀면 뭐하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 때 깨달았다. 3년 동안 아무 것도 안한 게 아니었다는 걸. 길을 가기 위한 에너지를 스스로 비축하고 있었다는 걸. 길을 잃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나만의 여정을 찾는 과정이었음을 지나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해야 하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시기를 겪으며 사람은 성장한다. 암울하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 시절은 나 스스로에 대해, 인생에 대해, 내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간이었다. 


 나고야에 갔지만 결국 지갑은 찾지 못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돈은 필요해 친구에게 우선 5만원을 빌렸다. 환전하려 오사카 시내에 있는 아무 은행에 들어가니, 안내원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보았다. 당시 우리나라 은행엔 입구에서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 받아보는 정교한 서비스에 살짝 긴장한 채 원화 환전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안내원은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은행을 가로질러 나를 푹신한 소파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여행자 차림으로 일반 창구도 아니고 VIP가 앉는 듯한 넓직한 좌석에 앉아 있으니 영 어색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던 것 같다. 정갈한 양복을 입은 남자 직원이 내가 앉은 창구 맞은편에 와 앉았다. 그리고 영어로 첫 말문을 열었다. 

 “우리 은행에선 원화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도대체 그럼 나를 여기 왜 앉힌 거야,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말이 나왔다. 

 “하지만 원화를 취급하는 은행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친절함에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직원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메모를 하며 말을 이었다. 

 “원화를 취급하는 은행은 00은행이라고 하는데, 오사카에 총 3군데 지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오사카 공항에 있습니다.”

 오사카 공항. 시내에서 한 시간은 전철을 타고 가야 하는 곳이다. 이미 지갑 찾느라 하루를 소진했고 내일은 출국하는 날이었다. 그야말로 환전하면서 사요나라 할 판이다. 그럼 그렇지. 지갑을 잃어버릴 때부터 모든 게 꼬이더니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오사카를 떠나게 생겼다. 직원은 아주 친절하게 공항 지도까지 그리기 시작했다. 

 “오사카 공항 0층에 가셔서 이쪽 방향으로 쭉 가시면 복도 끝에 있습니다.”

 내가 길을 잃어버릴까봐 층별 구조까지 자세하게 그리며 은행의 위치를 알려주는 직원이 너무 고맙지만 난 이미 절망에 빠진 상태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제 그만’이라고 말했다. 직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지점은 도톤보리에 있습니다. 도톤보리의 00으로 가시면……”

 도톤보리! 그나마 나은 위치다. 30분 정도만 가면 갈 수 있는 곳이라니 그제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다시 이동을 해야하긴 하지만 어쨌든 시내니 이런저런 구경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직원은 1, 2 번호까지 매기며 지점을 적어주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3을 적었다. 

 “세 번째 지점은 우리 은행 바로 맞은 편에 있습니다.”

 일본어만 할 줄 알았다면 ‘장난하십니까’ 라고 말했을테다. 반전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이 프레젠테이션은 어찌나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지, 마지막 해피엔딩이 그렇게 놀라울 수 없었다. 왜 첫 번째에 맞은 편 지점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공항에서나 시내에서 환전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지점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준 친절함에 난 감동했다. 직원은 은행 위치를 적은 종이를 곱게 접어 나에게 건네주고 정중히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 담백하고도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다른 어느 나라, 어느 회사에서도 그런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 경쟁사에서 취급하는 서비스를 자기를 찾아온 고객에게 알려주다니.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말 잠재고객을 끌어들이는 행위지 않은가. 만에 하나 그 직원이 없었다면 난 바로 앞에 있는 은행을 두고도 뱅뱅 돌아 결국 환전을 하지도 못하고 지친 채로 여행을 끝냈을 것이다. 


 나 때문에 모든 일정이 어그러진 친구는 내색은 안했지만 어지간히 속상했을 터였다. 그런 친구에게 차마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행운인 것 같단 말은 끝끝내 꺼내지 못했다.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기차에서 웰컴 투 재팬 청년과 오사카의 은행 직원을 만날 수 있었을까? 물론 나름의 즐거운 여행을 했겠지만 두 사람을 만나서 느낀 충만함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여정에 단비같은 이정표가 되어준 친절함은 길을 잃어야 경험할 수 있던 것이니까. 두 사람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에 감사함으로 남아 있다. 

 인생에서 길을 잃는 순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난 때로 살면서 허무하거나 지치는 때가 올 때, 오가키로 향하는 기차를 떠올리며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혼란이 오거나 지친다는 건 내가 방향을 찾기 위한 여정 위에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리고 어떤 인연을 만나 충만한 기쁨을 느끼게 될지 오히려 기대가 된다. 오가키로 향하는 기차에서 바라 본 아침 햇살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막 항해를 시작한 배 위에 올라타 바다의 환영을 받는 선원과 같았다. 그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두근거림만 남았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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