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영 Oct 21. 2022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야

에딘버러의 태양

 인도 친구들을 좋아한다.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면서 다른 여느 나라 사람보다 인도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워낙 인구가 많아서인지 인재도 많다. 내가 겪은 인도인들은 한국인들과 기질이 비슷했다.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똑똑하고 정이 많았다. 출장을 갔다 여러 인도 사람들을 만났다. 출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다른 회사 소속에 하는 일도, 직급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똑똑하고 재치있다는 점에선 모두가 비슷했다. 

 오전 세션을 마치고 점심 시간에 인도 친구들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같은 나라 사람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생긴 것도 조금씩 달랐다. 피부 색이 어둡고 동남아시아 사람 같은 외모가 있는가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이목구비 짙고 머리숱이 많은 외모도 있었다. 교육을 열심히 받은 후라 다들 생기있고 들떠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상대방에게 질문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날씨 이야기가 나왔다. 

 “오, 너 남부 지방 출신이야? 거긴 우기가 몇 달이야?” 

 “아 넌 북쪽이구나? 거긴 여름에 얼마나 더워? 몇 도까지 올라가?”

 그들은 날씨를 물을 때 ‘얼마나 더운지’, ‘얼마나 비가 많이 오는지’ 뭉뚱그려 물어보지 않았다. 우선 상대방이 어느 지역출신인지 묻고, 비가 오면 정확히 ‘몇 달’ 오는지, 더우면 최대 ‘몇 도’까지 올라가는지 측정 가능한 단위로 물어봤다. 내가 그들의 대화를 골똘하게 듣고 있자, 며칠 사이 친해진 메그하가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우리나라 너무 커서 지역마다 날씨가 너무 다르거든. 정확하게 물어봐야 돼.” 

 그제야 이해 갔다. 나에게 더운 날씨가 어떤 사람에겐 덥지 않을 수 있다. 난 ‘비가 많이 오네’라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 수 있다. 한 사람이 나고 자란 곳의 계절, 날씨, 기후가 지역마다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경험하지 않고 상상 만으론 알기 어렵다. 낯선 기후를 겪어보면 그곳의 분위기까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한다. 다양한 여행지를 갔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곳도 색다른 기후를 지닌 곳이었다. 빛구멍 같은 태양이 어스름한 온기를 전하는 곳. 오래된 돌의 도시. 에딘버러였다.


 겨울이었다. 한밤 중에 에딘버러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아무리 여행을 자주 다녔어도 낯선 곳에 밤에 도착하는 건 언제나 무섭다. 운전기사에게 길을 물어보니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억센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며 “발모어를 따라가요.” 했다. 발모어? 무슨 말인지 모른 채 아저씨가 지도에 표시해 준 길을 따라 툴툴 걸었다. 도시의 흔한 네온사인 하나 없는 컴컴한 밤길이었다. 캐리어 바퀴가 바닥에서 구르는 소리가 도르락도르락 요란하게 거리에 울려퍼졌다. 사람들이 내 소리에 깨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담한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하고 고풍스러운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조명에 나무로 만든 오래된 가구들과 카펫이 잘 어우러졌고, 벽에는 어느 귀족의 초상화가 크게 걸려 있었다. 작지만 중세 귀족의 저택에 초대받은 것 같은 고급스러운 호텔이었다. 실내에 있는 모든 것이 인테리어라기보다 실제 문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한옥을 깔끔하게 개조한 호텔에 들어서면 그런 기분일 거라 생각했다. 배정받은 방은 맨 위층에 있었다. 그렇게 작은 방은 도쿄의 비즈니스 호텔 이후로 처음이었다. 빨간머리 앤의 방처럼 한쪽 벽이 지붕의 경사진 면이었는데, 비탈진 지붕에 창문이 있고 그 아래 책상이 놓여져 있었다. 작은 책상 옆엔 TV도 함께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창문과 TV를 함께 볼 수 있었다. 작아서 답답하기보다 아늑한 분위기였다. 짐을 풀고 씻자마자 쓰러지듯 잠을 잤다. 

 눈을 떴다. 분명 일어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아직 밖이 컴컴했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을 그렇게 많이 잔 건가? 벌써 밤이라니? 아니, 아침인가? 도대체 시간을 알 수 없어 침대에서 빈둥거리다 밖을 보니 날이 밝고 있었다. 지붕에 달린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도시 저편으로 얼핏 바다가 보이고 여명이 밝아왔다. 오전 10시였다. 기가 막혔다. 10시에 해가 뜨는 도시라니. 

 주섬주섬 옷을 입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식당은 타이타닉 영화에서 보던 티타임 장면 같았다. 사람이 이미 많았지만 번잡하지 않고 우아했다.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모두가 예의있게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주고 “Coffee? Or tea?” 물어봤다. 영국에 왔으니 차를 마셔야지. “Tea, please.” 주문하고 음식이 있는 곳으로 가보니 정갈하고 깔끔한 영국식 아침식사, ‘잉글리쉬 브랙퍼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달걀 프라이, 토스트, 소시지, 베이크드 빈 등등을 조금씩 퍼담았다. 이미 알고 있는 메뉴인데도 하나같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특히 베이크드 빈은 충격적일 정도로 맛있었다. 부대찌게에 들어가는 그 통조림이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다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꽃같은 향기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 영국이라는 나라가 좋아지려고 한다. 

 에딘버러 성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호텔 문밖을 나서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길바닥의 돌이었다. 몽돌몽돌 자갈돌이 길에 깔려 있었다. 틈 하나 없이 정교하게 돌로 포장된 길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였다. 어젯밤 캐리어 끄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돌을 따라 걸었다. 프린스 스트리트를 지나 본격적인 구시가지에 들어서자 기다란 곡선 형태의 중세풍 거리가 내 앞에 펼쳐졌다. 도시 자체가 색바랜 오래된 돌들의 향연이었다. 노란 태양 빛을 받아 거리는 갈색으로 빛났다. 오전 11시가 마치 우리나라 겨울의 아침 8시 같았다. 이제 막 뜨는 해는 ‘너희를 잊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듯 간신히 빛을 보내주고 있었다. 해가 아주 멀리 있었다. 그제야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같은 태양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빛은 아주 좁고 어두웠다. 

 베트남에 갔을 때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내내 끼고 있었다. 얼마나 빛이 강한지, 선글라스를 껴도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때 태양은 온힘을 다해 세상을 데우고 있었다. 베트남의 태양이 전자레인지 열기 같았다면, 에딘버러의 태양은 마치 손전등 불빛 같았다. 베트남에선 해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에딘버러의 태양은 똑바로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로열 마일 거리에 서서 한줄기 빛을 하늘에서 받고 있으니, 마치 내가 연극무대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300년 전 사람들의 온기가 묻어 있는 돌, 그 위를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추는 해. 세상이 나에게 ‘네 대사가 나올 차례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좀 더 정제된 언어가 있었다면 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시가 되어 나왔을 것이다. 어떤 장소는 존재만으로도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왜 에딘버러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탄생했고 세계적인 예술 페스티벌이 열리는지 알 것 같았다. 어디선가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퍼졌다. 겨울이라 사람 없는 거리에 구슬픈 멜로디가 오래된 돌 위를 굴러다녔다.

 에딘버러 성을 보고 다시 프린스 스트리트에 내려오니 오후 4시 가량이었는데도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오전 10시에 와서 오후 4시에 가버리는 태양. 6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따뜻한 온기를 전달해 주고 가는 해는 마치 너무 바쁜 엄마가 자식을 잠깐 돌보러 왔다 가는 느낌이었다. 프린스 스트리트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있었다. 치장한 순록이 거리에 앉아 쉬고 있고, 메리 고라운드가 아름다운 빛을 내며 돌고 있었다. 뮬드 와인과 익힌 감자를 다른 사람들처럼 길거리에 서서 먹으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크리스마스가 머지 않은 날이었다. 해가 지자 마자 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축축 처졌다.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겪어보지 못한 피곤함에 아찔한 태양 빛이 그리워졌다. 

 다음 날 거리에 나오자 너무 일찍 떨어지는 해 때문에 낮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그 때 시계탑이 멋진 웅장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에딘버러의 랜드마크, 발모럴 호텔이었다. 버스 기사가 ‘발모어를 따라 가라’라고 했던 게 이 호텔을 중심으로 길을 찾으란 말이었다. 발음을 못 알아들어 ‘발모어’라고 들은 것이다. 오전 시간 노랑 빛이 호텔을 비추면 건물 전체가 황금색으로 빛이 났다. 이 호텔에 에프터눈 티 세트가 유명하다. 영국에 왔겠다, 낮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면 티 타임을 한 번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따로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싶어 호텔로 들어갔다. 럭셔리한 로비를 지나니 카페 입구가 보였다. 각 잡은 수트를 입은 신사가 카페 입구에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내 옷차림을 내려다 보았다. 두툼한 털이 달린 롱부츠에 펑퍼짐한 사파리 점퍼. 거기에 뚤뚤 둘러맨 커다란 니트 목도리와 모자. 너무 캐주얼해서 퇴짜 맞으면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시도는 해보자. 

 용기내어 입구에 다가서자 신사는 다행히 따뜻한 미소로 반겨줬다. 좌석을 확인한 후, 젊은 여성 웨이터가 비교적 넓은 가운데 자리로 날 안내했다. 내가 자리에 그냥 앉으려고 하자, 웨이터가 영국식 악센트로 코트를 받아주겠다고 한다. 티 타임을 즐기는 데 외투를 벗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았다. 내 사파리 점퍼를 벗어 건네주니 “Perfect.” 하며 미소 짓고 가져간다. 영국에선 “Perfect”, “Lovely” 같은 말들을 자주 들었다. 영국 사람들이 자주 하는 감탄사였다. 으레하는 말인데도 내가 정말 완벽해진 기분이 들었다. 에프터눈 티 세트를 시켰다. 인도계 웨이터가 3단 트레이에 담긴 티 세트를 서빙해주고 간단히 설명을 해줬다. 아주 예의있고 친절한 서빙이었다. 샌드위치, 스콘 등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음식들과 차가 예쁜 다기에 담겨 있는 걸 보니 눈 마저 달달해졌다. 차 향을 음미하고 한입 마신 후 케익도 먹었다. 몸이 따뜻해졌다. 주변엔 나이 지긋한 유럽인들이 느긋하게 티 타임을 즐기고, 입구 위쪽 난간에선 하프 연주자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품격있고 여유로왔다. 007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몽롱한 기분으로 고개를 드니 검정 수트를 입은 매우 잘생긴 금발 남성이 입구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남성은 내쪽으로 다가왔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남성은 내앞으로 오더니 허리를 숙이며 말을 걸었다. 

 “Do you enjoy your tea?”

 어떻게 즐기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아주 퍼펙트하다고 답하니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밖은 어스름하게 벌써 해가 저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영국의 귀족들은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늦은 오후 여유롭게 에프터눈 티를 마셨겠지. 기후를 보니 왜 이런 문화가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 늦게 뜨는 해에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이 애매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늦은 오후에 차를 마시며 간단히 요기하게 된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패턴이었을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자라 부드러운 태양이 자연스러운 나에게 에딘버러의 손전등 같은 햇빛은 낯설었다. 그것은 양적 질적인 면에서 내가 알던 태양 빛과 달랐다. 시차적응이 안된 것도 있었지만 밝은 대낮의 기운이 식으면 당최 힘이 나질 않았다. 달라진 기후가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때 처음 알았다. 사람들은 저녁 이벤트를 아주 일찍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밖과는 달리 실내는 진작에 환한 조명으로 눈이 부셨다. 내가 살던 곳과 다른 패턴의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나에겐 당연하지 않은 세계. 그래서 더 매력적인 에딘버러!


 다시 나의 인도 친구들로 돌아와서. 다른 친구가 물었다. 

 “니콜, 한국은 우기가 얼마나 돼?”

 우기라……. 우리나라의 우기는 장마지. 계산 끝낸 나는 얼른 대답했다. 

 “한… 15일?” 

 “와하하하하. 너무 귀여운데!”

 비가오면 적어도 몇 달은 쏟아지는 인도와는 달리 한 달도 쏟아지지 않는 우리나라 장마는 그들에게 아주 귀여운 수준이었다. 

 “여름엔? 몇 도까지 올라가? 제일 더운 게 몇 도야?”

 그제야 나에게 쏟아진 시선을 느꼈다. 나는 테이블의 유일한 외국인이였던 것이다. 

 “글쎄…… 더우면 35도? 진짜 더우면 40도까지 올라갈 때도 가끔 있어.”

 “많이 덥진 않구나. 내가 살던 지역은 40도가 기본이야.”


 이 짧은 대화를 하며 나와 상대방이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레 여기는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항상 나와 저 사람이 같은 마음, 같은 생각, 같은 상황일 거라 가정하에 대화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았던가? 이런 사소한 깨달음은 가끔은 비뚤어진 삶의 자세를 바로 고쳐놓기도 한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소한 진리. 그건 비단 기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에딘버러와 인도 친구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사소한 진리는 에딘버러의 태양처럼 이후에도 아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이전 01화 여행은 길을 잃을 때 시작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