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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Oct 21. 2022

혼자인 게 어때서

메콩강에서 만난 제니 할머니

 왜 혼자 여행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글쎄, 나는 왜 혼자 여행할까. 사람들은 왜 혼자 여행할까.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그만의 바이브가 있다. 나에게도 그런 분위기가 풍겼을 거라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캄보디아 시내에서 새카맣게 탄 피부에 동네 시장에서 산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나는 어지간히 튀었을 것이다. 내가 한국말을 하면 단체관광으로 왔던 사람들이 놀라며 꼭 물어봤다. “왜 혼자 다니세요?” 사실 질문을 받기 전엔 생각지도 않은 부분이었지만 분명 나 스스로 혼자 여행하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몇 가지 생각나는 점을 간추려보자면 이렇다.


 편하다. 누구에게 의견을 묻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점만큼 매력적인 이유가 있을까. 친구랑 여행 준비하다 살짝 마음이 상한 적이 있다. 서로 가고 싶은 여행지를 논의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초조한 마음이 든 것이다. 결국 친구가 양보해 그 여행지를 가게 되었다. 나는 그 때 여행에 있어서 내가 모든 걸 통제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스스로 놀랐다. 그렇다고 친구와의 여행에서 내 멋대로 굴었다는 게 아니다. 그런 성향인 걸 깨닫고 혼자 여행이 편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한 것이다. 

 여행이라는 건 그저 ‘놀러간다’고 여기기엔 속성이 복잡하다. 여행은 인생과 같다. 행선지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여행의 목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영어에선 목적지가 있는 여행을 ‘travel’, 없는 여행은 ‘journey’라고 한다. ‘travel’은 원하는 여행지에서 여행하는 것, ’journey’는 흘러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그야말로 여정을 스스로 창조하는 과정 자체라 할 수 있다. 목적이 있는 여행은 출장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여행일 수도 있다. ‘미술작품 감상’이나 ‘맛집 투어’ 등 자신이 결정한 테마를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머리를 식히러 가는 여행일 수도 있다. 목적이 없는 여행을 떠나는 이도 있다. 그저 마음에서 ‘떠나라’고 말하는 이는 떠날 수밖에 없다. 이런 수많은 선택과 취향의 발로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여행인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여행을 준비하거나 여행하다보면 자신이 모르는 나의 특성을 알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누가 옆에 있으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울 뿐더러, 때론 방해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거나 웬만해선 갈등을 빚지 않고 싶다. 그래서 여행으로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열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여행지를 결정하고 싶고, 내가 원하는 방식의 여행을 하고 싶다. 그야말로 모든 걸 내 맘대로! 사실 여행만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한가. 아, 물론 예산의 한계가 있으면 선택에도 한계가 있다. 이것도 인생과 비슷하네. 

 또 한가지는 현지와 더 깊은 스킨쉽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함께 하는 여행은 상대방과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현지와 소통할 기회가 적어진다. 여기서 현지는 현지인이 될 수도 있고 장소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만난 나의 뚝뚝 기사 솟틱은 나의 이런 취향을 너무 잘 알았다. 

 처음 씨엠립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던 뚝뚝 기사 여러 명이 날 향해 호객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선한 눈매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솟틱이었다. 앙코르와트는 너무 넓고 거대하기 때문에 도보로 다닐 수 없다. 여행객들은 직접 오토바이, 자전거를 빌리거나, 오토바이 뒤에 이륜차를 연결한 현대판 마차같은 뚝뚝을 탄다. 앙코르와트가 넓어서 하루엔 절대 못보기 때문에 입장료도 1일권, 3일권 등으로 나눠져 있고, 그 일정에 따라 어떤 코스를 어떻게 돌지 뚝뚝 기사와 흥정을 하면 된다. 나는 앙코르와트를 볼 기간동안 기사를 해줄 것을 솟틱에게 부탁하고 가격을 협상했다. 구두 계약이 완료되자, 난 솟틱에게 거의 모든 걸 의지했다. 씨엡립의 모든 관광지는 솟틱이 데려다주었고, 적당한 숙소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처음 ‘식당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했을 때 솟틱은 뉴욕 한가운데 있을 것 같은 세련된 카페에 데려다 주었다. 온통 백인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캄보디아가 없는 곳이었다. 나는 솟틱에게 “여기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고 저렴한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했다. 솟틱은 그 때부터 나를 현지인이 가는 식당으로 데려다 주었다. 처음 갔던 카페에서 무려 5달러나 하는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새로 간 식당에선 정말 맛있는 고기덮밥을 신선한 과일 주스와 함께 3천원에 먹을 수 있었다! 

 홀로 낯선 장소에 도착할 때 사람의 모든 감각은 날이 선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그곳의 모든 걸 파악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 때 그곳의 냄새, 소리, 환경,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처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후에도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여행을 계속 헤쳐나가기 위해 현지 사람들이나 다른 여행자들과 소통을 시작할  때, 여행의 하이라이트도 시작된다.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곳이 점점 편해지고 재미있어 진다. 솟틱과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혼자 여행했던 것 같다. 현지인들을 만나는 것도 큰 재미였지만 다른 여행자들과 친해지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본 혼자인 사람 중에 가장 멋졌던 이는 제니 할머니였다. 메콩강 투어를 할 때였다. 아침 8시에 호치민을 출발한 버스는 휴게소를 거쳐 메콩 강에 도착했다. 메콩 강은 베트남 남부와 캄보디아를 가로지르는 매우 거대한 강이다. 강으로선 세계에서 열두 번째 길이인데다, 거대한 숲 속에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곳엔 강을 터전으로 일삼는 현지인들이 살고 있다. 강 위에 보트들이 시장을 형성하는 메콩 강 수상시장은 이곳의 명물 중 하나다. 넓은 곳은 폭이 2~3km나 될 정도로 메콩강의 크기는 엄청났다. 우기라 흙탕물이 된 강물을 세차게 달려 우리의 보트는 밀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강이 얼마나 깊길래 강 한가운데 이런 숲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이 강물 한가운데 숲을 이루고 있었다. 깊은 곳은 20미터나 된다니, 나무들의 크기도 짐작이 갔다. 거대한 숲 가운데 작은 수로로 진입한 보트는 코코넛 사탕 공장을 거쳐 어느 덧 점심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 제니 할머니가 있었다. 제니 할머니는 캐나다 사람으로 60이 넘어 보였는데도 2년 넘게 혼자 세계 여행 중이라고 했다. 유머러스하고 소탈한데다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친화력까지 있었다. 공교롭게 테이블에 함께 앉은 사람들 모두 제니 할머니 못지 않게 배낭여행에 이력이 난 여행꾼들이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맥주를 시키고,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건배!”를 외쳤다. 난 옆에 앉은 제니 할머니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여행하실 거에요?” 할머니는 아주 당차게 “여권 속지가 다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느믈하게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다음엔 한국갈까?” 아, 이런 사랑스러운 할머니라니!

 난 제니 할머니를 보며 혼자 여행하는 것이 저렇게 멋진 거라고 처음 느꼈다. 할머니는 홀로 여행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고 게다가 안정적이기까지 했다. ‘할머니 혼자 어떻게 다니지?’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의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린 마음이 통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녁 식사 시간 때, 가족이나 일행있는 사람은 끼리끼리 떠나고 제니 할머니나 나를 비롯한 홀로 여행객들이 뭉쳤다. 이 여행 베테랑들은 절대 비싼 레스토랑에 가지 않았다. 단순히 가격이 비싼 곳을 꺼리는 게 아니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바가지 씌울 만한 곳을 걸러 가지 않는 것이다. 여행에 도가 튼 도사들은 가격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차게 나와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는 분위기가 편하고 시끄러운 식당 하나를 발견했다. 제니 할머니와 난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고르고 고른 식당엔 여행객은 거의 없고 현지인이 더 많았다. 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신이 나는 법이다. 우리는 다짜고짜 맥주를 먼저 시키고 다시 한 번 건배했다. 

 영혼이 통하는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나와 친한 친구라도 취향이 다를 수 있고, 생각, 가치관도 모두 다르다. 모든 걸 함께 할 수 없는 건 가족도 마찬가지다. 어떤 여행지를 함께 잘 즐길 수 있는 건 평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곳을 향해 자기 발로 다가온 다른 여행객이다. 이건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같은 사람과 할 수 없다. 사람은 때로 혼자 있으면서 자신과의 대화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끔은 낯선 사람들과 만드는 공감대가 인생에 더 깊은 자취를 남기기도 한다. 직장, 취미, 스터디 등 어떤 활동을 하며 형성되는 상대방과 나의 연결고리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홀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개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건 그들이 일상에서 살아갈 때도 저런 모습일 거란 믿음 때문이다. 제니 할머니에게 구체적인 신상을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가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듬직하고 씩씩하게 헤쳐나갈지 눈에 보지 않아도 선했다. 아이를 낳고 집에 있을 때 제니 할머니가 문득 생각났다. 아기를 낳고, 기르면서 일을 하고, 독립 시키고, 모든 걸 경험한 후에 다시 홀로 세계여행을 하는 기분은 어떨까? 인생에서 은퇴를 한 느낌 아닐까? 문득 다시 씩씩해져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은퇴하고 세계여행을 해야겠단 거창한 포부 같은 게 생겨서가 아니었다. 그저 홀로 묵묵하고 씩씩하게 여행 다니던 할머니가 일상에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유머러스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 그거면 살아가는 데 충분하지 않은가?

 남편에게 늦은 휴가가 생겼을 때 자기가 아기들을 돌볼 테니 나에게 휴가를 주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 갑자기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박 2일 서울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을 하며 1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았지만 여행을 하며 보는 서울은 또 다른 맛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캐리어 가득 책을 넣고 짧은 여행을 떠났다. 보고 싶었던 전시를 봤고, 오랜만에 침대에서 TV보며 하하하 웃었다. 카페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었고, 해가 잔뜩 비추는 청량한 하늘 아래 산책을 하고 최신 개봉한 영화를 봤다. 거창한 것 없는 소소한 여행이었지만 마음의 그릇을 개운하게 텅 비우고 돌아왔다. 

 성인이 된 사람은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의 시간.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편도 때로 혼자 낚시를 가고 난 그 시간을 존중한다. 난 가끔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캐럴라인 냅은 <명랑한 은둔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물어야 할 “왜?”는 “왜 혼자 지내는가?”가 아니라 그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으로 바뀐다. 왜 혼자 지내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이걸 이렇게 바꾸고 싶다. 왜 혼자 여행하지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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