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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Sep 07. 2015

23장. 나는 왜 이곳에서 엘비스를 그리워하는가

뤼미에르 갤러리 모스크바, 엘비스 프레슬리 전시

모스크바 뤼미에르에서 만난 엘비스
그는 뭐, 여전히.


예술의 나라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니 전시 하나 정도는 보고 가야겠다 싶어서 찾은 곳은 Bolotnaya 거리에 있는 The Lumiere brothers Center for  Photography입니다. 일 년 내내 사진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로 외국 여행 와서 홀로 고상하게(?) 사진 전 하나 정도는 보고 싶었던 저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소였죠. 이 곳에서는 많이 알려진 갤러리지만 한국 여행객에게는 그 정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이렇게 따로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러시아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것을 배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도 물론 좋지만, 한 번 쯤은 이렇게 현재 모스크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현대 예술, 사진 등을 함께 관람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곳은 외국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닌 모스크바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입니다. 따라서 유명 관광지에서 느낀 외국 방문객을 위한 시스템은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철저하게 '모스크비치'가 되어 구경하는 전시니까요. -그래도 영어 설명 정도는 있어 천만 다행-


http://lumiere.ru

검은 머리의 모스크비치가 되어 고상하게 사진전을 관람하리라는 꿈은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이 날 목적지인 뤼미에르 갤러리는 모스크바 한 복판에 있는 긴 섬(?) 끝에 있는 건물이고, 이 곳에 가기 위해선 인근 지하철에서 내려 약 20분간 강추위를 뚫고 가야 합니다. 저는 메뜨로 회색 노선 '폴얀카(Полянка)'역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생소한 길을 걷는 것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라고 믿는 저에게도 이 길은 다른 분께 추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포스팅을 끝까지 보시고, 가 볼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만 도전하시기를 :)


붉은 광장이나 아르바트 등 모스크바의 주요 관광지와 상대적으로 떨어진 폴얀카역 주변은 그야말로 평범한 모스크바 동네였습니다.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소들보다 이렇게 실제 현재의 모스크비치들이 사는 집들과 건물들들 보는 것이 저에게는 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곳은 모스크바의 아현동이라 부르겠습니다- 한적한 동네를 따라 걷다 보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모스크바 강 발견! 다리를 통해 좁은 강을 건너면 섬 인 듯 섬 아닌 섬 같은 Bolotnaya 지역에 진입하게 됩니다. 다행히 헤매지 않고 잘 가고 있다는 소식이기도 하죠


강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뒤뚱뒤뚱 잘 다니는 걸 보면 역시 겨울엔 오리털이구나 싶습니다.


표트르 대제의 동상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동상이 표트르 대제의 동상이라고 하네요. 17세기 러시아 제국을 정립한 황제이자 러시아의 서구화를 이룬 인물로 스탈린과 함께 러시아인의 많은 존경을 받는 위인이라고 합니다. 서유럽 세력다 툼에서 러시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것으로 이름을 떨쳤고, 훗날 러시아 혁명 영웅 스탈린이 존경했던 인물이기도 하죠. 이러한 '존경, 존경 또 존경'의 표현은 주변의 박물관이나 유람선, 다리쯤은 가볍게 밟아버리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상으로 나타납니다. 모스크바 강이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저 엄청난 크기를 보세요.



뤼미에르 갤러리로 가는 이 Bolotnaya 거리는 볼 거리가 참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인들이 많이 찾는 소규모 클럽들도 많이 있고, 어딘가 뒷골목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곳에는 거리 예술가들의 벽화들도 볼 수 있고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오후 네 시(?)라 이 골목길에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은 확실합니다.


뤼미에르 갤러리는 Bolotnaya 거리의 끝자락에 있습니다. 모서리에 있는 입구가 작은 편이라 유심히 살펴 보셔야겠어요



러시아에서 미국을 추억하다(?) - 엘비스 프레슬리 탄생일 기념 사진전



모스크바의 뤼미에르 갤러리라면 현대 모스크바가 사랑하는 모스크바의 새로운 예술 트렌드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 했었지만, 이 날의 전시는 엘비스 프레슬리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 'ELVIS, Birth of the Legend'이었습니다. 음, 순간 이 곳이 모스크바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습니다. 하하. 냉전 시대의 유명한 앙숙이며 현재도 여러 이유로 사이가 좋지 않은 미국의 대표적인 팝스타 엘비스의 탄생을 기념하는 전시가 이 곳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제 생각이 영 틀린 것은 아니었던지 관람객의 대부분은 서구 문물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은 젊은 세대와 학생들이었습니다.



넓은 규모의 갤러리에 역사적인 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탄생부터 사망까지의 기록, 그리고 그를 촬영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담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들은 그의 개인적인 시간까지  함께하면서 무대 위에서는 볼 수 없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다양한 행동과 표정들을 포착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침, 오늘이 그의 탄생일



생각보다 열띤 관람 열기, 마침 이 날이 엘비스 프레슬리 탄생일인 1월 8일 당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실제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 살지 않았던 현재의 젊은 팬들 역시 사진과 영상을 통해 역사적인 팝가수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그 속에 있는 당시의 문화와 그 장면을 표현한 예술의 화법 등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째 이 곳까지 와서 '대표적인 미국 팝스타'를 추억하려니 영 어색하군요



모스크바에 대한 '갈증'으로 시작된 밤 산책



모스크바를 통해 미국을 다녀온 느낌에 괜히 시차까지 느껴지는 관람을 마치고, 이 도시 '모스크바'에 대한 갈증을 달래러 갤러리 주변을 걸었습니다. 폴얀카부터 이 Bolotnaya 지역을 지나 시내까지 걸어가는 길도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아마 이 날 지름길을 찾아 바로 전철을 타 버렸다면 서운 했겠다 싶을 정도로 모스크바 강을 따라 걸었던 산책은 여느 관광객은 볼 수 없는 특별한 야경들이 있어 너무 즐거웠는데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살면 다른 나라 문화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만도 한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걷고 또 걷습니다. 이 날 저녁만큼은 영하 20도의 찬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던지라, 이렇게 전 날 갔던 붉은 광장까지 또 걷습니다.


뤼미에르에서 구입한 사진 한 장

이 날 전시 관람 후에 구입한 사진 한 장, 엘비스 관련 사진 대신 모스크바의 멋진 야경을 촬영한 이 사진을 구입했는데요, 저 사진의 장소가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인 엠게우(МГУ)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예정에 없던 엠게우 관람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이 몇 안 되는 제 러시아 여행의 전리품(?)이자, 현재도 제 책상 위에서 그 날의 추억을 강요(?)하고 있는 녀석입니다.



여행을 통해 채울 수 있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낯선 도시의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그 곳에서의 삶을 느끼는 것이 가장 즐거운 저는 가급적 여행에서 실내 관람(?)을 하지 않지만, 예술의 나라 러시아에서는 왠지 전시를 한 번 정도 보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지라 가급적 사진전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리하여 방문한 뤼미에르 갤러리에서 난 데 없이 미국 팝스타의 회고전을 감상하게 되어, 전시 관람 계획은 절반이 조금 넘는 실패로 끝이 났지만, 그래도 이 곳을 찾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거리와 야경 덕분에 나름 보람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여행부턴 꼭 홈페이지에서 전시 일정을 확인하고 가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도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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