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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Sep 11. 2015

26장. 한겨울 모스크바, 그 날카로운 추억

나를 얼어붙게 만든 그 겨울 모스크바


러시아, 춥죠?


폭설로 앞이 보이지 않던 어느날


여행 전 지인들의 걱정부터, 러시아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던 '모스크바의 겨울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아마 모스크바의 이번 겨울을 가장 '알짜배기'로 경험하고 온 여행객일 테니까요. 제가 모스크바를 여행한 기간은 1월 5일부터 16일로 마침 일년 중 가장 추운 시기였습니다. 크리스마스였던 7일은 아침 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내려갔으니까요. 물론 모스크바의 이번 겨울은 평년보다 따뜻(?)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국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혹한을 경험하고 온 만큼, 모스크바 겨울 여행을 계획중이신 분들을 위해 제 여행기간 중의 모스크바 날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포기하세요 하하하-



우리가 '러시아'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추운 나라'일 것이고 떠올리는 장면은 눈 덮인 동네에 곰이 뛰어다닌다거나 곰 코스프레 같은 털모자와 모피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모스크바는 여행 전 제가 막연히 가졌던 고정관념처럼 일년 내내 눈에 덮여있는 도시가 아니라 3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도 있는 곳이지만, 역시나 제가 방문한 1월은 기대만큼 추웠습니다. 사진은 모스크바 셰러미티예보 공항에 도착하기 전 찍은 창 밖 풍경입니다. 창문을 열고 저 장면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죠. -왜 나는 하필 일년 중 제일 추울 때 이 곳에 왔는가-


낮 최고기온이 영하 18도?!


출국을 며칠 앞두고 확인한 날씨는 제 맘을 무척 설레게 했습니다. 일요일까지는 영하 8도로 서울과 진배 없는 선선한 기온을 기록하다, 제가 러시아에 닿는 월요일부터 난 데 없이 10도가 떨어지는 변화 무쌍한 날씨, 그리고 크리스마스인 수요일에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4도, 게다가 낮 최고 기온이 영하 18도?


평소 추위를 타지 않기로 유명한 저는 이 겪어본 적 없는 극한 체험에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며 묘한 기대감이 생겼었죠. 물론 이 기대는 올 겨울 가장 추웠다던 저 수요일 아침 저도 모르게 흐른 콧물과 함께 흘러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절정'의 며칠을 제외하고는 모스크바의 날씨는 생각보다 그리 혹한은 아니었습니다. -코트 두 벌을 겹쳐 입었을 때를 기준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아에로플로트를 타고 처음으로 모스크바 땅에 내리던 순간 -그러니까 이 사진이 제가 모스크바에서 찍은 첫 사진이군요- 이국적인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이미 바닥에 소복이 쌓인 눈과 난생 처음 느껴보는 차가운 공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날 기온이 영하 15도였죠. 네 시작부터 제대로 '혹한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 사람들이야 이 정도 추위는 익숙해서인지 옷차림도 가볍습니다.


당연히 춥죠

이튿날 아침 뉴스에서 확인한 오늘의 날씨

화면 분위기도 그렇고 뒤의 섭씨 표시를 보니 분명 현재 온도를 보여주는 것 같긴 한데 저 -20이란 숫자가 저에겐 영 생소합니다.


겨울 날씨야 뭐 익히 알려진대로 이렇게 강추위인데다, 여름엔 또 한국 한여름 못지 않은 도시라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시내 곳곳에는 현재 시각과 함께 현재 기온을 표시하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날 영하 20도를 시작으로 다음날 25도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폭설이 내린 목요일의 영하 20도 날씨까지 도착하자마자 절정의 3일을 보내고 나니 이후에는 추위에 대해서는 초연해졌습니다. 다시 모스크바를 겨울에 가게 되더라도 추위는 더 이상 겁나지 않을 것 같아요. -나 모스크바에서 살아 돌아온 남자야-




모스크바가 더 추운 두 가지 이유


이 곳에 있다 보니 안 그래도 추운 모스크바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이유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선택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다는 짧은 태양, 그리고 또 하나는 난 데 없이, 그리고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입니다. -애초에 기온이 낮은거야 어쩔 수 없죠-


아침 아홉시 반, 아직도 해가 뜨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겨울 모스크바는 하루에 낮시간이 여섯시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하루에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습니다. 아침 열시가 다 되어서야 해가 뜨고 오후 세시가 지나면 스물스물 해 떨어질 준비를 하죠. 밤 새 떨어진 기온을 태양이 좀 데워(?)줘야 하는데 이건 살짝 얼굴만 비추고 사라져버리니 따뜻해질 틈이 없습니다.



게다가 겨울 내내 날씨가 흐리고 눈도 많이 와서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집니다. 제 12일의 여행 기간 중 맑은 날은 단 2일이었을 정도로 모스크바의 겨울 날씨를 확실히 실감하고 왔죠. 날씨 변화도 심해서 잠깐 구름이 걷혀 파란 하늘이 보이다가도 곧 이렇게 폭설이 내립니다. 저도 여행 기간 중 대부분의 날씨를 눈과 함께 보냈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때문에 공원이나 야외 관광 중 낭패를 많이 보았습니다. 눈을 맞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장갑, 모자 그리고 추위를 많이 타시는 분이면 마스크까지.



물론 한 번 내린 눈이 이렇게 하루 종일 내리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모스크바의 겨울은 내내 '눈과의 전쟁'이 펼쳐집니다. 제설차가 쉴 새 없이 도로를 왕복하고 눈 쓰는 분들이 거리 순찰하는 경찰관보다 많아 보일 정도니까요. 계속해서 내리는 눈이 추운 날씨에 얼어버리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제설 작업을 정부 차원에서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종종 저렇게 모아놓은 눈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아 이제 눈 좀 그마안.....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


그렇다면 여기서 태어나면 이 추위에 적응을 하게 되느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뿐이지 결국 이 곳 사람들에게도 이 추운 겨울은 살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더위 먹는다고 하니까요 뭐. 그래서 매서운 혹한을 어떻게 이겨내기 위해 이 곳 사람들은 이 모피 코트와 모자를 즐겨 입습니다. 물론 연세가 있는 분일수록 그 비율도 높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 모피 옷을 좋아하지 않는지, 아니면 덜 추운건지 한국에서 입는 패딩 점퍼 정도 차림이 오히려 더 많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러시아인들보다 한국 사람들이 더 두꺼운 점퍼를 많이 입는 것 같아요.


대신 이 곳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모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강추위에 뇌에 충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저도 했거든요. 낮은 기온에 오래 노출되면 자칫 사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 곳에서 보는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은 모두 모자를 착용했습니다. -하나는 저에요-




가끔 비추는 해가 더욱 반갑죠


날씨가 워낙 흐리고 춥다 보니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으시는 분들은 울적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저야 맑은 날보다 흐리고 눈,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어둠의 자식(?)이라 이 곳 날씨가 썩 괜찮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렇게 구름이 잠시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일 때면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반갑습니다. 방금까지 보던 풍경들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감격도 겪게 되고요. 노보데비치 공원을 산책하다 만난 이 멋진 하늘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반대편엔 앞을 볼 수 없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 모스크바 날씨 참 재미있습니다.


밤엔 더 추워요

밤에는 물론 '더' 춥습니다. 밤 산책의 낭만 같은 건 겨울엔 크게 기대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고요. 하지만 추운 날씨엔 도시 야경이 더 선명하고 예뻐 보입니다. 모스크바의 야경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조명 색 온도 때문에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멋지게 야경이 펼쳐진 크레믈린 궁을 배경으로 얼어붙은 모스크바 강, 그리고 그 얼음을 가르며 모스크바 풍경을 소개하는 쇄빙선이 달리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외출이 힘든 겨울엔 저렇게 유람선을 타고 시리게 빛나는 모스크바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여행 계획이 되겠네요 :)



네, 정말 춥습니다,

그래도 저처럼 살아 돌아온 사람도 있잖아요.

모스크바의 한겨울 날씨는 딱 '기대만큼' 추웠습니다. 영하 30도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이 곳을 찾은 저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추위에 표정관리는 고사하고 흐르는 콧물도 모를 정도로 얼어 붙었었죠. 한 번은 새끼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참사(?)를 겪어 굼 백화점으로 놀라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추위를 조금이라도 타시는 분들은 한겨울 시즌엔 모스크바를 오지 않으시는 것이 차라리 나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즐거워야 하는 거니까요.


모스크바의 겨울은 까레이스키에겐 그야말로 당혹스러울 정도로 매서웠지만, 그래도 운이 좋았던지 평년보다 따뜻한 이번 겨울 날씨는 여행 후반부에 무려 '영상'의 날씨를 선물로 안겨주었습니다. 기온이 점점 오르며 길에 쌓였던 눈이 녹고, 얼어 붙었던 모스크바 강의 얼음들도 사라졌습니다. 그와 함께 저도 두 벌씩 겹쳐 입었던 코트가 한 벌로, 피부처럼 챙겨 입은 내복에서도 해방됐죠. 막상 겪어보니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춥지만 걱정 만큼은 아니라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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