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기보다 차이에 대한 영화
영화 <남과 여>는 오랫동안 로맨스의 교과서라고 불려 왔다. 실제로 설정은 교과서적이다. 배우자를 잃은 남자와 여자, 아이를 둔 부모, 우연한 만남, 재회, 그리고 열린 결말. 구조만 놓고 보면 이보다 더 기본적인 멜로드라마는 없을 것 같다.
형식적으로는 누벨바그의 영향이 느껴지지만, 서사는 오히려 고전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핸드헬드 촬영과 흑백, 컬러의 교차는 당시 프랑스 영화의 흐름을 닮았지만, 이야기는 의외로 정통적인 감정 구조 위에 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낭만적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그 사랑은 한 번도 안정된 상태로 놓이지 않는다. 그렇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달콤하지 않다.
이 서늘함을 더 강하게 만드는 건 화면의 톤이다. 이 영화는 흑백과 컬러, 그리고 세피아를 자유롭게 오간다. 마치 오래된 기억을 들춰보는 것 같은 노스탤지어를 만들어내며 색을 활용한다. 아마도 당시 필름 제작 환경과 예산의 제약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혼용은 이 영화를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미완의 감정을 계속해서 흔들어 놓는 방식의 영화처럼 보이게 만든다. 전부가 치밀한 상징 설계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혼용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장면은 현재처럼, 어떤 장면은 기억처럼, 어떤 장면은 남자와 여자의 감정의 결로 보이면서 사랑의 형태가 한 톤으로 고정되는 걸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안'은 사별한 남편을 잊지 못한 채 반지를 끼고 있다. 그녀의 망설임은 감정의 부족이 아니라 감정이 너무 분명해서 생긴다. '장'에 대한 사랑이 시작될수록 과거는 더 선명해진다. 그래서 과거를 배신하는 것 같은 감정과 싸운다. 반지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그녀의 애도가 끝나지 않았다는 표시다.
반면 '장' 역시 반지를 끼고 있고 사별한 아내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동거녀가 있다. 그런데도 그는 '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전보 하나에도 그 먼 거리를 서슴없이 달려오는 열정은 분명 진심처럼 보인다. 동시에 그가 현재를 정리하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은 이 관계를 조금씩 흔든다. '장'이 비겁한 인물이라기보다, 욕망과 상실이 동시에 작동하는 인간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그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서늘하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완전히 준비된 상태에서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채 시작되는 사랑을 보여준다. 애도는 끝나지 않았고, 현재는 정리되지 않았으며, 감정의 속도도 다르다. 둘이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라기보다, 사랑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영화에 가깝다. 그래서 마지막 포옹은 해피엔딩이라기보다 또 한 번의 선택의 순간처럼 보인다.
감독 '클로드 를루슈'는 그들의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이 사랑이 얼마나 갈까. 이 질문이 남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사랑을 이상화하지도, 냉소하지도 않으면서, 사랑이 얼마나 불안한 상태 위에서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아마 그래서 제목도 로맨틱한 문장이 아닌 <남과 여>일 것이다. 사랑이 시작될 때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다른 자리에서 출발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그 차이를 지운 채 완성을 선언하지 않는다. 그 불안과 미완이야말로 이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