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청춘들을 위한 영원한 송가
브릿팝 좀 들어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스미스(The Smiths)를 모를 수가 없다. 못 본 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대중적인 오아시스부터 실험적인 라디오헤드까지 90년대에 영광을 누린 밴드들 중에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밴드는 없다. 오아시스의 기타리스트 노엘 갤러거가 처음 기타로 연습한 곡이 스미스의 Hand In Glove였고 라디오헤드가 On Friday였던 시절에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스미스의 곡을 자주 연주했다고 한다. 스미스의 기타리스트 조니 마와 노엘 갤러거는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친한 사이라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밴드를 탈퇴한 지 오래라는 사실이 재밌다. (조니는 1987년 스미스를 해체했고 노엘은 2009년 오아시스를 탈퇴했다.) 그 외에도 또 다른 브릿팝 밴드인 블러(Blur), 스웨이드(Suede), 펄프(Pulp) 등도 스미스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또 영화 <500일의 썸머>를 통해 스미스를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스미스였다. 조금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남자와 그보다 훨씬 마이너한 취향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둘의 공통점이 스미스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도 스미스는 흔히 말하는 힙스터들 사이에서 인기가 아주 많은 밴드 중 하나이다. 철저히 팝 락을 고수해온 스미스가 인디씬의 클래식이 된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 포스팅은 스미스를 이제 막 접했거나, 이미 즐겨 듣고 있지만 가사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스미스의 장점은 또렷하게 들리는 기타 리프와 멜로디, 그리고 모리세이의 아름다운 가사에 있다. 싱글로서도 훌륭하고 앨범으로서도 훌륭하다. 특히 <The Queen Is Dead>는 8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 앨범은 좀 더 나중에 듣는 것을 추천한다. 싱글 모음집인 <Hatful of Hollow>나 베스트 앨범을 먼저 듣고 난 뒤 도전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Meat Is Murder> 역시 싱글에 더 익숙해진 뒤 듣는 걸 추천한다.
오늘 밤 입고 나갈만한 옷이 없어요. 그러자 그 남자가 말했죠.
당신 같은 미남이 그런 걸 신경 쓰다니 이상하네요.
귀여운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이 곡은 어떤 동경에 대한 곡이다. 다소 소극적인 듯한 화자와 '이 남자(This Man)'가 등장하는데, 그는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Charming Man)이다. 작사를 한 모리세이는 이 곡을 두고 한 인터뷰에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사를 썼다'라고 말했다. 위의 싱글 자켓은 그리스 신화의 자기애적 인물인 나르시소스를 연상케 하는데, 모리세이는 그를 긍정적으로 여겼나 보다. 확실히 우리는 좀 더 자기애를 가질 필요가 있긴 하다. 물론 나르시시스트가 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모리세이는 '우리는 의기소침할 필요도 거만해질 필요도 없다'라고 말했으니까.
내가 죽던지 살던지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왜 내 소중한 시간을 써야 하죠?
소소한 리듬감이 좋은 곡으로 듣다 보면 가볍게 그루브를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곡은 제목처럼 자신의 불행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직업을 구했지만 일을 잘하지도 못하고, 또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 가사의 마지막 구절이 재밌다. 여기서 나오는 '칼리굴라'는 로마 폭군의 이름으로 직장의 상사쯤 되는 듯하다. 화자의 일처리가 너무 서툴었는지 그녀(칼리굴라)는 '집에 너무 오래 있으셨네요'라며 디스를 하는데 화자는 자연스럽게 도망쳐버린다. 전형적인 모리세이식(式) 가사이다.
모두들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죠. 신도 내가 그러리란 걸 알아요.
이 곡은 삼각관계에 대한 노래이다. 가사에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하는데, 보통의 삼각관계와 달리 여자가 아닌 남자를 둘러싼 관계이다. 즉 이성애자인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인 남자의 이야기이다. 모리세이의 가사에는 이렇게 동성애를 표방하거나 혹은 암시하는 내용들이 많다. 이는 스미스가 널리 그리고 오래 사랑받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화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어떻게 그딴 여자와 사귈 수 있느냐'라고 노래한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비틀즈의 This Boy가 떠오른다. This Boy 역시 삼각관계에 대한 노래이다.
닥쳐. 당신이 뭔데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해?
나도 사람이고 사랑받을 필요가 있어. 다들 그렇듯이.
사실 이 곡은 스미스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사이키델릭하게 울려대는 기타와 느리게 쿵쿵 울려대는 드럼과 베이스. 혹자는 이 곡을 두고 80년대의 Stairway to Heaven이라고 칭송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곡의 분위기처럼 가사 역시 마음속 분노를 있는 대로 분출한다. 특히 첫 부분의 '나는 천박한 수줍음의 아들이자 상속자'라는 가사가 인상에 남는다. 만약 누군가가 스미스의 곡을 듣고 '이게 무슨 락이냐'라고 무시한다면 이 곡을 들려주자. 사이키델릭의 진수를 보여주는 곡이다. 물론 꼭 시끄러워야 락인 것은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락의 정신은 카운터 컬처(Counter Culture)에 있다고 생각한다. 터부를 이야기하고 금기를 깨는 것. 비틀즈와 스톤즈가 그러했고 피스톨스와 클래시도 그러했듯이. 그런 점에서 스미스는 훌륭한 록큰롤 밴드다.
네 머리는 후려쳐지지. 왜냐고? 그냥 너라서!
'야만은 집에서 시작된다'는 제목처럼 이 곡은 가정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철없는 남자아이들과 얌전하지 않은 여자아이들은 통제되고 학대당한다. 모리세이는 늘 학교나 가정 등 규율적인 환경을 혐오해왔는데 그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가사와는 별개로 이 곡은 기타와 베이스의 훵키(Funky)한 리듬이 특징이다. 훵크 리듬은 알앤비/소울에서 주로 쓰이는데 락 음악에도 많은 영감을 주어왔다. 비장한 기타 리프가 조금 무서운 느낌을 주는데 이는 가사의 분위기와도 굉장히 잘 맞아떨어진다.
그들은 지금도 나를 믿지 않는데, 그럴 날이 오기나 할까요?
옆구리에 가시가 박힌 소년. 가시는 어떤 고민을 의미한다. 가사의 화자인 소년은 아무래도 사람들로부터 양치기 취급을 받는 듯하다. 소년은 계속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소년은 외롭고 괴롭다. 앨범 자켓이 재밌다. 옆구리에 가시가 박혀서 아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를 믿어주세요!'라고 외치면서 펄쩍 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사의 내용을 뜯어보면 결국 소년은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사실은 우리도 그저 사랑과 관심이 받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내 눈을 보고도 왜 날 못 믿는 거죠?'라는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가사와 다르게 곡의 분위기가 발랄하다는 점도 독특하다.
제발 저를 집에 내려주지 마세요.
거긴 제 집이 아니에요. 그들의 집이죠.
난 환영받지 못해요.
명반으로 꼽히는 <The Queen Is Dead>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명곡이다. 수많은 스미스의 팬들은 이 곡을 최고로 평가한다. 스미스 특유의 멜랑콜리한 멜로디와 찰랑거리는 기타 위에 신시사이저로 연주되는 현악기 소리가 비장면서도 처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사의 화자는 밤에 자신을 데리고 나가 달라고 말한다. 그는 집을 벗어나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하는 것으로 보아 가정에 불화가 있는 듯하다. '이층 버스가 우리를 치고 그대 곁에서 죽는 거예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인가요.' 매우 모리세이다운 가사이다.
음악적으로도 가사적으로도, 여러모로 스미스가 추구해온 것들의 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곡이다. 노래는 '꺼지지 않는 불빛이 있어...'를 되뇌면서 페이드아웃(Fade-out)된다. 여기서의 '불빛'은 스미스가 노래해온 영원한 것들(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 연인으로부터의 사랑, 가족으로부터의 사랑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이 곡은 명반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아니면 거꾸로 이 곡이 대미를 장식했기에 명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80년대 영국의 한 도시, 맨체스터에서 만들어진 어느 한 밴드의 노래들이 전 세계적으로 3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데에는 당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 이 세상의 모든 청춘들의 방황이 같은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리세이는 그걸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는 아픔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그렇지 않으면 이런 주옥같은 가사들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조니 마 역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다. 당시의 마초적인 락 신(Scene)에서 말랑말랑하고 찰랑거리는 기타 사운드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한 명뿐임에도 소리가 전혀 허전하지 않았던 것은 리듬기타와 리드기타를 오가는 그의 기타 연주 덕분이었다. 그렇게 초기 비틀즈 앨범들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쟁글사운드를 부활시켰고, 이는 90년대의 브릿팝 무브먼트로 이어져 브리티시 락의 특징으로 굳어진다.
그래서 나는 스미스를 '모던 비틀즈(Modern-Beatles)'라고 평가한다. 60년대에 비틀즈가 연구해온 소리에 대한 실험이 70년대에 전해져 록의 부흥기를 이끌었다면, 80년대에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브리티시 록을 다시금 부활하도록 그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이 스미스이기 때문이다.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도 <OK Computer>도 스미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시를 쓰던 모리세이의 집에 조니 마가 기타를 들고 찾아갔다. 그게 스미스였다. 그 둘은 큰 갈등 끝에 밴드를 해체했고 지금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아마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 둘이 다시 한 무대에 오르는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의 노래들은 여전히 남아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새로운 청춘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어엿한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도 힘이 들 때마다 말해줄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