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학교

학생들에게 배우는 한 수

by 빵굽는 건축가

네모난 학교에서 12년을 지내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하루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내 아이가 하루 종일 어떤 환경에 갇혀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그 이유는 환경이라는 ‘숲‘보다 성적이라는 ‘나무‘만 보기 때문이다.... 직사각형 콘크리트 건물에 냉기 어린 시멘트 바닥, 교실과 교실을 이어주는 칙칙한 복도, 똑같은 창문들과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벽, 아이들이 마음 붙일 수 있는 공간이란 그 어디에도 없었다.....‘내 아이는 이런 곳에서 자그마치 6년을 보냈구나 ‘.....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공부하고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선 우선 학교 환경이 달라져야 한다.....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 서문에서>


책에서 읽은 학교의 풍경과 제가 경험한 학교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벽과 벽, 교단에 짙은 초록 칠판이 있고, 갈색 베니어 교탁, 색색이 분필, 칠판지우개,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허리보다 조금 높은 창, 0.1평짜리 네모진 책상과 엉덩이 크기만 한 의자 한 개가 있었지요. 이곳에서 12년을 지냈답니다. 늘 같은 장소, 같은 모양의 사각 박스 안에서 초중고를 보낸 저의 직업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내는 건축가입니다.

학교 공간 재구성 의뢰를 받은 이후로, 다양한 기능과 형태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모양들은 다르지만 '편안하고 안전한 학교'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학교 공간을 위한 워크숍을 아이들과 진행하면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왜냐고요? 아이들에게 영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줄곧 ˝어쩜 요런 아이디어가 아이들에게서 나올까?˝ 하면서 아이들에게 한수를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3년 전 학교 카페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 당돌한 요구사항을 제시했죠. 들어주시면 저도 디자인에 참여하겠다면서 말이죠. "학생들과 워크숍을 3회, 3주간 모두 9시간을 주시면, 일을 해보겠다"라고 했죠. 학교는 개교 이래 처음 당하는 요구라면서 담당자의 안색이 변하고, ˝교실을 카페로 리모델링만 하면 되지 무슨 워크숍이야˝, 그것도 매주 3시간씩 3번이나, 당장 수업시간을 조정해야 한다고, 겨울 방학 전에 공사를 마치고 주어진 예산을 모두 써야 한다며 난감해 하였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기는 해요.

그래도 인연이 닿았는지 담당 선생님은 워크숍 제안이 성사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적은 비용으로, 참여하겠다는 건축가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디자인을 하겠다는 건축가가 나타났는데 워크숍 제안을 한것입니다. 학교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셈이죠.

그렇게 시작한 학생들, 선생님, 학부모와 함께하는 워크숍은 회수와 방법만 다를 뿐 학교 공간을 디자인할 때 기본원칙이 되었습니다. ˝협동조합에 의뢰하시면 조건이 있습니다. 공간을 사용할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워크숍에 참석하셔야 합니다.˝라는 조건입니다.

9시간의 워크숍을 했던 첫 학교의 카페 디자인은 8명의 중학생들이 표현한 그림과 색, 구성을 건축적인 어휘로 정리하고 시공 가능한 도면으로 만들어 겨울 방학 동안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카페 오픈식 날,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을 모신 자리에서 그동안의 워크숍 자료를 보여주며, ˝이곳은 우리가 디자인하고 우리가 운영할 카페입니다.˝ 라며 건축가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더군요. 바라던 대로 아이들을 위한 장소가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어제는 안양에 소재한 고등학교의 공간 구성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 학교의 구석구석을 함께 돌아본 후 강의실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오늘 주제는 ‘학교라는 보물지도‘를 그리는 날입니다. 보물을 찾기 위해 여러분이 알아야 할 몇 가지 규칙을 설명해 드릴게요 잘 들어보세요.˝
강의 시간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으니 저도 즐겁고 참가자들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려진 작은 바람과 이미지들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1:1 공간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말에 한 표를 더해도 되겠지요?

선생님들과 워크숍을 하고 나서 그린 스케치는 실제 아이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집니다.


몇년동안 함께 일한 목수님들은 이번에도 새로운 장소를 정성껏 만들어 내었습니다. 목수님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건축에 담긴 노자의자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