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2018년 봄, 저는 20년의 직장생활을 내려놓았습니다. 충분히 준비된 퇴사도 아니었고, 새로운 길에 대한 계획도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막막한 상황에서 멘토 교수님을 찾아가 "OOO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해보려 한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돌아온 질문은 의외였습니다.
"그 사업을 왜 하려는 건가?"
저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했지만,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습니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일 뿐, 당신의 '왜(Why)'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교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아니 당장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데, 거창한 비전부터 세우라고 하시니... 역시 교수님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인 것 같아.'
하지만 두 번의 사업 실패를 겪고 나서야, 그 질문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실패가 남긴 질문
지금은 세 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실패를 복기하면 할수록 사업의 목적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 없이 방법에만 매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 무렵 읽게 된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의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입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
'지구를 위해 사업을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주의적으로 들렸습니다. 도대체 누가 지구를 위해 사업을 한단 말인가? 환경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NGO 활동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사업에 실패해 본 저는 파타고니아의 성공을 그냥 잘 마케팅된 포장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파타고니아의 경영 철학이 단순한 마케팅 구호가 아니라, 창업자의 신념이 조직 곳곳에 내재화되어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파타고니아는 단순히 아웃도어 제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사업을 통해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는 기업입니다. 사업의 본질을 '성장'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두고, 제품 하나하나에 브랜드 철학을 담았습니다.
책은 파타고니아가 어떻게 지금의 브랜드가 되었는지를 8가지 철학으로 풀어냅니다.
1. 제품 디자인 철학
"어떤 것이든 완벽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적나라한 상태에 이를 때에 달성된다." - 생텍쥐페리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 단순하고, 수선이 가능하며 오래 쓸 수 있는 제품
'유기농 목화, 독성이 적은 원료, 패션을 쫓지 않는 디자인' 같은 원칙
품질에 대한 타협 없는 자세: "우리 자신이 우리 제품의 최대 고객"
2. 생산 & 유통 철학
공급업자와 긴밀히 협업해 브랜드 고유의 '식별할 수 있는 가족 특유의 뜨개 패턴' 재현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브랜드 철학을 '교육'하는 카탈로그와 커뮤니케이션
3. 마케팅 철학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이야기하는 것"
억대 모델 대신 '진짜 순간'을 보여주는 사진
글에는 브랜드의 철학이 담겨야 함
"고객의 신뢰는 광고비로 살 수 없다"
4. 재무 & 인사 철학
단골 고객에게 집중: "단골 고객 판매는 신규 고객 판매보다 6~8배 높은 가치"
"직원이 곧 고객": 제품에 열정이 없는 사람은 함께할 수 없다
5. 경영 & 환경 철학
독재적 규칙이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가족 같은 운영
기업의 존재 이유는 지구를 더 나은 곳으로 남기는 것
브랜딩은 결국 창립자의 철학이 고객 경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입니다.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옷을 집어드는 순간, 카탈로그를 넘기는 순간, 캠페인 영상을 보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창업자의 철학을 '경험'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35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왜 사업을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파타고니아가 다른 기업들이 환경에의 책임과 지속 가능성을 탐구할 때 본보기로 삼을 만한 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이본 쉬나드 역시 창업 35년 후에야 자신이 사업을 하는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브랜드의 존재 이유가 단순히 매출이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향해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많은 기업에게 울림을 줍니다.
저 역시 파타고니아의 이야기를 읽으며 제 사업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겠다'는 목적은 불안정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브랜드는 힘을 갖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소비자는 이제 단순히 기능적 만족보다, 브랜드가 제시하는 철학과 태도를 선택합니다. 브랜딩은 관점을 바꾸는 일입니다. 제품과 마케팅을 넘어,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진정성 있게 답하는 것. 그것이 결국 소비자에게 가장 강력한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끝없는 성장을 요구하는 시장이냐, 휴식을 필요로 하는 지구냐"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창업을 준비하며 사업의 목적을 다시 정의하고 싶은 분
지속 가능한 브랜드 전략에 관심 있는 마케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성공하고 싶다고 믿는 분
비전이 보이지 않을 때 옆에 두고 꺼내 읽고 싶은 분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단순한 기업 성공기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세상을 바꾸는 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는 지금 인생은 반복적인 선택이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앞선 두 번의 도전이 실패로 끝난 것이 어떻게 보면 다행일지 모르겠습니다. 실패가 있었기에 ‘왜’라는 질문을 더 깊이 붙들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도전은 더 단단한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