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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Mar 14. 2016

나는 일탈을 모른다

사는 게 지겨울 때는 일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아직 20대인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자주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는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을 맞이해 눈을 떴을 때 '아, 오늘도 눈이 떠졌구나….'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은 뭐라고 쉽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어나는 몸을 무겁게 만든다.


 스스로도 왜 이런 쓸데없는 감정 속에서 아파하는지 잘 모른다. 어느 정도 짐작 가는 이유는 있지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매일 같이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숨 쉴 수 있는 몸뚱이 하나면 된다. 그래서 난 그냥 살고 있다.


 비록 이런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 메고 있더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하루를 좀 더 다르게 보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100 days' 프로젝트로 아침마다 찍는 일출 사진, 아침마다 읽는 《연탄길》, 아침마다 하는 작은 명상과 스트레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크게 바뀌는 것 없이 매일 느끼는 주체할 수 없는 허무라는 괴물은 나를 집어삼킨다. 구름이 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를 고민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세상을 고민하고, 책을 읽으면서 다른 세계를 꿈꾸고, 글을 쓰면서 그런 감정을 정리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기에.


 사람들에게 '요즘 사는 게 지겹지 않아요?' 같은 말을 건네면, 그럴 때에는 '일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매일 치료를 받으러 가는 병원에서 그냥 문득 심경의 변화로 필요 없는 말을 간호사에게 건네면서 작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조금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나 :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언제나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여 치료사 :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오늘 정말 힘들었는데요. (웃음)"

남 치료사 : "우리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치료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무슨 힘이 나겠어요?"

(주절주절)

다른 치료사 분이 웃으면서 지나간다.

나 : "보세요. 저 분은 언제나 저렇게 웃으면서 있잖아요? ㅋㅋ"

여 치료사 : "그러네요. 아하하."

나 : "가끔 삶이 지겨워질 때가 있잖아요? 전 요즘 참 사는 게 너무 지겹고 힘들어요. 어휴."

여 치료사 : "그럴 때에는 일탈이 필요하죠."

나 : "그런데 제가 그럴 때마다 하는 게 책 읽기 밖에 없어서..."

여 치료사 : "일탈을 책을 읽으시는 거예요? 우와..."

나 : "딱히 뭐 할 게 없어요. 저는..."

(이하 생략. 이 이야기는 기억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조금 다를 수 있음.)


 일탈이라고 말하면, 보통 무엇을 말하는 걸까. 난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탈은 책 속의 세계로 도망치기는 거나 종일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마구 잡이로 먹는 거다. 한때는 종일 게임을 하면서 보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게임을 장시간 하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만 받는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냥 일탈해서 노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여행을 다니는 것일 수도 있겠고, 친구와 만나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노래방에서 몇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는 것일 수도 있겠고, 그냥 곤드레만드레 술을 마시면서 밤 문화를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런 것을 할 줄 모른다. 이건 내가 고상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난 그런 식으로 일탈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혼자서 있는 시간을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내게 그런 일탈은 오히려 해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그게 바로 책 읽기다. 과거에 내가 읽었던 책을 다시 쌓아 놓고 읽거나 블로그에 올린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와 마음에 새긴 비전을 다시 읽으면서 나를 채찍질하거나 만화책과 라이트 노벨을 잔뜩 쌓아두고 읽으면서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런 것밖에 없다. 이게 내 인생에 즐거움을 주니까.


 그리고 요즘은 그냥 전자 피아노라도 한 개 있으면, 좋아하는 곡을 열심히 연습하면서 장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이 찌든 일상 속에서 허무함을 속에서 헤맬 때에는 그저 이렇게 하는 것밖에 없다. 현실은 바뀌지 않고, 내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계속될 테니까.


 난 일탈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현실에서 도망치는 게 일탈인지, 아니면, 조금 다르게 세상을 접근하는 게 일탈인지, 정말 비뚤어지는 게 일탈인지. 내가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일탈이라는 단어의 개념은 사전에서 찾을 수 있는 불량배의 행동밖에 없다. 그래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나는 트위터에 '빨래를 널면서 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을 쐴 때, 이게 사소한 행복이 아닐까'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빨래를 탁탁 털면서 널 때 느낀 작은 감정을 글로 적어서 썼던 글이다. 뭐, 이것도 일종의 일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의미 없어진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니까.


 그 이외에도 나는 몇 개의 일탈이 있다. 야구 중계를 보면서 괜히 더 감정을 싣는 것도 그런 것일 수도 있겠고,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주인공에 심하게 감정이입을 해서 함께 울거나 아파하는 것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뭐, 후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 슬프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난 그렇다. 나는 일탈, 노는 방법을 잘 모른다. 군대에서 돌아와 새벽까지 놀다 들어오는 동생 같은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와의 약속을 깨뜨려가면서 벗어나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난 내가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가는 다른 길에서 방황하거나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사는 게 좀 더 힘들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기어가 들어가 있을 때는 무척 즐겁지만, 그 틀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죽을 것 같은 허무한 공백에서 빠진다.


 오늘 글도 그냥 그렇게 쓰면서 작은 일탈을 꿈꾼 한 사람이 가벼운 넋두리가 되어버렸다. 혼자 쓰는 글이면서도 누군가 읽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글. 이건 내 욕심이 진하게 묻어있는 아주 사적인 글이면서도 답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내놓는 푸념이다. 반복되기만 하는 일상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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