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후 미우 Mar 28. 2017

우울증에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38분당 한 명이 자살한다는 한국은 그렇게 버티기 힘든 나라인 것 같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약 1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비참한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나태함을 향유하는 우리는 그 끔찍한 그림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도대체 왜 많은 사람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걸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답안을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누구나 겪고 있을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어려우니 대인 관계를 맺지 않게 되고,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우울증에 걸린다. 특히 한국 사람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일을 부끄럽게 여겨 치료를 받기보다 혼자 끙끙 앓을 때가 많다.


 컨트롤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은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어? 그냥 죽는 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라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어져 자살이라는 선택을 해버린다. 어디까지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자살하는 사람들은 모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먹고살기 편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가계부채는 해마다 점점 늘어가고, 오르는 물가와 부동산 가격에 비해 소득은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모 세대가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의 교육비(대학 등록금)은 여전히 터무니없이 비싸고, 노후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모님 세대는 허리를 한번 제대로 펴 보는 일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음이 병들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청년들은 좁은 원룸 안에서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고, 부모님은 그 청년들을 위해서 아무 말 없이 지원을 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숨 쉬지 못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이 괴로워하지 않는 일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우울증에 걸려 힘들 때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잠시 멈춰서 쉬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겪는 마음의 병은 우리가 평소 걸리는 감기처럼 잠시 내 마음이 피곤하고 아프다고 보내는 신호다. 그 신호를 우리는 ‘아, 내 마음이 힘들어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잠시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 내가 병원에 가서 심리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받는 일이 왜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지 않아야 하고, 멀쩡한 척을 해야 한다는 허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마음은 그렇게 꾸며댈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도 애써 외면하는 일은 점점 내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한국의 ‘폴포츠’로 불리는 최성봉은 강연100도씨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 좌절이 전부가 아닙니다. 언젠가 그 아픔과 고통이 지난 후에 새로운 세계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러니 살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힘든 하루를 보낸 자신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주세요. 사세요. 살아야죠. 사는 게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그 말이 맞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아픔과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인생에서 내려갈 때가 있다면, 다시 올라갈 때도 있는 법이다. 항상 우리의 마음은 커다란 욕심 때문에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놓칠 때가 많다. 한 발짝만 물러서면 우리는 눈앞의 절경을 볼 수 있고, 지친 마음이 활기를 되찾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나 또한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혼자 괴로워하면서 2년이 넘도록 항우울제를 복용해야 했고, 시간이 지나서 받은 재검사에서는 ‘분노 조절 장애’를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마음의 병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자신을 짓누른다. 이 병을 이겨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조금 더 천천히 내가 가진 환경을 바꾸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다. 강도가 높은 약을 복용하기보다 취미 생활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고, 조금은 용기를 내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혼자 걸어 다니며 사람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제법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굳이 힘든 상황을 일부러 만들지 않기 위해서 늘 책을 읽으며 마음의 공백을 채우고,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한다.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아 여전히 낯선 사람과 낯선 공간 속에서 보내는 건 어렵지만, 소음 속에서도 천천히 적응을 해나가고 있다.


 처음 대학을 복학했을 때 나는 스스로 ‘내가 어느 정도 문제없이 집단에서 버틸 수 있는가?’는 과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복학 후 처음에는 몇 번이나 앞으로 나가 “이 XX 새끼들아, 입 좀 다물고 조용히 좀 해라! 너희가 초등학생이냐? 지금 소풍 왔냐?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하며 고함을 고래고래 치고 싶은 걸 50번은 넘게 참았던 것 같다.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만약 진정으로 더는 고민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판단에서 손을 떼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매사에 이것저것 판단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는 괴롭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타인과 나 사이에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라고 명백한 경계선을 긋습니다. 이 마음가짐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분명 세상에는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도 똑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항상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헛된 반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본문 70)


 나는 남은 남이고, 나는 나라는 경계선을 분명히 긋고자 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사람과 마음 속 공간을 단절시키듯 잘라서 온전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일상 속에서 겪는 감정의 문제는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늘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그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나밖에 없다.


 만약 내가 다시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사람과 살아가는 일이 스스로 너무나 버티기 어렵다면, 나는 다시 전문가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볼 생각이다. 지금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내 마음에 쌓인 짐을 덜어내기 위한 시간을 항상 보내고 있다. 대학에 가기 전 아침에 1시간 정도 연습하는 피아노는 오늘 하루를 위한 에너지 충전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주변의 소음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항상 책을 들고 다닌다.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세계에 들어가는 일은 소음 속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는 단단하게 살 것이다>의 저자 다카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이 스위치가 되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존재를 확실히 자각할 수 없어 붕 떠 있는 느낌이 들 때나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 때는 취미나 특기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취미나 특기는 인생의 돌파구가 되어줄 겁니다. 설령 서툴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법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피터 드러커도 장점을 살리라고 했습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는 아무래도 흥이 나지 않게 마련인데,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들어오는 스위치 같은 게 있어서 그 스위치가 켜지면 갑자기 생기가 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힘이 발휘되고 있다는 실감을 가질 수 잇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 특기를 만들고 솜씨를 연마하다 보면 어느새 그 시간 자체가 충실해집니다. (본문 144)


 내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난 우울증을 겪었고, 앞으로도 또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절대 부끄러운 병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괴로워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삶은 괴로워하면서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에 새살이 돋으면서 우리는 더 강하게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다.


 너무나 힘들어 울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지 말자. 울고 싶을 때는 그냥 눈치 보지 말고 울어버리고, 내 마음을 토닥여줄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 필요하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 치료를 받거나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며 스스로 마음을 진단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닉 부이치치는 “행복은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응원받지 못하는 청춘의 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