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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Mar 27. 2017

응원받지 못하는 청춘의 도전

 사람은 도전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실패 걱정 없이 마음껏 도전해볼 수 있는 청춘은 그래서 많은 사람이 최고의 시기라고 말한다. 중장년이 되면 잃어버릴 게 많아 도전을 할 수 없지만, 청년일 때는 그런 리스크를 조금 더 덜고 도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는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자 하고, 어떻게 하면 나만의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정보를 얻고자 한다.


 도전. 도전하는 삶.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도전하지 못하는 삶은 정말 재미없는 삶이다. 사람의 가장 높은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우리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하는 도전은 바로 그 자아실현의 욕구와 연결된다. 그래서 도전은 너무나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쉽사리 도전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한다. 왜냐하면, 도전은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무턱대고 도전을 했다가 우리는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너무나 가혹한 시련이 되어버린다.


 장강명의 소설 <표백>을 읽어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도전 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젊은 이고 나이 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다 가져야지, 왜 청년들한테만 가지라고 하나요?"

"젊을 때는 잃을 게 없고, 뭘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까 그럴 때 여러 가지 기회를 다 노려봐야 한다는 얘기지. 그러다가 뭐가 되기라도 하면 대박이잖아."

"오히려 오륙십 대의 나이 든 사람들이야말로 인생 저물어 가는데 잃을 거 없지 않나요. 젊은 사람들은 잃을 게 얼마나 많은데…. 일례로 시간을 2, 3년만 잃어버리면 H그룹 같은 데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잖아요. 나이 제한을 넘겼다면서."

"대신에 그에 상응하는 경험이 남겠지."

"무슨 경험이 있든 간에 나이를 넘기면 H그룹 공채에 서류도 못 내잖아요."

"얘가 원래 좀 삐딱해요."

누군가 끼어들어 제지하려 했으니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술을 마시면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멋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하는 거잖아요."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빈정대는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p27)


 이 장면은 도전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를 보여준다. 먼저 앞을 걸어간 사람들은 청년 세대를 향해 도전하라고 말하지만, 막상 도전을 하고 이루는 결과가 없으면 누구도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도전을 통한 실패하는 경험은 성장을 위한 지양분이 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두 번째 기회를 얻는 일이 결코 싶지 않다.


 그래서 도전은 화려하게 빛나면서도 무서운 말이다. 오히려 그런 실패의 가능성을 딛고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도전하는 모습이 더 빛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도전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청년 세대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도전이 청춘의 권리인지, 의무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놓여버렸다. 과연 도전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대학에서 일본인 유학생과 주제를 정해 나누는 수업에서 ‘버킷리스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버킷리스트는 우리가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리스트를 말하는 것으로, 이 버킷리스트가 사실상 우리가 하고 싶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일본인 유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본인 유학생 또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도전이라고 말하는 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에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청춘으로 일컬어지는 우리 청년 세대는 생존을 위한 삶에 아등바등하고 있다. 어른들은 언제나 도전을 말하면서도 다른 면에서는 ‘먼저 취업하고, 늦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곧잘 말한다.


 그런데 정말 일단 취업을 하고 나서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취업을 하면 확실히 아무런 기반이 없는 것보다 도전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겠지만, 실패하면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오히려 도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생존을 위한 삶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현장 유지를 원하는 마음을 자연히 가지게 된다. 도전이라는 이름에 손을 뻗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 탓에 우리는 도전을 추구하지만, 도전하지 못한다. 청년 세대의 도전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고, 버킷리스트를 적는 일조차 허락받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결과를 통해 순위 경쟁을 강요당했고, 수치로 모든 걸 평가받는 삶을 살아왔다. 과연 이런 환경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서 사는 방식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어디까지 개인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단,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도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도전하지 않는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도전할 수 있고, 저마다의 사정으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A를 선택했다고 해서 B를 선택한 사람을 나무라는 건 자기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작년에 방송을 통해 본 <김제동의 톡투유>에서는 20살 백수 청중이 자꾸 주변에서 “취직은 안 할 거니?, 뭘 할 거니?”라고 물어볼 때마다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자꾸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면 “왜 자꾸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있냐고 압박을 주는 일이 고민이라고 김제동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김제동은 아주 멋진 말로 이 청중에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사람이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입니까? 병원에 실려가서 아픈 사람들은,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인가? 비유가 심할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열 받아서 그래요. 아니, 저렇게 있으면 돼지. 보면 좋죠? 그렇게 있으면 돼. 괜찮아. 하물며, 왜 남의 집 딸한테 '너 뭐하냐? 아무것도 안 하고 뭐하냐?'라고 하면 지금 대답하고 있지 않느냐고, 뭘 하려고 해도 자꾸 물어보니 할 시간이 없다. 뭘 하려면 뭘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던가! 화장실 가려는 사람을 두고, '너 어디 갈거니? 너 뭐 할 거니?'라고 자꾸 물어보면 화장실 못 가잖아.

제발 좀 젊은 친구들한테 취직 안 하느냐고 묻지 좀 마세요. 그건 저한테 '너 왜 그렇게 생겼니?'라고 묻는 것과 똑같아요. 그걸 어떻게 말하겠어요? 아, 그럴 거면 자기네들이 20대가 되면 취업이 제깍제깍 잘 되는 사회를 만들어 놓던가!"


 나는 김제동과 청중의 대화 속에 우리 사회의 모습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몸으로 체감하지만,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그런데 도전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으면 주변에서 늘 ‘넌 도대체 뭐하냐?’는 압박이 들어온다. 막상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혀를 차면서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모드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모두 살면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 있고, 해보아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온전한 시간을 갖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걸 해봐! 그때 아니면 언제 하겠어?”라는 말을 앞에서 듣고, 뒤에서는 “도대체 그때까지 뭐했냐?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했냐?”라는 구박을 받는다.


 도전을 권유하면서도 도전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 청년 세대는 권리인 듯 보장받을 수 없는 의무에 가까운 도전을 끼고 살아간다. 도대체 우리 청년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이렇게 가도 아니라고 하고, 저렇게 가도 아니라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바보처럼 주는 일만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도전도 아니고, 삶을 산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해본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많은 책을 만나고, 간간이 인연이 닿아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사는 게 나의 꿈이자 평생에 걸쳐 함께 하고 싶은 도전이다. 하지만 이 삶을 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다. 세간에 기준에서 보면 하잘 것 없는 일이고, ‘놀고 있네.’라는 비아냥을 듣기 딱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길을 가고자 한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고, 내 삶을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나는 내 삶 또한 옳다고 인정하고 싶다. <미움받을 용기> 책을 읽어보면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라고 말한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춤추는 꼭두각시보다 차라리 우스운 광대가 더 멋지지 않을까?


 청년 세대의 도전은 우스꽝스러운 광대가 되는 일이다. 누구도 도전을 칭찬해주지 않을 수도 있고, 실패하면 조롱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도전을 즐거워하며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광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도전은 의무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냥 있는 그대로 살면 된다. 우리가 사는 삶에 정해진 정답은 없으니까.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책을 읽어보며 이런 글이 있다.


실제로 어딘가로 이동하지 않더라도 '출구'를 찾아내는 일은 가능하다. 누구에게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 창'이 있다. 내 경우에 그것은 책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도 많을 테지.

네모진 종이책은 그대로 온전히 바깥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네모난 창이다. 따라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 실제로는 자기 집이나 거리밖에 알지 못하면서도 여기에 없는 어딘가에 '바깥'이 있고, 자유롭게 문을 열고 어디에라도 갈 수 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때가 오면 진정 창과 문을 열어젖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풀쩍 뛰어나가는 것이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각자 자신만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출구가 반드시 있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진정 창과 문을 열어젖히고 좋아하는 곳으로 도전하는 발걸음을 힘차게 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오늘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 여정에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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