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극장 02 춘몽

누구의 을도 아닌 아르바이트생 J 씨의 영화

by 미완극장




어서 오세요, 날이 많이 추워졌죠. 조금 지쳐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아니요, 사실 안 괜찮아요. 화딱지 나는 일이 좀 있었거든요. 영화라도 한 편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서 왔어요.


잘 오셨어요. 오늘의 관객 분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계신지 들어볼게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여기 적어 주시겠어요?























다 작성하셨나요, 제가 잠깐 볼게요. 진상 손님들... 진짜 힘든 하루였겠어요. 잠깐 맘을 좀 가라앉히고 푹 쉬다 가세요. 오시느라 힘들진 않으셨어요?


J: 골목길 따라서 찾아오는 게 좀 어렵긴 했는데... 찬바람 맞으면서 걸어오다 보니까 오히려 머리도 비워지고 좋았어요.


그러셨으면 다행이에요. 얘기를 좀 더 해주실래요?


J: 저는 수능 끝나자마자 알바를 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도 안 쉬고 알바를 한 게 지금 3년 차가 됐네요. 친구들이 저를 알바몬이라고 부를 정도예요.


아, 정말요. 어떤 아르바이트를 주로 하셨어요?


J: 단기 예식장 알바부터 편의점, 콜센터, 놀이공원 크루... 뭐 많이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카페에서 평일 마감으로 일한 지 일 년 다 돼 가요.


그러셨구나. 오늘 한바탕 하셨다는 건 무슨 일이었어요?


J: 아, 그거요. 아니, 카페에는 노래도 틀어 놓고 해서 좀 시끄럽잖아요. 어떤 손님이 뭐라고 주문을 하시는데 잘 안 들리길래 조금 크게 말씀해주실 수 있냐고 했더니 다짜고짜 화를 내는 거예요. 뭐 그거는 시작이었고, 기껏 다 먹고 나서 싱겁다고 다시 만들어 주든가 환불해 달라고 하는 손님까지 아주 총체적 난국이었어요, 오늘.


말만 들어도 긴 하루였겠어요, 정말로. 평소에도 그런 손님이 많은가요?


J: 네, 장난 아니에요. 디피해 놓은 머그컵 훔쳐가는 손님, 카드 던지는 손님, 외부 음식 안 된다는데 굳이 굳이 사과 깎아 먹는 손님까지...


사실 일이 힘든 거보다 사람 대하는 게 가장 힘들잖아요, 그쵸.


J: 그니까요. 솔직히 뭐 서서 일하고 이러는 건 다 적응돼서 괜찮아요. 그리고 일하다 보면 친절한 손님 좋은 손님들도 되게 많고요. 진상들이 어딜 가나 문제죠. 오천 원짜리 커피 한 잔에 갑질 하려는 손님들이 제일 꼴불견이에요.


갑질이 진짜 문제예요. 직원들은 을이 아닌데 말이에요.


J: 그러니까요. 성질부터 내고 보는 사람들, 어린애들이 커피 타 주면 더 맛있겠다느니 뭐니 하면서 은근슬쩍 헛소리 지껄이는 사람들까지... 아, 죄송해요. 말하다 보니까 또 얼탱이가 없어서.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럼 J 씨를 위한 영화를 하나 추천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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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씨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영화는 바로 <춘몽>이에요. <춘몽>은 한 여자를 좋아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예요.


J: 오, 치정 로맨스인가요? 저 그런 거 좋아하는데. 치고받고 싸우고 막 돈 봉투 건네고.


아쉽지만 그런 영화는 아니에요. 세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해서 쫓아다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어떤 로맨스나 섹슈얼한 관계, 그런 내용이랑은 거리가 멀어요.


J: 남자 셋 여자 하나인데 로맨스가 안 나온다구요? 그럼 어떤 게 나와요?


로맨스는 안 나오지만, 그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기대고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매력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한 여자와 세 남자가 수색이라는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거든요.


J: 아, 수색이요? 그, 그 어디지. DMC 옆에 수색이요? 어딘지 알아요.


네, 거기요. 영화 속에서 보이는 복잡하고 화려한 DMC 옆에 조용하고 외진 동네 수색은 어쩐지 조금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한없이 따뜻한 느낌도 들어요. 수색에 사는, 아까 말한 한 여자와 세 남자는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어요.


J: 사연 있는 남자 여자 그런 얘기구나. 저 그런 것도 좋아하는데.


네, 혼자 아픈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고향 주막’이라는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조선족 예리, 가족 없이 평생을 살아온 동네 건달 익준, 월급을 떼이고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매일 고용주의 차에 90도로 인사하는 탈북자 정범, 건물주의 아들이지만 어딘가 어수룩하기만 한 종빈이 그 사람들이에요.


J: 월급을 떼여요? 아, 저 옛날에 단기 알바 했다가 돈 덜 들어와서 전전긍긍하던 거 생각나요. 그때 진짜 짜증 났는데. 제가 난리 난리를 쳐서 다음 주에 받아내긴 했지만. 저는 당하고는 못 살거든요.


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사회의 비주류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점을 이용해서 이른바 갑질을 하는 사람들도 등장하죠. 그런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조금 인상적이에요.


J: 어떻게 해결하는데요?


종빈이라는 인물이 간질 때문에 발작 증세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요. 그런 점을 이용해서 갑질 하는 악덕 고용주에게 한 방 먹이는 모습을 보여 줘요. 고용주가 결국 돈 줄 테니까 제발 그만하라면서 사정을 하거든요. 자기 약점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연기하고 드러내서 남을 돕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힘듦을 짊어진 사람들이지만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J: 좀 멋있는 거 같아요. 제일 약한 모습을 드러내서 강한 누군가를 이긴다는 게 통쾌할 거 같기도 하고.


네, 맞아요. 또 <춘몽>은 소외된 인물들을 보여주는 영화이면서도, 영화 제목처럼 현실과 허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꿈같은 영화이기도 해요.


J: 꿈같은 영화면... 독특한 영화일 거 같아요, 맞나요?


정말 독특해요.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한바탕 꿈을 꾼 거 같은 기분이 드실 거예요. J 씨에게 갑질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긴 하루를 보내셨을 텐데, 조금은 위로가 되시길 바랄게요.


J: 맞아요, 감사해요. 그냥 영화 한 편 보고 잊어버리면 돼요. 사실 진상들이야 제 인생에 중요한 사람들도 아니고, 짜증이 날 뿐이지 별 타격감은 없거든요.


맞아요, 누가 갑질을 하려 해도 J 씨는 누구의 을도 아니니까요. 어떤 일도 J 씨를 힘들게 하지 않길 바라면서 티켓에 떠오르는 시 구절을 적어드릴게요. 언젠가 또 들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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