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극장 03 4등

가장 특별한 보통의 수험생 B 씨의 영화

by 미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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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복을 입은 관객분은 처음이라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독서실에 있다가 공부가 너무 안 돼서 왔어요. 꼭 한 번은 와보고 싶었거든요.


네, 잘 오셨어요. 여기까지 오셨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거겠죠? 여기에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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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작성해 주셨어요? 제가 한 번 볼게요. 아, 수험생이시구나. 수능이 얼마 안 남아서 마음이 복잡할 거 같아요.


B: 네, 맨날 몇 번씩 현타가 와요. 막 선생님들이 그런 말 하잖아요. 수능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근데 책을 보고 있어도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래요.


마라톤이라고 하기에도 사실 너무 긴 시간이죠. 그 긴 시간을 공부해서 딱 하루에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것도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구요.


B: 그러니까요. 인생에서 보면 수능 진짜 별거 아니다, 이러는 거 많이 봤는데 그거야 다 지나갔으니까 하는 말이죠. 인생 전부를 놓고 봤을 때는 그렇겠지만 지금 제 인생에는 이게 전부거든요.


네, 어떤 마음인지 알아요. 여기 있을 때만이라도 마음 푹 놓고 있다 가세요. 따뜻한 거 한 잔 드릴까요. 핫초코 좋아하세요?


B: 네, 저 단 거 엄청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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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 단 거 좋아한다고 하셔서 달고 진하게 탔어요.


B: 우와, 감사합니다. 공부도 안 되고 해서 찾아온 건데 오길 잘한 거 같아요.


네, 너무 잘 오셨어요. 공부하느라 많이 힘드셨죠. 얘기를 좀 더 들려줄래요?


B: 사실 제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공부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싶을 때가 많았어요.


정말로요. 그건 아마 모든 수험생 분들이 다 공감하는 기분일 거 같아요.


B: 네, 저는 어릴 때 악기 하고 싶었거든요. 솔직히 예체능 하는 친구들 있어서 그게 진짜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해보고 싶은 거 해볼걸 하는 생각도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아, 어릴 때 음악 쪽으로 꿈이 있었어요?


B: 중학교 때 동아리를 그런 쪽으로 했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공부하는 건 재밌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건 너무 재밌으니까.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하고 싶다고 얘기도 했었는데 바로 기각당하고 학원 엄청 돌려졌죠. 공부나 하라고… 입시 음악 하려면 어릴 때부터 했어야지, 이미 여섯 살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한 애들 어떻게 이길 거냐구요. 그래서 접었죠. 뭐 수능 4일 남겨놓고 이제 와서 할 말은 아니지만요.


그렇구나… 마음 고생이 많았을 거 같아요. B 씨의 얘기를 들으니까 떠오르는 영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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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씨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4등>이에요. <4등>은 수영을 하는 준호라는 아이의 얘기예요. 영화 제목이 4등인 이유는 준호가 대회에서 늘 4등을 해서구요.


B: 아, 수영이요? 스포츠 영화 이런 건가요.


네, 수영이라는 스포츠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소재이긴 해요. 그런데 단순한 스포츠 영화라기보다는 스포츠를 통해 경쟁이나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예요.


B: 아, 근데 경쟁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 폭력은 뭐예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심신의 폭력이에요. 주인공 준호의 어머니는 준호가 늘 4등만 하는 걸 엄청 못마땅해해요. 준호 본인보다 준호의 대회 성적에 대한 컴플렉스가 더 심한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아이를 때려서라도 성적을 올려 준다는 코치에게 데려가 훈련을 받게 하죠. 준호의 성적이 결과적으로 오르긴 하지만, 코치한테 매일 맞으면서 훈련을 받는 거예요.


B: 막 때리고 그러면 안 되지 않아요? 포스터 보니까 엄청 어려 보이는데. 그리고 4등이면 잘하는 거 같은데... 4등이 못마땅하면 제 성적은...

물론 그렇죠. 그치만 수영 같은 운동 경기에서 사람들이 기록해주는 건 1등, 아니면 적어도 3등 안에 들어 메달을 따는 선수들이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준호의 엄마는 아이의 행복보다는 성적을 올리는 게 더 중요한 인물로 나와요. 버티다 못한 준호가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내가 너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네가 어떻게 수영을 그만두냐'고 다그치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 장면은 정말 많은 생각을 들게 하죠.


B: 엄마가 수영을 더 열심히 했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준호를 매일 새벽같이 데리러 다니고, 잘 가르친다는 코치님이면 발품을 팔아서 알아보러 다니고, 경기마다 준호보다 더 마음을 졸이면서 성적을 체크하고 이런 일들이요.


B: 아... 그런 식으로 시달리는 거 솔직히 공감돼요. 저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기대를 좀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학원도 많이 다니고. 제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라 창피해하실 때도 엄청 많았구요. 그럴 때마다 자존감 팍팍 깎여요, 진짜로. 부모님의 꿈은 애들의 꿈이 아닌데. 뭔가 막 강요당하는 느낌으로 성공을 하면 진짜 행복해질까요.


맞아요. 진짜 열정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걸 찾게 되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걸 따라가게 되잖아요. 그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어요. 수능을 3일 정도 앞둔 이 시점에서 B 씨가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냈으면 좋겠구요. 지치는 것도 집중이 안 되는 것도 잘못이 아니에요. 지금은 당연한 거니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진짜 대단한 거잖아요.


B: 그쵸, 감사해요. 맨날 책상 앞에서 시간 보내면서 제가 뭘 하고 있나 싶을 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맘이 좀 편해요. 우선 수능이 정말 코앞이니까 잘 보는 게 먼저겠죠.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래도 그 다음엔 정말 제가 원하는 걸 잘 생각해보고 싶어요. 정시 쓸 때 진짜로 제가 가고 싶은 과가 어딘지 잘 생각해 볼게요.



다 잘 될 거예요. 원하는 것도 찾게 될 거구요. 응원할게요. 여기 티켓에는 B 씨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구절을 적어 뒀어요. 언젠가 또 들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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