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 손은 의사 손
엄마의 입장에서 성인이 된 아들과의 스킨십은 어릴 젓 보다 횟수가 적다. 그들은 중학생이 되자 자기의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이들과 대화나 신체접촉은 성장속도만큼이나 멀어졌다. 물론 내가 아플 때면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서로 보호자라도 된 것처럼 나에게 살갑게 하지만, 내가 그들을 포옹하거나 등을 토닥이거나 손을 만지는 것 외에는 조심스럽다. 가혹 운? 좋게 신체일부를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건 아이들이 아플 때다. 내 두 손바닥으로 그들의 등과 배를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마사지하면 열도, 몸의 통증도 사라지고 안정감을 얻는지 아이들이 잘 잤다. 그런 습관 때문인지 아이들이 아플 땐 잠겼던 아이들의 방문이 열려있다. 이건 엄마가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다. 밤새 간호한 다음 날이면 증세가 완전히 옅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아이들의 방문이 예전처럼 다시 닫혀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한 아이가 감기 걸리면 다른 아이도 같이 걸리는 일이 잦다. 칭얼되는 아이들에게 나는 예전 친정엄마가 나에게 했듯 아이들의 배를, 등을 손 마사지하면,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칭얼거림이 덜해지고 잠을 잘 잤다. 나는 두 아이의 배에 한 손씩 올려놓고 마사지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에 음을 실어 불러주곤 했다. 조금 컸다고 신체접촉을 부끄러워하거나 때론 거부하던 아이들도 몸이 아프면 엄마의 손을 예전의 어린 나처럼 은근히 기다리는 것 같다. 친정엄마는 내 몸에 열이 날 때나 체할 때, 심지어 생리통일 때도 내 몸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엄마 손은 약손"하시며 내가 잠이 들 때까지 마사지해 줬다. 실제적으로 손 마사지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몰랐을 엄마인데도, 언제나 내가 아플 때면 밤새 등과 배를 마사지해 준 덕에 덜 아펐으며 잠도 잘 잤다. 엄마의 사랑을 밤새 받고 있다는 행복감과 안정감으로 잠을 더 잘 잤던 것 같다. 아마 내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자 감기로 아픈 것보다 이젠 숙취일 경우가 더 많다. 엄마의 손길이 주는 능력을 믿는지 아플 때면 배와 등을 마사지해 달라는 표현으로 문을 열어 놓거나, 때론 직접 부탁할 때면 나는 아이들이 아픈 것도 잊고 속으로 "야호"하며 좋아한다. 성장한 아들과의 신체접촉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고, 이 기회에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은연중 할 수 있어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잦은 숙취나 감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비혼 주의자라고 선언한 아이의 등과 배에 손바닥으로 마사지하며 속내를 보이는 행위를 한다. "엄마 손은 약손, 와이프 손은 의사 손"을 음률과 섞어 반복적으로 조심스럽게 내뱉는다. 결혼하라는 말을 직접 했다가는 싫어할 것이 뻔한 아이들에게 나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소화를 못 시키는 증세가 보이면 친정엄마는 냉큼 내 등에 손을 얻고는 예외 없이 "엄마손은 약손"을 하시면서 나 대신 커 억 커 억 소리를 낸다. 나는 친정엄마의 꺼억 소리와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 당당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웠던 모습을 보았다. 어쩌다 출가해 놀러 온 딸자식이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이 있기라도 하면 기회는 이때다 하는 마음인 것 같다. 마음 놓고 자식의 몸을 만지는 것이 그렇게 좋은 셨나 보다. 자는 나의 다리를 주물러 주고, 얼굴을 만지고, 손을 만지면서 말씀하셨다. "내 자식, 이쁜 내 자식 어미 아비 잘 못 만나 고생한다". 내 눈물이 엄마에게 보일까 몸을 비틀면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이불을 다시 고쳐주곤 하셨다. 엄마는 밤새 뒤척이는 내 곁을 지키며 행여나, 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하고 싶은 말을, 자식의 몸을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킨다. 잠자는 척하는 나의 얼굴을 만지던 친정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좋으셨을 것이다. 나도 아픈 아이의 배를 손 마사지하면서 중간중간 아플 때만 허락된? 아이의 얼굴을 만지며 "마음과 얼굴이 잘생긴 내 아들"이라며 친정엄마처럼 맘껏 자식의 얼굴을 보고, 만지며 내 속내를 보이곤 한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마르고 힘없어진 그 손으로 내 몸을 만지던 손길이 너무 슬펐다. 딸이 잠자는 모습을 밤새 보면서, 혼자 사는 나에게 "엄마손은 약손, 남편 손은 의사 손"이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이젠 엄마의 거친 손을, 속내를 보이는 엄마의 독백을 들을 수가 없지만 아이들의 아픈 배를 마사지해주다 보면 내 배에, 내 등에 엄마의 손길이 닿은 듯 온몸이 따스해진다. 나 또한 언젠가는 기운 없고 거칠어진 내 손이 아이들의 몸에 닿을 때, 나처럼 거칠어진 늙은 어미의 손길이 서글퍼 아이들도 속으로 울 것이다. 아이들도 내가 친정엄마에게 그랬듯, 나처럼 자는 척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 들은 척, 하면서 듣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