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컥 벌컥
울음이 나올 것 같아
컵에 물을 담아
눈물을 마시듯이 물을 마신다.
꿀꺽
억울함도 삼켜본다.
슬픔도 넘겨본다.
언젠가 부터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
들키지 않으려고 만든
나만의 필살기다.
으아앙
나를 닮은 첫째아이가 울면서 떼를 부리다
찬물을 벌컥 벌컥 마신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나는 화가 난다고 눈썹을 씰룩이라는 법을 알려준다.
아이가 슬픔을 삼키며
물 배만 채우는 나처럼 되지는 않길 바라며
화를 내는 법을 가르쳐본다.
“엄마, 동생이 내가 만든 블록을 또 부셔버렸어, 으아앙”
또 시작이다. 6살의 첫째와 3살의 둘째. 형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자기마음과 같이 형처럼 할 수 없는 둘째의 답답한 마음은 결국 형이 공들여 쌓아놓은 블록을 망가뜨리는 걸로 놀이를 대신했다. 또 울음이 터진 첫째.
첫째는 울음이 많다. 유치원에서도 다른 부분은 어른스럽다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울음을 선택하는 방법이 나이에 맞지않는 방법이라고 차근차근 지도를 하고 있다고 했고, 집에서도 그런 부분을 잡아달라고 했다. 남편은 이제 여섯살인데 늘 울면서 말을 하는 첫째가 안타깝기도 못마땅하곤 했다.
“누구를 닮은거야 도대체”
울음이 많은 것은 나를 닮은 것 같다. 4살부터의 기억이 나는 나는 어릴 때 궁금한게 많은 아이인 만큼, 어른들이 나의 질문에 성의없이 대답하거나 대답이 성치않을때면 화가나고 속상할 때 눈물부터 나왔다. 그래서 울음이 많아서 종종 혼나곤 했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때 눈물을 참는 나만의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는 물을 마시는 것이다. 그 방법을 알고 난 뒤에는 그나마 밥먹으면서 얘기를 하다가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 다른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눈물을 삼킬 수 있었다. 그렇게 자라서 이제 엄마가 되어서, 나와 닮은 아이를 보니 다시 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그때의 나처럼 울음을 삼키는 법으로 물을 마시는 방법을 비밀전수처럼 살짝 얘기를 해줬다. 그러니 아이가 울음을 삼키는걸 종종 보게되었다. 정작 내가 가르쳐줬으니, 내눈에는 그게 보이니까 한 켠으로 또 답답하다. 뭐가 그리 슬프고 뭐가 그리 답답하니 라고 하던 어른들의 말을 내가 하고 있었다. 이제 그 마음도 알 것 같다.
“엄마가 화내는 법을 가르쳐줄게”
첫째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정작 둘째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첫째는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는 것 같다. 자기가 몇번이나 좋게 얘기를 했는데도 결국 부서져 버린 블록처럼 자기마음을 부서뜨린 동생이 아직도 미운 것 같다. 지금 상황은 화를 내야 할 상황인데 울고만 있는 첫째에게 다가가본다.
“지금 화가나서 울고 있는거야?”
“응”
“우는 것은 다쳤거나 슬플 때 하는 표현이야. 지금은 동생에게 블록을 망가뜨려서 너가 화가난다고 동생에게 얘기를 해줘야해. 그래야 동생이 아 형아가 이렇게 하면 화가나는거구나라고 알 수 있어. 동생은 아직까지 말을 다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우리가 얼굴로 얘기해줘야해.”
“난 화가나 그래서 우는거야 우아아아앙”
“화가날때는 이렇게 하는거야. 눈썹을 이렇게 만들고, 허리에 손을 올려. 그리고 배에 힘을 주고 ‘그렇게 하지마’라고 소리를 크게 내보는거야”
내가 하면서도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첫째가 갑자기 울음을 멈췄다.
잠깐의 정적에 갑자기 긴장되었다. 뭐지, 이 방법이 통한건가.
“(훌쩍)엄마, 그럼 손은 허리 어디에 올리면 되는거야? 둘 다 올려야돼?”
“응, 여기 엉덩이랑 허리가 연결된 뼈 만져지지? 그 뼈 위에 손을 올려두는거야.
그리고 눈썹을 이렇게 해봐”
“으어아아앙 눈썹은 아직 안돼”
아직 눈물이 있어서 씰룩거리는 단계여서인지 눈썹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또 몇 분의 정적이 지났다.
“엄마, 나 이제 눈썹 움직일 수 있어”
눈물이 그치니까 눈썹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얘기를 하는 첫째가 신기했다.
“응 그래, 그렇게 하고 허리에 손을 올려봐. 그렇게 해야 너가 화가 난거를 얘기할 수 있는거야”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나의 어린시절과 마주치는 아이의 모습을 만날 때 엄마는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엄마로 돌아오기 위해서 그때의 아이였던 나와 이야기를 해본다. 그때의 나에게도 화를 가르쳐본다. 속상함과 분노의 차이, 억울함과 짜증의 차이, 답답하고 미운 마음의 차이. 그 차이를 그때의 어린 아이는 모르고 물만 삼켰지만, 지금의 어른 아이는 물배만 채우고 있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