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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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수

잃어버린 관계들에 대해서 가끔 생각한다. 내 잘못이었을까 걔 잘못이었을까. 결국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는 결론이 난다. 그럼에도 내 잘못이 크다면 또는 상대가 그렇게 느꼈다면 사과하고 싶다. 이제는 전할 수도 없지만.

당시의 나는 결백하고 억울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그래서 사과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난 뒤엔 모든 게 내 잘못 같았다. 여태 내가 저질렀던 아무 연관도 없는 실수들이 떠오르면서 세상에 나만한 쓰레기가 없는 것 같았다. 그게 반복되니까 이제는 아무 생각도 안 든다. 그냥 우린 연이 아닌가 보다. 연락처도 다 지웠다.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해야 할까 모른 척해야 할까 어떡하지 고민했는데 웃기게도 한 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못 봤을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잘 살길 바란다. 아주 많이는 아니고 나보다 조금 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몇 변의 이별로 인해 깨달은 게 있다면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거다. 이후로 평생, 영원 같은 단어는 나에게 있어 소설에나 나오는 단어가 됐다. 영원한 게 어딨어. 감정은 바라고 상하고 닳는다. 모든 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잠수 이별을 당하더라도, 혹은 서서히 멀어지게 되더라도 덜 슬프다. 그냥 우리 연이 여기까지 인가 보다, 유통기한이 다가오나 보다 하며 넘기게 된다.

물론 가끔은 속상하다. 상대가 더 이상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게.

그래도 함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그 순간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때 함께여서 즐거웠으니까.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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