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맥시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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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수

강의 시간에 귀에 피가 나도록 들어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단어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미니멀리즘'이다. 트렌드 조사 때도, 의미부여에도, 컨셉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다.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나랑 정말 대척점에 있는 단어라고.

나는 맥시멀 리스트다. 물건 사모으는 걸 좋아하고 버리는 걸 잘 못한다. 예쁘고 쓸모없는 것들을 자주 산다. 마음에 들면 똑같은걸 여러 개 사기도 한다. 내 공간은 새롭게 구매한 것들과 오래전부터 쌓아뒀던 것들로 가득 찼다.

이것도 저것도 언젠가 쓸 일이, 입을 일이, 먹을 일이 있을 것 같아 버리질 못하겠다. 특히 옷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한다. 이 옷은 언젠가 결혼식에서 입으면 예쁠 것 같고, 저 옷은 언젠가 페스티벌에서 입으면 예쁠 것 같다. 당연히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옷들을 버릴 수가 없다.

소품이나 옷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때 받았던 편지, 교환일기, 여행 갔을 때 사용했던 지하철 표 같은 것들도 가지고 있다.

내 물건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그래서 쉽게 버리지 못하겠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고 사소한 것을 잘 기억한다. 이건 이모가 여행 다녀와서 준 저금통(여러 개 중에 내가 고른 거.), 이건 친구랑 소품샵 가서 산 여행 노트. 지금은 그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 이건 막내 이모랑 같이 본 영화표. 영화는 신파 가득했고 내 취향이 아니었으나 이모랑 옆 자리에 앉았던 거나 영화가 끝나고 먹었던 떡볶이 같은 게 생각난다. 이런 기억들이 떠올라서 못 버리겠다. 잊고 지내더라도 언젠가 이걸 보면 다시금 기억이 떠오를 테니까.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닌 기억이지만.

나는 이 성정을 완벽히 바꿀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세미' 미니멀리스트가 될 거라는 걸. 예전에는 이런 걸로 스트레스도 받았는데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걸 뭘 어떡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그래도 단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사모으는 것들은 줄이기로 했다. 더군다나 플라스틱 소재라면. 나는 지구를 극진히 사랑하는 편은 아니지만 지구 생각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야 하니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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