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뭐 하는 애니 정말?
여러분은 일본남자와 연애라고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가?
토모토모? 유명 일본 남성 연예인? 배우? 아이돌? 만화? 애니메이션? 혹은 일본 여행 중 길거리에서 만난 재수 없는 양아치들?
내게 있어 연애 대상의 일본 남자는 '죽도록 연락이 없음'이었다. 정말 죽은 듯이 연락이 없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무 번도 더 생각했지만, 일본 남자는 죽도록 연락이 없다.
나의 첫 일본 정착지는 교토였다.
일본의 전통적 건물들, 전통적 문화들,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 먹을 것도 볼 것도 많은 그 교토. 녹차로 유명한 그 교토. 처음이야 좋았다. 늘 사람으로 붐비는 시내 한가운데를 (역병이 이유이지만) 여유롭게 먹고 구경하고 다닐 수 있었다. 하루이틀 지나다 보니 점점 지루해졌다. 즐거우면 즐겁다고, 맛있으면 맛있다고 감상을 나누고 일상을 공유할 사람이 없었다. 친구는커녕 지인도 없었으니 고독했다.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그렇기에 관심사를 등록하면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어플을 등록했다.
그리고 그 어플이 친구 사귀는 어플이 아닌 연애를 위한 매칭 어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이미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난 뒤였다.
아시다시피 매칭 어플은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정말 만국 공통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어플 특성상 사진을 올려두어야만 친구를 찾을 수 있는데, 제대로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사진을 올려놓고 사람의 얼평을 하거나 음습한 내용의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역시 익명 뒤에 숨은 인간은 추악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어플을 지워버리려 했다.
지우려고 배경 화면으로 돌아갔을 때, 바로 그 타이밍에 '좋아요, 대화하고 싶어요'가 도착했다. 사진도 제대로 자기 얼굴에, 프로필도 무뚝뚝하게 쓴 사람이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승낙했다.
왜 그냥 지우지 않았냐 묻는다면, 얼굴이 매우 취향이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얼굴이.. 얼굴이 진짜로, 정말로 취향이었다.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자, 흠흠, 정도의 심정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말 프로필 대로였다. 다정하려고 나름 노력은 하는데 무뚝뚝하고, 답변의 텀이 길었다. 아침에 한 번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는 내용의 조금 긴 라인 한 통, 저녁엔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내용의 라인 한 통. 도대체 이 자식은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어플을 지운 후에도 연락은 계속되었고, 내가 답장을 하지 않은 채 잠들어도 아침저녁으로는 제대로 연락이 왔기에 도대체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처음 전화를 한 날이었다.
나는 모처럼의 휴일이어서 시내의 카페로 외출해 있었고, 그 애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탄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골 버스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딱 시간이 비어서 전화했다고. 그렇게 별 같지 않은 얘기로 20분을 대화했다.
그리고 물었다.
"너는 나 안 좋아해?"
"아니? 난 너 좋은데."
"근데 왜 연락을 안 해?"
"아침에 연락하잖아?"
"생사 확인 하는 것 같아.. 그런 것 말고 좀 더 연락하기 어려워?"
"내가 현장직이어서 어려워... 그럼 아침점심 저녁에 연락하고 밤에 전화할게."
엄청나게 다정했다. 하지만 그는 영 문자 연락에 능하지 못했다. 오히려 매일 밤 30분씩 이어지는 전화 쪽이 진솔하고 그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남자친구는 좀처럼 글을 쓰는 일에는 정말 압도적 무재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10시부터 11시까지, 하루의 마무리를 공유했다.
사실 목소리는 평범한 목소리였다. 딱히 더 반할 여지는 없었으나, 솔직하고 잘 웃고, 호전적인 의향을 적극적으로 전해주는 사람이었기에 꼭 오래도록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