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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O Jul 19. 2023

일본 남자와 연애하기 2

넌 진짜 뭐 하는 애니??

 매일같이  전화 연락만을 한 지 한 달, 우리는 드디어 식사를 핑계로 만나보기로 했다.

자기는 차가 있으니 너희 동네에서 만나자길래 조금 감동받았다. 하지만 우리 집은 교토 시내 한복판이었으며, 걔네 집은 드넓은 시가의 산골짜기 시골이었다. 자동차로 2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였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내가 중간까지 갈 테니 너도 중간까지만 오라고 했지만, 그럴 순 없다며 한시코 거절했다.

 그때 알았다. 표현하는 법을 정말 요만큼도 모를 뿐, 정말 괜찮은 녀석이구나.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교토 여행을 온 적이 있는 분이시라면 아시겠지만, 교토는 길이 정말 좁다.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많다(사람 보다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차량은 일반적으로 바이크가 지나다닌다. 그런데 쟤는 그냥 승용차를 가지고 있단다. 경차도 아니고? 정말 큰 일이었다. 교토는 차가 없기 때문에 주차장 역시 극히 적다. 심지어 길이 좁아 경차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차장의 면적도 좁다. 승용차를 댈 공간이 정말 한정적이다. 큰 일 중의 큰일이었다.


 [여기 진짜 차 댈 데도 적을 텐데?? 괜찮아?]

 [괜찮아 나 그런 거 잘 찾아!]

 [그게 문제가 아닐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와 줘서 고마워]

 [당연히 내가 가야지 늦지 않게 일찍 갈게]


 어색한 첫 만남을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차 구역을 찾지 못해 갓길을 떠돌던 차를 찾아 큰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창문 너머로 처음 만난 얼굴은 사진보다 날카로운 눈매에 진한 눈썹, 조금 더 예리한 인상이었다. 지금은 질릴 만큼 매일같이 앉는 그 조수석, 첫 만남에 앉았을 때는 그 무게가 상당했다.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할지, 한창 어색할 때인데 이렇게 좁은 곳에 이렇게 가까이에 앉아있어도 괜찮은 건지.


 "그러고 보니 이거 하려고 했어. 오하용!"


 어색함에 뚝딱거리며 창문을 내다보다 손을 꼬물거리다 좌석에 고쳐 앉다를 반복하던 내게 농담을 건넸다. 당시 라인을 할 때면 매일 아침 인사에 내 이름을 섞어 보내던 메시지였다. 오하용!(좋은 아침!). 아침을 지나 점심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긴장을 풀기엔 적절한 농담이었다.


 근처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뭘 먹을지 정해두지 않아서 가볍게 물어보니 가츠동이 먹고 싶단다. 허. 세상에 처음 만나는 이성한테 가츠동을 먹으러 가자고 하다니 정말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보통 가츠동은 일본에서 '와구와구' 먹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소개팅이나 첫 만남에서 먹는 음식이란 이미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웬일인지 나도 가츠동이 댕겨서 그래! 하고, 양이 많고 고기가 두툼하기로 유명한 집으로 향했다.

 그래서 우리가 즐겁게 식사를 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엄청 어색했다. 거의 말없이 먹었다. 평소엔 잘도 농담 섞인 라인 보내더니 왜 만나면 말이 없어지는 거야, 아까는 재밌었잖아, 원래 이런 사람인 거야? 하고 속으론 많이 애태웠다. 나는 정적을 견디지 못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정적을 깨려고 이런저런 소재를 끄집어냈지만 응, 아니, 그렇구나 하는 단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 시간이 너무 괴로워서 얘랑 두 번은 안 만난다 밥 먹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졌었다.

 식사를 다 하고 한참 어색하던 차, 그 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좀 걸을까? 배가 너무 불러."


 그 말에 또 팔딱 낚여버려 응, 응! 하고. 교토 시내를 소개해주겠다면서 앞장서서 니시키 시장을 가로질렀다. 사람이 많이 없던 시기이긴 했으나, 시장 길목 자체가 좁았다. 한 줄로 서서 지나가야 하는 시장 골목. 늘 길을 잃는 데에 겁이 많은 나였기 때문에 뒤를 쫓아가면 앞사람의 어딘가를 꼭 붙잡고, 내가 앞서갈 때엔 뒷짐을 지고 손을 내미는 습관이 있었다. 그날도 앞장서 나가다가 뒷짐을 지고 어색하게 손을 내민 듯 내밀지 않은 듯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그 애가 손을 덥석 잡았다.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웃어."

 "잡아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습관이야. 동생 있어서 그래."

 "동생이 있구나."

 "너는 누나 있지?"

 "어떻게 알았어?!"

 "그냥 그럴 것 같았어."


 그 대화를 시작으로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 대한 정보를 돌아가며 이야기했고, 숨을 돌리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선 이미 제법 풋풋한 분위기의 커플이 되어 있었다. 주문한 커피의 얼음이 전부 녹을 때까지 눈을 맞추고 대화를 했다. 눈이 깊은 사람이었다. 눈동자가 반짝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솔직하기도 했고. 꼬인 구석이 없는 올곧은 성격이 점점 마음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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