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남자와 연애하기 8

사랑과 전쟁 현실판

by MIYO

우리는 아주 별 탈 없이 행복한 생일을 보냈다.

타지에 와서 보내는 첫 생일, 혼자가 아니어서 기뻤고, 마음에 드는 남자와 함께여서 즐거웠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 즈음이었나.
느즈막히 일어나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행복하고 달달한 기분을 최고로 느끼던 중,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일본에서 일반적인 라인전화도 아니고, 그냥 전화번호로 걸려온 전화.

스치듯 봤지만, 그건 분명 여자 이름이었다.

그 애는 당황한 듯 황급히 휴대폰 화면을 숨기며 잠시 전화를 하고 오겠다며 방을 나갔다.


수상했다.

아니, 이걸 의심하지 않는 편이 바보 아닌가? 정말로, 진심으로.

어떻게 봐도 지금 모든 화살표는 그 여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사지를 퍼덕이며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심장만 쿵쿵 뛰고, 머리는 새하얘졌다.


"친구 전화였어."


겠냐.

누가 봐도 그냥 친구의 전화는 아니었다. 굉장히 곤혹스러운, 걱정이 앞서는 표정.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곤란해하는 표정.


"친구가 가지러 올 게 있다고 좀있다 잠깐 들른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 애는 한숨을 푹 쉬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사람이었어. 놓고간 짐을 가지고 가겠대. 이제와서."

"역시 그렇지?"

"눈치 챘구나... 응, 맞아. 그래서 그런데, 괜히 불똥 튀지 않게 방에 있어줄래? 네가 그사람한테 상처받는 거 싫어."


손을 마주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마주쳐서 좋을게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괜히 봤다가 그 사람이 나보다 예쁘기라도 하면 자존심과 자존감에 아주 큰 금이 갈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 여자는 갑작스레 들이닥쳤다.

채 전부 울리지도 못한 초인종을 몇번이고 두들기고, 현관문을 발로 쾅쾅 차며 들어왔다.

와, 저런 여자랑 살았다고? 싶은 생각과 함께 나는 이불속으로 푸욱 파묻혔다.]


'방에 친구 와 있으니까 조용히 네 짐만 가져가.'

'뭐야? 여자 불렀어? 너 여자 생겼어?'

'조용히해, 주변에 민폐니까 소란 피우지 말고 할 것만 하고 가라고.'


멀리서 들리는 대화소리, 쿵쿵 뛰는 심장.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리고 정말 딱 3초 후, 거실에서 그릇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여자의 큰 고함소리. 그 애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그걸 받아주고 있을 터였다. 속이 터졌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지지 않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내가 나가서, 정면으로 승부해서, 혹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것 때문에 그 애가 내게 실망한다면 나는 그게 더 싫었기 때문에.


그 여자가 온 집안을 뒤집고 무거운 짐들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제 조금 있으면 다 끝나겠구나. 그리고 그 순간 타이밍 좋게 화장실 신호가 몰려왔다. 음, 곧 끝나니 끝나면 바로 화장실로 가야겠다!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쿵쿵거리는 커다란 발소리와 함께 방문이 시원하게 열렸다.

그 여자였다. 그 여자는 날 보더니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집이 떠나가라 소리질렀다.


"친구? 친구우!??! 친구같은 소리 하네!!! 여자 있잖아 이거 봐!!"


거기서 뭐라고 한 마디 하고싶었으나, 당시 내 꼬라지는 자고 일어나서 세수 양치만 함+산발인 머리+쌩얼+후줄근한 잠옷이었다. 차마 말이 나오질 않고,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다.


"아 나가라고! 들어오지 않는 약속이었잖아!"

"놔 봐. 저기요, 얘랑 사귀는거죠? 에? 맞죠?"

"네 맞는데요."

"허! 이거봐 여자 맞네. 여자 생겼네!"


아니 어차피 다 헤어지고 끝난 판에 여자 생기면 안되는 건가... 나는 멀뚱히 그사람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 어자는 맹한 내 얼굴에 더 열이 받았던 것 같다. 한참을 날 째려보다 씩씩거리며 방을 나가는 여자.

풀메였다. 완전 꾸꾸꾸였다. 자존심이 상했다. 난 이러고 있는데, 나는 이러고 화장실에 가고싶은데!!

여자가 나간 사이에 후다닥 급하게 치마를 차려 입고, 급한 쿠션과 아이라인, 눈썹을 그리고 틴트까지 음파음파. 하자마자 다시금 들이닥치는 그여자. 이번엔 좀 그럴듯한 꼴로 앉아있던 날 보고 흠칫 놀라더니, 심문을 하기 시작한다.


"언제부터 만났어요?"

"좀 됐는데, 왜요?"

"허!"

"다 끝난 사이고, 그쪽이 일방적으로 짐 놓고 간 거잖아요."

"뭐? 이거 별 미친년 아냐..."

"그리고 그쪽 목소리 커서, 되게 울려요. 현관 계속 열어두실 거면 그냥 가시고, 아닐거면 문 닫고 말씀하세요. 민원 들어와요."

"뭐? 야!"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그 여자는 내가 서 있던 바로 옆의 전신거울에 주먹을 날렸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지만, 충동적인 행동에 나와 그 애는 둘다 깜짝 놀란 상태. 하지만 여기서 쫄면 진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빨리 이 여자를 이겨먹고 나는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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