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윤 Oct 06. 2020

칼퇴 아닌 정시 퇴근하는 엄마

째깍째깍 어느덧 시계가 5시 50분을 가리킨다.

근무 중에 시계를 볼 여유가 있는 날도 있고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신없는 날도 있다. 

오늘 하루가 어땠던지 간에 어김없이 퇴근시간은 찾아온다. 나의 퇴근시간은 곧 아이의 하원 시간이다. 내가 시계를 보며 퇴근을 기다리는 만큼 아이는 엄마의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복직 4개월 전, 작년 3월부터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녔다. 태어나 엄마와 떨어져 지내본 적 없는 23개월 3살 아들의 사회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점심시간, 낮잠시간 그리고 하원 시간까지 아이가 어린이집 생활을 적응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엉엉 울며 엄마 품을 벗어나기 싫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어린이집 문 옆에 서서 보이지 않게 몸을 돌려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린 날도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훌쩍이기도 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아들의 울음은 신기하게도 나의 복직과 함께 멈추었다. 작년 7월,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  아이는 손까지 흔들어 주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웃으며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어린이집 2년 차 형아답게 제법 씩씩하게 어린이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어린이집 가기 싫어요."는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특히 요즘은 어린이집 등원하지 않거나 일찍 하원 하는 친구들이 많아 6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몇몇 아이들만 어린이집에 남아있다. 보통 우리 집 꼬마는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이가 되어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 종일 시끌벅적하게 친구들과 재미나게 뛰어놀다가 한 명씩 한 명씩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손을 잡고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한 번은 선생님에게 "친구들을 찾아주세요."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어린이집을 떠나 집으로 가는 친구들을 보며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 말을 듣고 참으로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또 어떤 날은 아이가 어린이집 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기도 한다. 동그란 얼굴로 문 앞의 엄마 얼굴을 확인하고는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신발도 신지 않고 뛰쳐나온다.

일하는 엄마가 죄는 아닌데 문 앞에 서서 하원 하는 친구를 보며 엄마를 기다렸을 생각에 참 마음이 아팠다. 그런 날은 보고 싶고 미안했던 만큼 아이를 꼭 안아준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 시간 동안 나는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는 야근을 할 수 없고 주말 근무조차 여의치 않기에 근무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직장인과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듯 아슬아슬한 워킹맘 생활을 하고 있다. 어디에 가깝게 서야 할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언제나 엄마 쪽에 한 발짝 몸과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동그란 얼굴로 아침마다 "엄마 일찍 오세요"라고 말을 하는 아들의 눈빛을 나는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뻔뻔하게 어쩌면 당연하게 6시가 되면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다.

칼퇴 아닌 정시퇴근을 하며 나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간다.


작가의 이전글 딸이 꼭 있어야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