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고, 기록하고, 사랑하게 하는 글쓰기
사람마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자주 찾게 되는 곳이 있다. 그곳이 어디냐에 따라 입는 옷부터 머리 모양까지 겉모습을 살피거나, 기쁨과 슬픔 같은 다양한 감정을 관리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그곳은 아주 특별하다. 보이는 외면은 전혀 신경 쓸 필요 없고, 내면의 감정 또한 그 어떤 상태여도 상관없다. 오히려 감정이 혼란스러울수록 그곳을 방문할 이유가 더욱 선명해진다.
내 몸속 세포가 터져버릴 듯한 기쁨의 순간에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슬픔의 순간에도, 심지어 별일 없이 흘러가버리는 시시한 순간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찾을 수 있는 곳. 언제든 방문해서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그곳은 나에게 브런치였다.
"제목을 입력하세요"라는 흐린 글자 앞에서, 나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던 어느 날이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첫 글을 작성하려고 자리에 앉았지만, 시작이 쉽진 않았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차마 꺼내지 못하고 꽁꽁 묶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데, 첫걸음을 떼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쓰다가 지우더라도 일단 꺼내보자 마음먹고 깊숙이 묻어두었던 슬픔, 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본다. 막상 쓰기 시작하니 커서에서 글자가 줄줄 쏟아져 나왔다. 글자와 함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쏟아져 나온다. 나의 키다리 아저씨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든든하고 다정한 존재,
키다리 아저씨는 다름 아닌 나였다.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 들어찬 순간마다 이곳을 방문하여, 어지럽게 펼쳐진 생각들을 쓰다 보면 어느새 차곡차곡 정돈되는 듯했다. 나를 돌아보고 기록한 생각들을 말없이 읽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하며 스스럼없이 대화도 나누게 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 없이, 그 어떤 포장이나 가식 없이, 담백하게 쓰면 쓸수록, 있는 그대로의 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내 안에 살고 있는 든든한 친구, 나의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존재를 알고부터는 내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더는 두렵지 않았다. 기쁨, 슬픔, 분노 그 어떤 감정을 품게 되더라도, 나의 키다리 아저씨는 이 모든 것을 잘 들어주고 괜찮다며 응원을 보내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이곳을 찾을 때마다 내 안의 키다리 아저씨가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려는 다정한 모습을 상상하며 온다. 언제, 어떤 순간에 만나도 잘하고 있다며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이 글이 끝난 다음에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나를 돌아보고 기록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키다리 아저씨. 내 평생 이보다 더 든든하고 다정한 친구는 없을 것이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글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