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천천히

영화 리뷰 <인생 후르츠> 정말 달콤한 열매다.

by 블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서른 이전까지 나는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음식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내게 학창시절 식사시간은 사교시간에 더 가까웠다. 시스템이 정해준 시간에 친구들이 먹고 싶은 메뉴나 급식에 나온 음식을 먹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스템 밖으로 혼자 뚝 떨어져 있게되니, 제 때에 제 끼니를 먹는 일이 얼마나 큰 노동인지 알게 되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벤치마킹한 나영석 피디의 예능 <삼시세끼>는 과연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식재료를 구하고, 손질하여 요리하고 제 때에 영양소를 내 신체 안에 투입하는 일은 체계를 갖춘 조직 밖에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인가.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고 출근을 하거나 밥을 먹고 다시 돌아가야할 직장이 없다보니 일단은 먹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조차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한 끼 정도 굶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오거나, 무리해서 일정을 빨리 끝내려고 밥을 거르는 일이 많았다. 그런 선택은 항상 몸에 무리를 가져왔다.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프고 신경은 예민해지고 마지막엔 항상 우울해졌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빈 속에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는 생각에 음식을 제 때에 먹는 노력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건강한 음식보단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선택했다. 혼자 오래 식당에 앉아있고 싶지 않았고, 음식을 먹는 시간이 즐겁지도 않았다. 편의점에서 삼각깁밥이나 컵라면을 간편하게 사먹었던 간단한 식사-식사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는-가 점심의 대부분이다. 바나나와 요거트로 아침을 먹고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점심, 저녁엔 약속이 없다면 다시 간단한 레토르트 음식. 약속이 있다면 과하게 기름진 육식과 소량의 음주.



히데코 할머니는 편의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스스로 구할 수 없는 음식 재료를 살 때에는 파는 사람을 믿고 사고, 늘 집에서 요리를 만든다. 본인은 감자를 싫어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감자 고로케와 스튜를 만들었다. 손녀에게는 간장에 졸인 갈색 음식들을 만들어 때마다 보냈다. 지금은 (손녀가) 외식을 많이 할지 몰라도 20년을 넘게 먹은 음식은 언젠가 그리워지기 마련이라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를 보니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먹은 음식들을 보면 내가 나를 얼마나 홀대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음식을 떠나 즐거웠던 식사가 언제적이었는지 한참을 기억해내야 했다. 직접 키운 체리와 죽순, 밤과 매실, 감자를 요리해서 먹는 삶은 나의 삶과 얼마나 다를까. 무엇을 어떻게 먹는다는 것이 결국 내 삶을 결정짓는 것 아닐까.


가능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생활태도는 슈이치 할아버지의 삶의 신조이다. 먹는 것이 히데코 할머니의 일이라면 정원을 가꾸고 관리하는 일,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일은 슈이치 할아버지의 담당이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70년대 나고야 고조지 뉴타운 프로젝트에서 산의 형태를 살려 아파트를 짓는 설계안을 내세웠지만, 효용의 논리에 밀려 계획한 설계대로 주택 단지를 건설하지 못했다. 그 이후 할아버지는 고조지에 남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300평의 땅을 매입하여 집을 짓고 나무를 심는 일. 집집마다 집 안에 작은 숲들을 만들면 결국 거대한 숲을 이룰 수 있다며 자신부터 그런 집을 짓기 시작했다.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보다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똑같은 집을 찍어내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 사는 건축가가 진짜일 수 있겠냐는 할아버지의 질문.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과 공생하는 슬로우 라이프의 선택.


히데코 할머니와 슈이치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주어진 환경을 탓해오던 나를 천천히 반성하게 만들었다. 두 분의 막바지 인생을 보고 있자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쳤는데, 두 분은 바위에 부딪쳐 깨지지 않았다. 하고싶은 일을 하는 자신을 바위에 날아가는 계란이 아니라, 작은 씨앗으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러니까 '그게 되겠냐'는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나무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니까. 당연히 되니까.


차근차근 천천히


영화 내내 서두에 적힌 내레이션이 여러 번 반복된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내가 먹는 일을 빨리 “해치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빨리 끝내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얼른 밥을 먹고 끝마쳐야 했던 일들이 쌓여있었다. 시험공부를 해야 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얼른 먹고 친구들과 떠들고 싶었고, 혼자 커피를 손에 들고 산책이라도 하는 호사를 느끼고 싶었다. 밥 먹는 시간을 아끼며 살다보니, 막상 시간이 쌓여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어릴 적 꾸던 꿈이 인생에서 아웃되었을 때 나는 어찌나 조급했던지.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무기력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텐데. 내가 이렇게 방황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착실히 커리어를 쌓고 있을텐데. 연봉이 오를텐데. 나는 어쩌지. 어찌나 초조했던지.



하지만 인생은 삼시세끼 좋은 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따라가지 못하는 그 단순한 진리를 영화는 노부부의 삶을 통해 차근차근 천천히 보여준다. 무리하지 않고, 오늘의 할 일을 하면 그 뿐. 그 다음은 바람이, 낙엽이, 땅이 열매를 맺게 해준다. 살다보면 인생의 진리 같은 건 늘 곧잘 까먹으니까. 또다시 조급하고 불안해질 때 히데코 할머니와 슈이치 할아버지를 만나면 ‘괜찮아. 차근차근. 천천히’ 나 자신을 다독이며 심호흡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슈이치 할아버지가 아무 보상도 없이 설계를 도운 요양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완공되었다. 엔딩 크레딧 옆으로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완공된 요양소를 찾아간 히데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노부부가 세상에 뿌린 씨앗이 자라서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가 되었다. 차근차근 천천히 뿌린 그 씨앗들이 민둥산을 나무숲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쉴 수있는 편안한 장소를 만들어냈다. 인생 후르츠. 정말 달콤한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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