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나’를 보여줘(1)

[고래]

by BAEK Miyoung
고래.gif

[고래]

2009년/8'/2D 핸드 드로잉 기법


[고래]는 흑백의 강렬한 대비가 돋보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내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 만들어냈던 첫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나에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여러 가지로부터의 도피의 의미했다. 고래는 내 첫 공식 도피처였다. 또한 오랜 소망에 대한 실현과 그에 따른 달콤한 보상이 따랐던 작품이기도 했다.

[감정_그 날카로움]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임에도 [고래]는 두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이 도리어 어색하게 다가온다. [고래]를 제작하고 관객에게 선사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강렬하게 인지했던 탓일 것이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나는 [고래]를 아직까지 가장 좋아한다. 어떨 때에는,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나는 이 작품을 선망하기까지 하는 것 같다. 아마도 [고래]로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달콤한 칭찬과 찬사를 받았기 때문일지도, 혹은 내가 여태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엄청난 재능이 이 애니메이션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 같다는 희망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래]는 이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저 너머의 내 모습을 비춰주었고, 그러한 이유로 나는 [고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고래]를 뛰어넘은 작품을 만들지는 못했다거나, [고래]에서 보여준 것만큼 대단한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종종 사로잡히고 만다. 이런 내가 한심하다가도 또다시 희망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그것이 그저 나의 단순한 착각일지라도 말이다.



유학, 생경한 풍경 앞에서


2008년 9월의 프랑스 가을은 한국만큼이나 청량했다. 도시 중심지가 언덕 위에 있는 독특한 지형이라 학교를 가려면 야트막한 내리막 길을 내려가야 했다. 15분 남짓 걸어 내려가는 길에는, 옛날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하듯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작은 숲이 드리워져 있었다. 숲은 보통 볕이 잘 들지 않아 축축한 비냄새가 났지만, 아침볕이 드리우면 잎사귀와 이끼에서 밤새 품고 있던 푸릇한 향을 있는 힘껏 뿜어냈다. 학교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좋았다. 물론 돌아오는 길은 경사를 올라야 하니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2월에 시작한 유학이 9월 대학 입학으로 연결된 만큼, 대학 생활은 예상보다 이르게 시작되었다. 프랑스 중서부 도시 Angoulême(앙굴렘)에 있는 애니메이션 학교로, 학교 생활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런 거 저런 거 떠나 우선 내 언어 수준이 대학을 다니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당시 나는 겨우 6개월 남짓 기초적인 언어를 학습했을 뿐이었다. 당연히 대학 수업을 듣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대학에 들어갔다니! 내게 천재적인 썸씽이 있나 기대할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실상은 여러 운이 따랐던 결과였을 따름이다.

시험 삼아 넣어본 서류 전형이 통과되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 입학시험 치르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은 건, 프랑스에서 첫 봄을 만끽하던 5월의 일이었다. 겨우 3개월 남짓의 어학으로 내가 구사할 수 있던 문장과 단어는 한정적이었다. 무리가 따를 일임이 자명했지만 그럼에도 입시 시험을 치러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입시를 몸소 ‘체험’해보고 싶었다. 분명 그 경험은 어떤 재화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자원이 되리라 확신했다. 합격보다는 경험을 위해 시험을 치러보기로 했다. 등에는 묵직한 불한사전과 한불사전, 필기구와 복사해 둔 포트폴리오 묶음이, 한쪽 손에는 두껍기 짝이 없는 노트북과 배터리가 든 노트북 가방이 들렸다. 남은 손에는 직접 출력한 지도가 불안하게 팔랑거리고 있었다. 한국처럼 프랑스 역시 종단 여행이 어렵고 복잡한 편이다. 어학원이 있던 Vichy(비쉬)에서 앙굴렘까지는 국토 중부에서 서쪽 끝까지, 지도만 보았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차 편수는 적고, 여러 번 갈아타기를 반복해야 겨우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차로 4시간 거리가 기차로는 7시간 넘게 걸렸다.


대학 시험은 Poitier(푸와티에)에 있는 EESI(École européenne supérieure de l'image)와, 앙굴렘 EMCA(École des métiers du cinéma d'animation), 총 두 곳에서 치렀다. EESI는 공립학교로 저렴한 학비와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 대학이고, EMCA는 애니메이션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사립학교다. 두 대학 모두 Poitou-Charenest주 안에 있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그래도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의 거리다.) 입시 일정도 가깝게 붙어있었던 덕에 여행 일정을 계획하기가 까다롭지는 않았다.

먼저 시험을 본 EESI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학교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나의 학업 방향이 잘 맞지 않았던 탓이 컸겠지만, 인터뷰 당시 내 프랑스어 수준에 기암 하는 교수들의 얼굴을 보며 합격은 물 건너갔음을 확신했다. 설상가상 준비해 갔던 포트폴리오는 학교에서 제시한 주제와 완벽하게 달랐다. 퍼펙트한 불합격이었다. 덕분에 학교로부터 불합격 편지를 받았을 때 그리 놀랍지 않았다.

반면, 이후에 치른 EMCA 입시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시험 주제들도 결이 맞았고 교수들과의 인터뷰 분위기 역시 나쁘지 않게 흘러갔다. 특히 인터뷰 중 선보인 [감정, 그 날카로움]의 효과가 대단했다. 내 프랑스어 실력에 우려를 표하던 몇몇 교수들조차, 영상을 본 후 나를 다른 눈길로 대했다. 6월 초, EMCA로부터 합격 편지를 받았다. 나는 엄청나게 기쁜 동시에 크게 동요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상황을 맞이할지 전혀 예측되지 않았다.


모두가 내게 운이 좋다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운 좋게 나와 잘 맞는 지역의 잘 맞는 학교를 발견했고, 운 좋게 그 학교에 어필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손에 들려있었다. 다만 갑자기 손에 넣은 이 행운이 마냥 좋게 좋게 풀리지는 않으리라는 불안이 있었다. 불안은 늘 마음속 어딘가에서 나를 세차게 흔들곤 했다. 숲이 있는 내리막길을 내려가 강 하나를 건너면 그림 속 성채 같은 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학교는 크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외관에 크고 작은 나무, 깨끗하게 다듬어진 푸른 잔디 덕에 정갈한 인상을 풍겼다.

KakaoTalk_20260315_112311224.jpg EMCA학교의 전경, Charente강

학교 생활은 빡빡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이어지는 수업으로 마치 고등학교로 회귀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 안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는, 마치 성분이 다른 외딴섬처럼 학교 안에서 이질적으로 떠돌았다. 매일 아침,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내딛는 첫걸음의 생경함이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내 프랑스어는 교수들의 기대만큼 빠르게 여물지 못했다. 완벽하지 않다면 아는 것이 아니다,라는 한국식 사고는 스스로를 더 위축시켜 나갔다. 작게 떨리는 목소리. 주저함. 입을 다문채 고개만 끄덕이는 수동적 태도.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교수가 생겼다.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향해 무례한 언사를 내뱉었다. 나는 내가 부끄럽고 한심했다. 어디론가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 공부를 하기 위해 제 발로 간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학교에서 나보다 뚜렷한 명분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망치지 않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소극적이고 언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실력마저 부족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길에 놓인 오렌지색 램프에 하나 둘 불이 켜졌다. 겹겹이 겹쳐진 오래된 건물과 노을 같은 오렌지 빛 램프등이 살포시 포개진 낡은 풍경이 좋아 한참을 바라보며 걸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 저녁부터 늦은 새벽까지 애니메이션의 밑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래]의 시작이었다. 그때의 작업들은 내 프랑스 생활의 옹졸한 변명거리이자 피난처인 동시에 작게 굽어진 내 등을 곧추세우기 위한 23살 유학생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