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첫 번째 애니메이션(3)

[감정_그 날카로움]

by BAEK Miyoung


복학생이 되었다. 허겁지겁 따라가기 급급했던 이전과는 달리 학교 생활에 깊이 몰입했다. 전투적으로 수업을 들었고 내가 그리고 표현하기에 편안한 그림들을 찾아나갔다. 확실히 수업에 임하는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자발적인 동기가 얼마나 큰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지 스스로도 놀라웠다. 이 길로 몸을 내던지리라는 뚜렷한 결심은, 나를 무서운 것도 거칠 것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때의 태도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변곡점이었다고 종종 떠올리곤 한다. 아마 조금이라도 주저했다면 나는 지금쯤 완전히 다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자.


내 이름을 건 첫 작품을 누군들 잘 만들고 싶지 않을까. 외부에서 인정받고 나 자신에게도 자랑이 될 /로또 같은 단 한방/의 작품으로 길이길이 역사에 남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 잃을 건 없고 얻을 건 끝도 없으니 내 앞날이 박찬욱 봉준호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게 첫 작품 제작에 대한 기대치는 끝도 없이 올라가고 종국에는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쓰라린 실패를 맛본다. 내가 그랬고 대학 수업으로 만난 대부분의 학생들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첫 술에 배부르고 싶은 욕망은 시대를 막론하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 혹은 기타 콘텐츠 제작 경험이 없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단순 테크닉이 부족하다, 제작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력이 부족하다, 등등. 그러나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건 자신의 작업 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겠다. 경험이 없으므로,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거리가 깊은 안갯속에 있는 것과 같다. 가령 역량은 아직 10km/s밖에 안되는데 하고 싶은 마음은 100km/s의 속도로 달려 나간다. 달리면 달릴수록 균열은 커져간다. 이 경우 보통 두 갈래의 결과로 귀결된다. 처절한 뜀박질을 이어나가 어떻게든 두 간극의 폭을 좁히려 기를 쓰든가, 어느 지점에서 포기하고 낙오하든가. 초보자들 대부분, 자의든 타의든, 후자의 결과를 맞이한다. 이 경우 가장 타격을 입는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실력에 실망한 나머지 아예 해당 영역을 떠나버리는 사례도 적지 않게 보았다. 나 역시 후자, 즉 포기를 택했었다. 처음 기획했던 작품은 나와 언니의 초등학교 등굣길을 사계절로 풀어내는 애니메이션이었다.

image.png 나의 등굣길은 이런 느낌의 거친 길이었다.

어릴 때, 학교를 가기 위해서 집 뒤로 나있는 작은 산 하나를 넘어가야 했다. 산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 양 옆으로는 아카시아 나무, 수세미 나무,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과 나무가 엉켜 숲을 이루었고 그 너머 산등성이와 반대로는 넓은 논이 있었다. 거칠게 자란 나뭇가지들은 쉬이 좁은 길을 뒤덮었는데, 때마다 마을 어른들이 낫을 들고 나와 길을 덮은 나뭇가지들을 쳐냈다. 학교를 가는 길에 우리는 아카시아 꽃을 따고 진달래 꽃을 먹고 가위바위보를 하며 아카시아 나뭇잎을 뜯었다. 돌멩이 하나를 공 삼아 발로 차며 달리기도 했다. 학교 가는 길은 그때그때 짧고도 또 멀었다. 그 길을 애니메이션에 끌어오고 싶었다. 이 기획이면 누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화면의 단조로운 연출로 묘사된 [감정_그 날카로움]과 비교하면 이 기획은 훨씬 섬세한 구성과 연출을 필요로 했다. 언니와 동생의 두 소녀 캐릭터, 사계절 자연을 담은 배경, 그리고 그를 담는 다양한 앵글도 필요했다. 초보 제작자가 단시간에 만들기에는 난이도가 있는 기획이었다. 처음 ‘글’로 기획할 때까지는 별생각 없이 즐겁게 애니메이션을 구상했다. 캐릭터들의 표정과 동작을 그렸고, 러프하게 배경 그림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지점부터 지금 내 수준으로는 이 기획을 일정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한 캐릭터 동작 하나를 그려내는데도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애니메이팅이라고는 짧은 과제 몇 개와 졸업 작품을 도왔던 경험이 전부였다. 사람 형태의 캐릭터를 내가 의도한 대로 그려낸다는 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짐짓 기대했던 기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 길로 한동안은 실망과 좌절에 절여진 채 속절없이 시간을 보냈다. 열에 들끓었던 첫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은 팍삭 식어버렸다.


순간의 감정도 무언가가 될 수 있다.


어릴 때 집에 돌아가는 길이 워낙 힘들었던 탓인지, 집에 돌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미워할 각오가 되어있다. [감정_그 날카로움] 속 날카로운 감정을 맞닥뜨린 건 어느 평범한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님의 늦장 덕에 집에 가는 하교 버스를 놓쳐버렸고 순간적으로 내 마음에는 극심한 분노가 일렁였다(집순이들은 모두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학부생의 분노는 워낙에 성냥처럼 하찮게 타올랐다 사그라진다고는 하지만 그날만큼은 특별하게 각인되어 있다. 순간의 분노가 남긴 검게 그을림으로, 아주 흉폭하게 생긴 ‘새’ 낙서를 노트 한켠에 남겼기 때문이다.

On edge3.jpg 성질 나쁜 '새'

그날의 낙서가 마음에 들었다. 낙서를 기점으로 짧은 스토리 라인도 떠올랐다. 아주 짧고 간결하면서 초심자가 만들기에 무리가 없을 이야기라 판단되었다. 별 이유 없이 손에 닿는 족족 파괴해 버리는 어떤 새의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순간 일었던 나의 시답잖은 분노처럼 작품 속 새도 시답잖은 이유도 없이 그저 화면 속 세계를 모조리 파괴하길 바랐다. 작품의 제목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내 속에 일렁인 분노의 감정, 날카로운 감정- 그렇게 [감정_그 날카로움]이 발아되었다.


애니메이션도 시대마다 각광받는 스타일이 있다. 처음 단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막 발돋움을 시작했던 6~70년대에는 독특하고 실험적인 제작 방식의 작품들이 큰 이목을 끌었다. 90년대 말-2000년 초반에는 Michaël Dudok de Wit의 Father and Daughter(2000)처럼 짙은 서사와 작가만의 그림 스타일이 어우러진 작품들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Michaela pavlátová의 Repete(1995), Paul Driessen의 The Killing of the Egg(1977)과 같이 심플한 구성과 러프한듯한 그림 스타일에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작품은 단편 애니메이션 입문자들에게 오래도록 영감을 주어왔다.

The Killing of the Egg(1977)

[감정_그 날카로움] 역시 이러한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품을 만든다면 구성은 복잡하지 않고 크든 작든 무게감 있는 한 번의 펀치 라인을 꼭 넣고 싶었다. [감정_그 날카로움]에는 한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흐르던 이야기가 막판에 뒤집어지는 구성에 있어서, 거장들만큼의 묵직한 한 방은 아니더라도 딱밤 정도의 타격감을 숨겨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워낙 즉흥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으므로, 기획 단계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을 대충 얼버무리고 건너뛰었다. 이렇다 할 스토리보드도, 캐릭터 설정 이미지도 만들지 않았다. 배경과 씬 넘버는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후로 만든 다른 작품과는 달리 [감정_그 날카로움]은 기획 관련 이미지가 전무하다. 남아있는 건 오로지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원동화 그림들인데, 그마저도 다 정리했기에 이제 작품의 흔적이라고는 영상이 유일하다. 차마 바람직한 과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이를 따라 하는 이는 없길 바란다. 나는 마치 러프한 플립북을 만드는 사람처럼, 화면 등장 순서대로 캐릭터 원동화 작업을 그려나가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 내가 대단한 천재이기 때문일까? 아니다.(단호) 단지 기한은 촉박했고 작업 스케줄이나 캐릭터의 동선을 디테일하게 조율할 능력이 없어 무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운이 따랐던 건지도 모른다. 명심하자. 첫 작업에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캐릭터들의 외형이 복잡하면 애니메이팅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함은 물론, 초심자의 실력으로는 원하는 완성도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첫 기획의 실패로 배웠다. [감정_그 날카로움] 속 캐릭터는 원, 삼각형의 단순한 도형의 조합으로 실루엣이 그려졌다. ‘새’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작 디자인은 ‘새’의 외형과 동작을 따와서 만들어낸 처음 보는 생명체라 말하는 게 맞겠다. 이러한 실루엣 덕에 서툰 애니메이팅 실력으로도 어느 정도 캐릭터의 움직임을 원하는 대로 그려낼 수 있었다. 캐릭터들은 새의 ‘날기’보다 ‘점프’를 주요한 이동 방식으로 택했다.

시퀀스 01.gif

사실 이들의 움직임에 이렇다 할 형식은 없다. 때로는 바닥을 질질 끌며 몸을 이동시키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사람의 손 형태가 튀어나와 다른 새를 움켜쥐기도 한다.

시퀀스 01_2.gif

그러니까, 결국 이들은 새가 아닌, 응어리진 감정의 형태를 ‘새’에 가까운 느낌으로 시각화했다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애니메이션 첫 장면에는 나의 낙서에서 발화했던 ‘못된 새’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는 새의 폭력을 고스란히 감당해 내는 가녀린 ‘새 가족’이 이어서 등장한다.

On edge4.jpg [감정_그 날카로움] 스틸 이미지

2분간의 짧은 러닝타임동안 ‘못된 새’는 ‘새 가족’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짓밟는다. 잔혹함에 이유는 없고 과정은 잔인하다. 그 끝에는 덩그러니 남겨진 폐허처럼 분노의 감정만 쓸쓸하게 남아있다. [감정_그 날카로움]은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 중 단연코 가장 잔인한 애니메이션이다. 여타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그리 잔인한 축에도 못 끼지만, 그마저도 개인적으로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으로 남았다. 특히 못된 새가 아무 이유 없이 어린 새를 죽이는 장면을 그릴 때는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불쾌한 정서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일이 나의 정서에 해가 된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이후로는 애니메이션에서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죽이거나, 때리는 등의 어떤 폭력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일은 최대한 피했다. 물론 [감정_그 날카로움] 속 직설적인 묘사가 원초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에 적절해서 좋았다는 평도 있었다. 덕분에 내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강렬하게 각인된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는 이가 고통스러운 그림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같은 감정이라도 지나치게 원초적인 표현은 지양하고 있다. 나는 이미지의 언어는 그러해야 한다고 믿고, 그러한 믿음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감정, 그 날카로움]은 유일하게 사운드 작업까지 내 손으로 작업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배울 때에 그림과 영상, 이야기 전개와 관련된 내용뿐 아니라 음향과 음악 같은 사운드 관련 지식도 심도 있게 배운다. 그림으로 엮은 영상 세계에는 애초에 아무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화면 속 공간음, 대사, 음향, 음악과 같은 사운드 소스를 적절하게 배치하여 영상 속 감정과 공간과 상황에 대한 설명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 짐짓 스틸컷이나 영상 속 한 장면이 떠오르듯 이미지가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사운드가 차지하는 역할 역시 매우 크다. 영상의 퀄리티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와 어울리는 사운드를 갖추지 못한다면 영상은 더는 매력적일 수 없다. 반대로 멋진 사운드를 만나게 되면 없던 매력도 생겨난다. 애니과 수업으로 사운드 관련 기본 지식과 툴을 배운 덕분에 아주 간단한 애니메이션 사운드 작업은 스스로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감정_그 날카로움] 영상에는 무미건조한 공간음과 몇몇 효과음만 삽입하면 충분했으므로, 사운드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영상의 색채에 맞는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위해서 음악은 제외했다. 공간음(엠비언스) 하나, 그리고 건조한 종이 관련 음향 자료를 학과에서 제공받았다. 그렇게 제공받은 사운드 소스들을 조금씩 변주하여 새의 움직임에 맞춰 음향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와 그림들이 그리 말랑하고 다정하지는 않으니, 어색한 듯 날카롭게 다듬어진 음향 소스들과도 제법 잘 어우러졌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운드를 더해 영상 작업을 완료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나의 오랜 바람이 [감정_그 날카로움]으로 실현되었다. 내 손을 거쳐 완성된 하나의 애니메이션은 서투른 점 투성이었지만 근사했다. 그것은 온전하게 충족된 만족이었다.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마음 한편에 바람이 드나드는 것처럼 후련했고 어쩐 일인지 이 과정을 한번 더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만든 창작물이 어떠한 반응을 얻을지 창작자는 예상할 수 없다. 스님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말이 있듯, 다른 이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이말 저말 잘도 떠들 수 있지만 내 작업에 대해서만큼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설렘 반 불안함 반으로, 학과에 완성된 애니메이션을 제출했다. 학과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과제들을 모아 상영하는 간소한 전시회가 열렸다. 강의실 하나를 비워 ㄷ자 모양으로 책상을 재배치한 후, 여러 대의 모니터를 그 위에 설치했다. 각 모니터에는 학생들이 제출한 각각의 애니메이션이 재생되었다. 동기들 간 서로의 작품을 같은 눈높이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든 학과 측의 배려였다. 학교는 물론 훌륭한 교수님과 수업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함께 하는 동기들로부터도 얻어갈 게 많은 장소다. 나와 비슷한 나이, 생각, 실력을 가진 이들로부터 영감과 자극도 받으며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 내 경우, 운 좋게도 실력 좋은 동기들을 만났다. 그들 덕분에 학교를 다니는 내내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의 끈을 내려놓지 않아도 되었다. 전시회는 흥미로웠다. 아주 오래전 일임에도 그 전시공간에 발을 내딛던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잘 기억이 난다. 동기들의 작품들은 내 눈에도 꽤 그럴싸한 작품도, 혹은 그리 완성도가 높지 않거나 미완성으로 보이는 작품들도 있었다. 나는 [감정_그 날카로움]이 어떻게 보여질건지, 첫 작품을 갓 완성해 낸 사람으로서 순수하게 궁금했다. 평가가 긍정적인 쪽일지, 그 반대일지 퍽 두렵기도 했다.

전시가 이어지던 어느 날, 여러 모니터들 중 유독 한 모니터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모니터에는 [감정_그 날카로움] 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선후배 동기들은 아주 진지한 눈빛으로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감정_그 날카로움]에 대한 평가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고민했고 망설였던 자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학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도 그때였다.


애니메이션 외주 회사에서 선을 긋고, 선배들 졸업 작품을 돕고, 작품 하나를 내 손으로 온전히 끝내는 과정으로 나는 이 일을 좋아함은 물론, 더 잘 해내고 싶은 욕심까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감정_그 날카로움]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심플하게, 그때는 정말 그 마음 하나였다. 그를 위해 지금 내가 바라보는 곳 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어졌다. [감정_그 날카로움]을 마무리하고 약 한 달 후, 나는 프랑스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지금도 집 가는 길 막는 사람을 여전히 미워한다.


[감정_그 날카로움] 애니메이션 보기

https://youtu.be/IWizRFDhZ0g?si=cJOYw9PahoqmLKZ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