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by 글짓는 미영씨

결혼기념일을 맞아 휴가를 내고 기분도 낼 겸 1박 호텔 예약을 했다. 오랜만에 가는 호텔이라 설레고 기분도 좋았는데 같이 가는 남편의 기분이 요즘 꽝이라 신경이 쓰였다.


우울증이 갑자기 도진건지 며칠째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걸 보는 내 모습도 갑갑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기왕 가기로 한 거 재밌게 놀다 올 요량으로 집을 나섰는데, 첫 도착지에서부터 삐걱거렸다.


조금 더 빨리 걸을 수 없겠냐는 날 선 말투에 배려해 줄 마음이 싹 없어졌고, 그 이후로 분위기는 하향선을 탔다. 피시마켓에서 뭐 먹고 싶은 거 없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만 저었고, 나는 그럼 그래라 하는 생각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잔뜩 시켜 음식을 받아왔다.


그렇게 앉아서 말도 없이 먹고 있는데 도저히 체할 것 같아서 침묵을 깨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문제라도 있어?” 감춰온 마음이 드러나듯 날 선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렇게 대화는 끝나고 오징어를 물어뜯던 나는 어느새 눈물을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좋은 날 맛있는 걸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이 완벽한 순간이 왜 이리 즐겁지 않은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나를 알아챈 그는 왜 우냐며 물었고, 이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놓고는 후련해졌다.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새삼 깨달았고,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고도 털어놨다.


그제야 자신이 노력해서 겨우 호텔도 예약하고 같이 가고 싶은데도 가고 했다며 나름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물론 힘들 때 억지로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줄 알았고, 도착하기 전까지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결국 오해를 풀고 일어났다. 결국 이렇게 또 풀릴 걸 뭘 그리 힘들어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그다음 장소로 향했고, 이제 더 이상 풀게 없는 만큼 전보다 더 즐거운 마음이 되어 하루를 보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고 약간의 행운마저 맛보게 된 날, 자기 전에 나는 오늘이 어쩌면 인생의 축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힘든 상황, 이해 안 되는 상황들이 수도 없이 있겠지만, 적어도 대화로 풀 수 있고 풀려고 노력하는 둘이라면 끝은 나름 괜찮을 것 같다는 것.


그렇게 일 년 이년 보내면 되겠다는 희망을 보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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