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미국에서 엄마는 대학원을 다니고, 나는 중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큰 재산을 얻었다. 바로 '새로운 언어'. 비록 지금은 녹슬었어도 나의 큰 무기라고 느끼는 것.
인간에게 언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지녀서, 다른 언어로 소통하면 또 다른 identity가 생기는 것처럼 내 행동이 그 문화권의 성격을 반영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경우 영어는 내가 미국에서 쌓아갔던 내 자아의 한 조각을 상징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어로 쓰인 책은 되도록 원서로 읽으려고 한다. '번역투'로 바뀌는 순간 작가가 의도했던 문체와 뉘앙스, 또 가끔씩 작가가 향신료처럼 넣어 둔 언어유희가 퇴색되는 느낌이 들어서, 좀 번거롭더라도, 원서를 찾는 편이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언어를 알았다면, 좀 더 다양한 책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었겠지, 하고 속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단어를 찾아볼 때도 되도록 영영사전을 찾는 편이다. 언어라는 것은 '뉘앙스' '느낌'이 있는데 그것은 문화마다 너무 다르고 섬세해서, 한글로 완벽히 치환할 수 없는 단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책장은 마치 내 머릿속 같다. 한글, 영어가 뒤섞여 있는. 가끔 영어 단어로 생각이 나도, 한글로 생각이 안 날 때도 있고, 반대로 한글로는 생각이 나도 영어로는 생각이 안 날 때가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0개 국어 현상'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지금 영어단어를 쓰면 내가 재수 없어 보이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나에 대해서 관찰한 재미있는 점은, 내가 체력이 없으면 (보통 평일 퇴근 후) 한글 책, 특히 소설을 읽으려고 한다는 것. 내 second language인 영어로 책을 읽으면, 그만큼 내 뇌가 가져가는 에너지가 큰지, 나도 모르게 한글 책에 손이 가게 된다. 영어 비문학은 내 체력이 충만할 주말 오전에 손이 간다.
내 녹슨 영어실력을 느낄 때마다, 내가 한국에서의 자아를 쌓아가면서 있을 수밖에 없는 현상임을 알면서도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영어 책을 읽는 것이 내 나름대로 그 부분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