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없는 것도 취향
미국에 살면서 문화 차이를 많이 경험하였지만, 이상하게도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What is your favorite ~?’이 들어간 질문이었다. (나도 아직 젊지만) 요즘 더 어린 세대는 자신의 호불호를 말하는 게 명확하다면, ‘취향 존중’이라는 단어가 나올 무렵부터였을까 취향에 대한 고민은 최근의 양상인 듯하다. 지금은 ‘최애’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지만, 제일 좋아하는 음식, 제일 좋아하는 영화, 제일 좋아하는 색깔 등 ‘favorite’이라는 한 단어를 ‘제일 좋아하는’이라는 두 단어로 번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만큼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에서 자기소개를 하거나 스몰토크를 할 때 종종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취향이라는 게 그다지 없었던 나는 그걸 선택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음식은 전부 다 잘 먹는 편이고, 색깔은 철마다 좋아하는 게 달랐고, 영화도 보는 것마다 재미있는데 어떻게 하나를 고르란 말인가. 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괜히 지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던 그 무렵부터 취향에 대한 나의 고찰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위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이야깃거리가 잔뜩 준비된 사회화된 취향이 풍요로운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나는 그 부분을 고민해 보거나 내가 좋아하는 걸 헷갈려하는 자신감 없는 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는 마트만 가도 우유가 무지방, 저지방, 1% 지방, 2% 지방, 반반 등 뚜껑 색만 다른 우유 종류가 너무나 많고, 빵도 글루텐 프리, 샐러드드레싱도 무지방, 저지방 등 미국 마트에 처음 가본 사람은 이것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결과물인가 싶으면서도 선택의 장벽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머리가 아프게 취향껏 고르다 보면 어느 순간 선택지가 많은 것이 꼭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인생의 진리를 마트에서 깨닫게 된다.
나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누군가 물어보면 너무나 많지만 그중에서도 브리또와 규동을 꼽는데, 나만의 이유와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렇다. (브리또와 규동 챕터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집에서 음식 취향에 대해 통하는 사람은 아빠인데, 아빠는 가리는 음식이 없이 세상의 모든 음식을 사랑하고 잘 드시지만, 그중에서도 고르라면 떡볶이, 칼국수, 낙지볶음, 아이스크림 등 정확하게 좋아하는 것을 외치실 준비가 되어있으시다. 어릴 때 아빠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하시면 언제나 칼국수일 정도로 먹는 것을 사랑하시고 언제나 건강과 체중조절을 위해 ‘먹는 것을 참는다’고 하셨다. 반면에 엄마는 몇 번이나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엄마의 대답은 ‘글쎄’였다. 나와 아빠 같은 부류와는 다르게 엄마는 먹는 낙이 훨씬 적은 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먹고, 건강을 위해 먹는 ‘실용 건강파’다. 라면도 오직 건강을 위해 끓는 물에 한번 삶은 다음에 버리고 물도 많이 잡아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밍밍한 맛으로 드신다. 엄마가 라면을 드실 때는 다른 식구들과는 따로 끓여먹곤 하는데, 나는 건강을 위해 그렇게 맛없게 먹느니 라면을 안 먹고 말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진심으로 맛있다고 하셨다. 대한민국 건강 프로그램의 영향인지 엄마는 각종 음식 성분과 효능을 다 줄줄 외워 말씀하실 정도이다. 엄마는 영양사가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런 광경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가끔 실수로 간을 하지 않으셨나 싶을 정도의 저염 식단은 기본이고 거의 항상 채소와 과일이 냉장고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채식 위주의 건강식 식단을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건강식이 익숙하기도 하다. 엄마가 건강에 관심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엄마도 분명 좋아하는 음식은 있으셨을 텐데 엄마는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제일 좋아하고 항상 먹고 싶은 음식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런 엄마도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죄책감을 느끼지만 즐기는 어떤 취향) 음식이 있는데, 단무지와 어묵이다. 엄마는 스무 살 대학에 오기 전까지 부산에 평생 사셨던 부산 사람인데, 건강식을 극도로 챙기시는 엄마가 유난히 영양가 없다는 단무지를 좋아하신다. 단무지의 영양성분을 생각해 보면 무, 식초, 설탕, 방부제와 노란 색소가 전부이지 않을까 싶은데 엄마는 배달음식에 딸려오는 단무지를 야무지게 모아 반찬으로 드시기도 한다. 이때도 엄마식 소독을 위해 식초를 듬뿍 뿌리는 바람에 식초에 빠진 단무지는 주로 엄마의 몫이 되곤 하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멸치 국물에 무를 푹 넣고 끓인 엄마 표 어묵탕도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 가족은 어묵 국물에 밥을 말아먹곤 한다. 나의 친언니는 어묵탕이랑 밥은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주장하는데, 결혼 이후에 형부도 그렇게 종종 어묵탕을 끓여 밥이랑 먹는다며 ‘그 조합 반대!’를 여러 곳에서 어필하고 있다. 어묵이 불량식품은 아니지만 밀가루와 생선살을 튀기고 밀가루가 주재료로 들어간 어묵은 엄마 기준에 건강식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어묵탕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이유는 엄마의 고향이 부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에 사신 건 20년이고 서울에 50년을 사셨지만 엄마도 추억의 맛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으신 것 같다. 엄마 혼자 종종 부산 외갓집에 다녀오실 때 부산역에 파는 어묵 세트를 종종 사 오시는 얼굴이 신나 보이기도 하셨다.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다른 집보다 어묵탕을 자주 먹는 것 같기도 하니 엄마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어묵탕 한 그릇에 한껏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음식 취향을 분석하기 좋아하는 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이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5남매 중 첫째 딸이었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는 더할 나위 없는 공부 잘하고 착한 든든한 장녀였다. 결혼 전 짧은 몇 년간의 교직생활을 포함해 결혼 이후에도 엄마는 아마 본인을 위해서 살았던 시절보다는 아빠의 아내, 자녀 셋의 엄마로 지내왔기 때문에 엄마가 무엇을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볼 시간도 없으셨던 것 같다. 아빠의 은퇴 후 함께 시간이 많아진 지금도 엄마는 특별한 취미생활이 없으셔서 독서나 연속극 보기, 베란다의 화초 가꾸기 정도로 시간을 채워 가신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여가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으시기도 하지만, 자녀들이 자란 후에 새로운 취미를 찾는다거나 새로 무언가 배우셔도 좋을 텐데 엄마는 살짝 지루해 보이는 일상 속에 잔잔한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고 계신다. 이 글을 쓰면서 엄마의 취향과 밥상을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엄마가 취향이 없어서 짠하다고 느끼려던 바로 그 찰나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부터 ‘덕질’을 곧잘 해왔던 나는 덕질(혹은 취향) DNA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빠는 바쁘게 일하시던 젊은 시절에도 틈만 나면 좋아하는 영화를 챙겨보시곤 하셔서 어릴 때 아빠와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 액션 영화를 보던 장면들이 많이 남아있다. 은퇴 시기와 맞물린 전국의 트로트 열풍에 평생 안 보시던 예능 프로도 열심히 챙겨 보시며 트롯 맨 7명의 이름과 이력을 줄줄 외시며 유튜브까지 챙겨보시며 틈만 나면 나에게 트롯 맨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주시곤 한다. 칼국수는 언제 드셔도 너무 맛있다고 하시며, 요즘도 혼자 집에 계실 때면 냉장고에 반찬이 꽉 들어 있어도 라면을 끓여 드실 정도로 라면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시다. 아이스크림에 관해서는 살찌는 것이 문제라면 밥을 덜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는 나름의 철학도 나와 비슷한 점이다. 먹는 걸 좋아하시는 아빠는 70대 초반의 연세에도 테니스를 꾸준히 하시고 체중에 늘 신경 쓰신다. 아이스크림은 끊을 수 없으니 식사량을 조절하시겠다는 아빠를 나는 120퍼센트 공감하지만 엄마는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신다. 이렇듯 나의 취향에 대한 부분은 아빠께 받은 것이 확실하고, 미국 생활을 하면서 취향에 대한 철학이 더 정리가 된 케이스인데, 엄마는 그런 기질이 전혀 없어 보인다. 최근에 언니가 BTS가 좋아져서 덕질을 해보려고 하는데 도통 한 명한테 꽂히질 않아서 덕질 시작이 쉽지 않다고 고민을 토로했는데, 엄마와 언니는 흔히 요즘 말하는 덕통 사고(*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갑자기 어떤 분야의 팬이 되는 것)를 당하는 일이 드문 성향인 듯하다. 반면 나는 좋아하는 밴드 콘서트를 매년 챙겨서 가고, 최애 배우 영화와 드라마를 손꼽아 기다리며,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미디어 시청 시간이 극도로 늘어서 최애 배우 목록만 늘어가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나는 좋아하는 배우가 시간에 비례하며 줄줄이 늘어나고 있는데, 나만큼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고 한 때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언니가 최애 배우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그날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가끔 바뀌기도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초코 맛, 커피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브리또는 소고기라는 나만의 취향은 꽤 견고한 편이다.
한때 엄마랑 나랑은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긴 하다) 대학 졸업 후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처음으로 살게 되면서 엄마랑 부딪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고등학교 잠깐과 대학까지 어떻게 보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미국에서 살다 왔지만 세상과 처음 부딪치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를 다른 문화에서 보내서 그런지 다시 돌아온 한국 사회는 생각보다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나에게 한국은 같은 한국이 아니고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엄마는 미성년자도 아닌 성인이 한참 전에 되고 어엿하게 대학 졸업장까지 들고 귀국한 나를 여전히 어린애 취급하시면서 나를 단속했는데, 자유가 고팠고 한국 생활이 그리웠던 나는 그게 구속이 되는 것 같아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사춘기 때도 크게 하지 않던 반항 아닌 반항을 했고 악을 쓰며 엄마랑 싸웠던 것도 그때가 인생에서 유일한 때다. 어릴 때는 엄마와 굉장히 비슷한 성격과 성향이었던 것 같은데, 자라면서 내가 바뀐 것인지 크고 나서 엄마랑은 성향도, 취향도, 입맛도 달라서 공감대가 없어도 너무 없다. 한 번은 친구랑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데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 가서 엄마랑 먹겠다는 친구가 너무 부럽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살찌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사 왔다고 분명 잔소리를 잔뜩 하실 것이 눈에 훤했다. 또 한 번은 맛집이라고 친구 아빠께서 가족들이랑 먹으라고 순대를 사주신 적이 있었다. 엄마는 순대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며 우리 가족은 아무도 순대 안 먹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한 당신 빼고는 사실 우리 가족 모두 순대를 좋아하고 있었다. 엄마는 본인이 안 좋아하시니 우리 가족 모두 순대를 즐기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계셨다. 아무도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꽤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엄마와 공감하지 못해서 엄마가 취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취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엄연히 좋아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발견하고 있다. 엄마는 공중파 매운맛 막장드라마보다 슴슴한 주중 연속극을 좋아하고, 때리고 부수는 강렬한 영화보다 풍경이 좋고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신다. 예전에 극장에 다녀오신 엄마께 영화 재미있었냐고 여쭈어 보니 풍경이 예뻐서 재미있었다고 대답하신 기억도 난다. 부모님의 은퇴 후에 여유를 즐기시라고 각종 OTT 드라마를 추천해 드리곤 하는데 엄마는 아빠와도 취향이 워낙 다르셔서 두 분 모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고르는 것은 나에게 쉽지만은 않은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추천해드린 드라마나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는 말을 들으면 매우 뿌듯해진다. 슴슴한 드라마와 푹 익은 싱거운 라면, 식초에 담근 시큼한 단무지를 알뜰살뜰하게 챙겨 드시는 것도 엄마만의 취향이라면 취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