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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조 Jun 15. 2022

캘리포니아 햄버걸

내 사랑 인앤아웃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들은 식당에 가면 꼭 시키는 고정 메뉴가 있으신지 궁금하다. 나의 경우에는 <버거킹>의 ‘치즈 와퍼 주니어’가 그렇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에는 버거킹과 KFC가 1층에 나란히 붙어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간식을 먹거나 끼니를 해결하러 종종 들렀다. 버터 향 가득한 갓 구운 비스킷에 달콤한 딸기잼의 환상적인 조합은 KFC가 단연 맛있지만, 버거의 왕답게 햄버거는 언제나 버거킹이었다. 버거킹의 치킨버거는 길쭉하게 절반 잘라져 나와서 친구들과 간식으로 나눠먹기에 좋아 친구들과 함께 가면 고민도 없이 언제나 치킨버거를 시켰다. 그러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와퍼만 먹기 시작했다. 와퍼는 버거 크기가 커서 감자튀김을 좋아하는 나는 햄버거만 먹어도 배가 금세 부르는 게 아쉬운 데다 가격도 꽤 비싸서 나의 픽은 치즈 와퍼 주니어 세트가 되었다. 와퍼는 다른 패스트푸드 패티에는 없는 불에 구운 소고기 맛이 나고 토마토가 맛과 식감을 높여주어 언제 먹어도 맛있다. (쓰다 보니 광고 같지만 광고는 아닙니다) 버거를 참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브랜드의 패스트푸드는 갈 때마다 다른 걸 먹는 편인데 버거킹 주니어 와퍼는 오랫동안 좋아했고 생각나서 찾아 먹는 메뉴다. 치즈 와퍼 주니어 세트를 먹는 날엔 후회 없이 한 끼 식사가 간단하게 해결된다. 햄버거에 대한 나의 사랑은 미국에 가서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햄버거는 미국인들의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버거는 어느 동네가 제일 맛있어?’라는 질문은 금기라고 할 정도로 자기 동네의 버거 부심이 다들 대단하다. 미국의 어떤 동네에 가도 맛있는 버거 집은 존재하며, 거의 대부분은 밀크셰이크를 함께 판다. 버거와 밀크셰이크의 조합은 생각만 해도 칼로리가 폭발하는 데다가 기름칠 제대로 하기에 딱인 메뉴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감자튀김과 밀크셰이크는 워낙에 좋은 조합이라서 꾸덕꾸덕한 바닐라 밀크셰이크에 갓 튀긴 짭짤한 감자튀김을 찍어 먹으면 끊임없이 먹을 수 있는 마성의 아메리칸 단짠 조합이 된다. 달콤한 밀크셰이크에 짭짤한 감자튀김을 찍어 먹으면 꽤나 맛이 있다. 바닐라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괜찮지만 찍어먹기에는 밀크셰이크의 농도가 좋다. 한국에서 유명한 쉑쉑 버거도 원래 이름은 ‘셰이크&쉑(Shake Shack)’으로 셰이크가 주력 메뉴이다. 


  미국에서 자주 가던 <레드 로빈>이라는 미국 햄버거 집은 감자튀김을 무제한으로 주는 마음이 넉넉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버거가 너무 커서 버거를 먹으면 배가 벌써 너무 불러 감자튀김을 리필을 해 먹기가 도통 어렵다는 것이다. 한창 대식가로 잘 먹던 때에도 버거를 먹고 나면 배가 어찌나 부르던지 한 번도 감자튀김 리필을 시켜보질 못했다. 이런 고메 버거(수제버거)를 보면 햄버거가 커도 너무 큰 것이 한국에서 보던 수제 버거들과는 사이즈가 다른 것이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크라제버거>가 처음에 등장했을 때 주변의 평가는 맛은 있지만 배도 안 차는 버거를 만원이 훌쩍 넘는 큰돈을 주고 먹는 게 아깝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햄버거의 고향에서 온 미국인들이 버거 사이즈를 보면 서운해할 정도로 버거의 크기가 많이 달랐다. 최근에는 푸짐하고 크기도 커서 들고 먹기도 어려운 수제버거 맛집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 오래 사신 한 지인 분은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많이 먹어야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시기도 하는데, 미국인에서의 1인분은 한국에서의 1인분과는 다르다. 미국에서 가장 놀라는 것이 햄버거 집에서 주는 음료의 사이즈인데, 탄산음료를 너무나 사랑하는 미국인들은 한 끼에 1인분으로 콜라 900ml를 거뜬히 먹기도 하는 알아주는 비만의 나라 이기도하다. 미셸 오바마가 펼쳤던 정책 중에 미국 내 공립학교의 자판기에서 탄산음료를 없애고 물 마시기 운동을 했던 것이 히트를 쳤던 것도 워낙에 탄산음료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제일 좋아했던 버거 중 하나는 <인 앤 아웃 (in-n-out) 버거>다. 쉑쉑 버거가 지금만큼 프랜차이즈를 많이 내지 않았을 때, 동부에는 쉑쉑, 서부에는 인 앤 아웃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 지금은 한국에 쉑쉑 버거도 들어오고 인 앤 아웃을 꽤 비슷하게 재현한 <크라잉 치즈 버거>도 있지만, 내가 미국에 살 때, 인 앤 아웃은 미국 부심을 부릴 정도로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인 앤 아웃은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있는 프랜차이즈 버거집인데 꽤 독특하다. 이곳에 가면 메뉴판에 딱 5개만 쓰여 있다. 

[더블-더블, 치즈 버거, 햄버거, 감자튀김, 셰이크] 


맥도날드나 버거킹에 비해서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처음 인 앤 아웃 버거가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메뉴가 단순한 대신에 아는 사람만 시킬 수 있는 시크릿 메뉴가 있는데, 버거를 시킬 때 ‘프로틴 스타일(Protein style)’로 시키면 빵 대신 양상추에 감싸진 버거가 나오고, ‘애니멀 스타일(Animal style)’로 버거나 감자튀김을 시키면 특제소스와 칠리소스가 잔뜩 얹어져서 나온다. 버거에도 생 양파나 구운 양파를 추가할 수 있는데, 나는 구운 양파를 꼭 추가해서 먹곤 했다. 이렇게 시크릿 메뉴를 시키는 재미도 있어서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은 몽땅 인 앤 아웃을 첫 번째 필수 코스로 데려가곤 했다. 비교적 일찍 문을 닫는 미국 식당들 중에서 인 앤 아웃은 드라이브 스루로 꽤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해서 (다이어트 양심상) 빵을 뺀 프로틴 스타일로 야식을 해결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인 앤 아웃은 부엌이 다 보이는 오픈 키친 형태의 패스트푸드점인데 기존의 패스트푸드 가게들과 달리 ‘우리가 이만큼 깨끗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지금도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오픈 키친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도 만드는 과정을 자신 있게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감자를 통째로 넣어 기계에 숭덩 썰면 바로 얇은 감자튀김 모양이 되어 튀김기로 들어가 신선하게 만들어진다. 버거를 시키고 이렇게 감자튀김 만드는 것을 보며 넋을 잃고 기다리면 시간은 금방 간다. 신기한 점이 이곳에 냉동고는 없다. 패스트푸드의 전형인 버거가 ‘not so fast(빠르지 않음)’와 ‘신선함’으로 캘리포니안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모든 버거는 주문 후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주 신선하다. 또, 케첩을 원하는 만큼 직접 받아먹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인데 케첩을 담는 귀여운 종이 그릇도 인 앤 아웃의 시그니처 중 하나다. 미국에 살 때 인 앤 아웃을 너무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인 앤 아웃을 진공 포장해 한국으로 간다거나 소스만 따로 사서 가져간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릴 정도였다. 인 앤 아웃은 저렴한 가격과 맛있는 버거와 감자튀김도 유명하지만, 이 회사를 운영하는 설립자의 마인드가 늘 화제가 되는데, 이렇게 인기가 많은 이 버거집이 미국 전역에 프랜차이즈를 내지 않는 이유는 농장에서 직접 차로 배달할 수 있는 거리까지만 점포를 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들이 검증할 수 있는 자신 있는 식재료로부터 시작되는 음식의 철학이다. 한국에도 몇 차례의 팝업 이벤트는 시도했지만, 한국에 도통 들어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뉴욕의 쉑쉑 버거는 한국에만 21개의 매장이 있고(*2022년 6월 기준) 현재 꾸준하게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데 쉑쉑은 되는데 왜 인 앤 아웃은 안 되느냐고 울부짖던 인 앤 아웃의 열혈 팬들은 경영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제주에도 좋아하는 버거 맛집이 있다. 이곳은 바다를 보면서 버거를 즐길 수 있는 데다 버거 번이 당근, 시금치, 마늘 색깔로 알록달록해 눈으로도 입으로도 맛있어 언제나 좋아하는 맛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방송 출연을 해서인지 갈 때마다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하는 고난의 웨이팅 시간이 점점 길어져 아쉬울 따름이었다. 버거 냄새를 맡으면서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건 나에게 너무 큰 힘듦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버거킹이 거의 없고 바다를 보며 먹는 이 버거도 너무 유명해져서 찾은 맛집은 작정하고 가는 식당이 아니라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배달이 되는 동네 버거집이다. 주력 메뉴는 치즈 버거인데 구운 파인애플이 함께 들어 있다. 토마토가 들어간 버거는 언제든지 환영인데 파인애플까지 들어가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주다니 신박한 선택이었다. 궁금해서 리뷰를 보니 하와이안 피자는 싫어하는데 이 버거는 파인애플이 들어가 정말 맛있다는 리뷰가 많았다. 한국 버거집에는 보기 드물게 밀크셰이크도 메뉴에 있어 몹시 반가웠지만, 칼로리 양심 상 차마 시키지는 못하고 치즈 버거 세트를 맛있게 해치웠다. 버거와 감자튀김을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집어넣고 보니, 점점 내 입에 맛있는 버거집이 많아지고 있는 데다가 배달이 다른 도시만큼 편하지 않은 제주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맛있는 버거 전문점이 배달까지 편하게 되다니!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햄버걸의 일상 속 작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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