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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조 Jun 16. 2022

존 아저씨와 김치 팬케이크

캘리포니아 아빠 



  지옥 같던 방송국에서 탈출하고 난 직후, 나는 패배자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꽤 오랫동안 마음의 짐이 무거웠다. 오랜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 다음의 취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막연한 불안함,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았던 취준생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등이 내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도 나의 힘들을 헤아려주기보다는 좋은 직장을 그만둬서 아깝다는 말을 쏟아냈고, 취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나밖에 챙길 수 없을 만큼 나의 몸과 마음에 난 상처들을 보듬느라 너무 지쳐있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언니가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다. 회사도 그만뒀겠다 너무 지쳐있었고, 언니의 학교가 마침 예전에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여서 곧바로 LA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니는 당시에 미국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는데, 자녀들은 모두 독립한 상태였고 존 아저씨와 도나 아줌마는 우리 부모님과 연세가 비슷한 평범한 미국 아빠, 엄마였다. 백수 상태로 미국에 갔기 때문에 몸 회복과 놀고먹기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었고, 매일 가족들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나누는 미국 문화 덕분에 존 아저씨와 도나 아줌마와 식사를 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미국에 오래 살았고 공부도 했지만, 학생들이 사는 저렴한 아파트에 학생들끼리 살았던 게 전부였기 때문에 미국 가정에서 지내는 몇 달은 꽤 즐거운 문화 공부의 시간이었다.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많이 갖추고 있는 집이었는데, 널찍한 집에는 방이 여러 개 있어서 학교와 연결이 될 때는 홈스테이 호스트를 하고 계셨고 집 안에는 당구장, 마당에는 작은 수영장도 있는 꽤 근사한 집이었다. 아저씨는 남는 시간에 집에서 자동차 정비를 하고, 정원을 가꾸고, 세탁기도 직접 고치셨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할리 오토바이를 타시는 멋진 취미가 있으셔서 두 분께서 오토바이로 미국 횡단도 하실 정도로 인생을 즐기며 사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국에서는 길에서 눈으로나 구경하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존 아저씨가 태워주신 적이 있었는데, 무서울 줄만 알았던 오토바이의 승차감이 생각보다 매우 안정적이어서 아저씨 등을 부여잡고 신나게 동네 한 바퀴를 달린 즐거운 기억도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존 아저씨네 언니 방에 얹혀살았는데, 당시 미국 텔레비전 쇼 <푸드 트럭 레이스>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방영 중이었다. 워낙 아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이기도 했고, 프로그램에 마침 한국계 미국인 팀이 출전해 존 아저씨는 푸드트럭 레이스에 나오는 한국 퓨전 음식에 무척이나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한국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해서 아저씨에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김치전을 해드렸다. 캘리포니아에는 그래도 동네마다 한인마트는 가까이 있는 편이라 마트에 가서 김치를 사 와 김치와 부침가루만 넣어 김치전을 만들어 드렸다. 내가 만든 한국 요리를 외국인이 먹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대접해 드렸다. 존 아저씨는 요리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아하는 유쾌한 성격의 전형적인 미국 아저씨셨는데, 유난히 이 김치전을 좋아하셨다. 우리는 김치전을 김치 팬케이크(kimchi pancake)이라고 소개했고, 존 아저씨와 도나 아줌마 모두 김치전을 좋아하셨다. 바비큐를 하는 날에는 한국식 삼겹살을 구워드렸더니, 삼겹살보다 쌈장을 더 좋아하시는 바람에 우리가 그 집을 떠난 후에도 코리안 쌈장은 계속 사서 드신다고 하셨다. 존 아저씨는 나중에 김치전 레시피를 꼭 알려달라고 하셔서 손수 적어드렸는데, 직접 한국 마트에서 김치도 사셨다며 이메일로 자랑을 하셨다. 당시에도 멕시칸 음식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를 동네 멕시칸 맛집에 데려가 주시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해주시는 등 엄청난 친절을 받으며 행복하게 요양하며 보냈다. 워낙 음식에 관심이 많고 내가 요리하는 것도 궁금해해서 그런지 존 아저씨는 새로운 레시피를 아낌없이 왕창 소개해주시고, 설탕 대신 콜라로 단맛을 내는 코카콜라 케이크라든지 마요네즈 케이크 같은 신기한 레시피로 케이크를 구워 주시기도 하셨다. 미국 집에서 바나나가 무르기 시작하면 만들어 먹는 바나나 케이크도 지금도 생각나는 그리운 맛이다. 비록 그 집에 처음 갈 때는 몸도 마음도 아팠지만, 아저씨와 아줌마의 환대로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늘 맑고 청량한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떠오르고 아프고 힘들어서 그곳을 찾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즐겁고 맑은 기억들로 가득하다. 


  존 아저씨 집에서 두어 달 정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아저씨가 내가 제일 좋아했던 초콜릿 케이크를 구워주셨는데, 케이크 위에는 노란색 프로스팅으로 ‘미조 잘 가’라고 수줍은 한글이 써져 있었다. 앞으로 어떤 선물보다 그 케이크 선물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귀여운 케이크가 끝이 아니라 CD 한 장도 함께 선물로 주셨는데 CD에 아저씨의 어머니부터 내려오던 레시피 모음집을 피피티에 담아 주신 것이었다. 존 아저씨 집에는 두꺼운 바인더에 프린트해 놓은 어머니의 레시피 모음집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재미있어서 자주 열어보고 아줌마와 아저씨께 음식에 관한 질문도 하곤 했었다. 아저씨는 흔쾌히 레시피도 이름도 다 마음껏 써도 되니까 모든 저작권을 주겠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최고의 선물이다. 가문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레시피를 써보려고 했더니 십 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는 흔한 허브나 향신료가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서 마트에 갔다가 금세 내려놓아야 했던 기억이 있다. 로스트 치킨을 만드는 데 생닭 한 마리 보다 허브가 훨씬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CD를 컴퓨터에서 열기가 힘들어진 만큼 시대가 빠르게 변해버렸지만, 다시 레시피 파일을 열어 존 아저씨를 떠올리며 요리를 해봐야겠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언젠가 미국에 가서 아저씨를 만날 수 있겠지만, 그때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요즘, 나의 미국 아빠, 엄마인 존 아저씨와 도나 아줌마가 유난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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