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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조 Jun 02. 2022

브리또를 안 드신다면 겸상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영혼을 채우는 맛, 브리또



  예전 풀타임 직장 생활이라는 것을 하던 시절, 겨울마다 약 한 달 정도 짧지 않은 출장을 가야 했다. 무려 미국의 세인트루이스라고 하는 중서부의 시골. 가장 가까운 도시 중 우리에게 익숙한 곳은 시카고인데 고속도로를 5시간을 내리 달려야 갈 수 있는 외진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캘리포니아처럼 따뜻하지도 않고 겨울에는 눈도 꽤 많이 오는 터라 미국에 가 있는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야외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출장으로 여러 번 그곳을 방문했던 나는 갈 때마다 인상 좋고 넉넉한 빌 아저씨와 언제나 친절한 조앤 아줌마 집의 널찍한 빈 방에서 편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출장으로 여러 번 다녀왔기 때문에 그 지역에 친숙했고 미국에 오래 거주한 경험도 있어서 외식하는 경우 식당을 고르는 것은 항상 나의 몫이었다. 함께 출장에 동행했던 선배는 장기 출장으로 육아와 가정에 해방된 시간을 몹시 즐기시고 계셨고, 둘 다 독립적인 성향이라 퇴근 후 저녁시간에 서로의 시간과 공간에 침범하지 않는 부분이 썩 잘 맞아 비교적 만족스러운 팀워크를 이루고 있었다. 빌 아저씨와 조앤 아줌마네 호스트 패밀리가 매일 푸짐한 미국식 저녁 집 밥을 제공해주셨다. 하지만 버터 향 가득한 미국식 집 밥을 계속 먹다 보면 김치도 생각나고 문득 지겨울 때도 있다 보니 종종 외식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긴 출장 중에 상대의 식습관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출장을 갈 때마다 같은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다 보니 미국 가족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빌 아저씨와 조앤 아줌마는 자녀가 9명이나 되는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블랜디드 패밀리 (*Blended family: 각각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후 또 자녀를 둔 가족형태)로 거대한 가족이었다. 재혼과 입양으로 자녀수가 굉장히 많아서 갈 때마다 새로운 자녀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 번은 파라과이에서 입양된 나와 동갑인 레베카를 만나 스몰 토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에게 어떤 종류의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하길래 캘리포니아에서 오래 살았던 나는 별 고민 없이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반가워하는 게 아닌가. 자기도 멕시코 음식을 좋아하는데 주변에 별로 즐기는 사람이 없다고 나중에 꼭 같이 먹으러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왜 멕시코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없을까 의아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보니 미국의 중부지방 사람들은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동네였고, 음식에 대해서도 그랬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던 친구는 미국에 이민을 와서 3대째 살고 있으면서도 미국 음식이 아닌 이탈리아 음식만 주식으로 먹고 다른 음식을 먹느니 굶는다고 하였다. 미국 사람인데 햄버거를 먹지 않는다는 기가 막힌 소리였다. 미국 서부에 주로 살았던 나는 젓가락질 잘하는 외국인들과 어렵지 않게 마주쳤기에 이런 편식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호스트였던 조앤 아줌마도 젊을 때 몇 년을 제외하고는 평생 세인트루이스에서만 사신 분이셨다.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 아줌마도 한 번 멕시코 패스트푸드점에 갔는데 고수를 못 드셔서 브리또에 들어가는 밥에 고수를 빼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직원의 과도한 친절로 본인 때문에 밥을 한 솥 새로 해주는 바람에 미안해서 다시는 못 간다고 하셨다. 새삼 앞서가던 미국의 서비스 마인드가 대단하기도 하고, 친절함 그 자체이셨던 조앤 아줌마 성격에 미안해서라도 앞으로도 그 식당은 평생 안 가시겠거니 했다.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는 한국, 중국, 일본인 등 워낙 다양한 아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어서 검은 머리 외국인인 나를 보고 신기해한다거나 영어를 잘한다는 소리는 잘 듣지 못하고 살았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1.5세, 2세, 3세 네이티브인 교포들이 워낙 많아 고등학교 때 미국에 가도 늦은 감이 있었다) 중부지방에서도 시골인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대화를 시작하면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 발음이 좋다, 말을 참 잘한다, 한국은 어때 등의 질문 세례가 쏟아지곤 했다. 미국 고등학교 시절에도 한국(Korea)에서 왔다고 하면 ‘North or South?’ 북한이냐 남한이냐고 물으며 한국 지식에 대해 뽐내는 친구들이 가끔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강남스타일, 오징어 게임, BTS 전의 시대였기 때문에 한국의 어떤 것보다 북한과 김정은이 훨씬 더 유명했다. 그리고 한국을 알고 있던 그 친구들은 대부분 모두 북한에 대한 지식을 쏟아냈다. 누군가의 외적인 정보만 보고 언어나 배경을 짐작하는 이 모든 발언들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 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곳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자라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고 세인트루이스로 출장 와서 영어로 대화하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미국에 사는 동안 언제 또 미국에 올까 싶어 미국에서 유명한 대도시들은 많이 여행을 가봤었는데,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은 자기도 못 가본 곳을 가봤다며 ‘캘리포니아는 어때?’, ‘거기 날씨가 항상 좋다며?’, ‘뉴욕은 좋은데 복잡하지?’ 등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 신기한 이방인이 되었다. 나중에 누가 이 상황을 비유하건대, 한국에서 온갖 군데 전국 일주 여행을 다하고 한국말도 꽤 유창한 어떤 외국인이 강원도 시골에 장기출장을 와서 평생 그곳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촌놈(?)과 하는 한국말 대화와 비슷하지 않았겠냐며 그들에게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광경이 아니겠냐고 하였고, 나는 무릎을 쳤다.


  한 번은 미국 출장 중에 상사 분들이 짧게 며칠간 동행하셨는데, 호스트 패밀리와의 ‘잉글리시 디너 타임 컨버세이션(영어로 대화해야 하는 식사시간)’을 힘들어하시는 상사 분들을 모시고 외식을 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출장 중 식당 선택은 나의 몫이었는데, 어르신들 입맛을 고려하면서도 미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를 고른 신중한 나의 픽은 치폴레(Chipotle)였다. 치폴레는 미국 전역에 수백 개의 매장이 있는 멕시코 음식의 서브웨이라고 할 수 있다. (*서브웨이처럼 브리또, 타코, 브리또 볼에 들어갈 내용물을 자신이 하나씩 선택하여 주문하는 스타일의 캘리포니아식 멕시코 식당이다*) 미국에서 아직 대중적이지 않았던 멕시코 음식이 치폴레 체인으로 대중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하게 되어 한때 미국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연이은 식중독, 거짓 마케팅 등의 논란이 많아 최근에는 예전만큼의 인기가 아니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기도 하였지만 맛은 꽤 괜찮다.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대학을 다녔던 나는 적어도 미국에 사는 몇 년 동안에는 치폴레를 싫어하거나 맛없다고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핫 소스로 느끼함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도 꽤 좋아하는 메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살사를 고를 때 고수가 양껏 들어 있는 ‘마일드 살사’를 선택하지 말아야 하며, 아보카도가 들어간 ‘과카몰리’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추가해서 먹어야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와 멕시코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 넘어온 멕시코 이민자들이 전통 멕시코 식당을 여럿 운영하고 있어 동네마다 멕시코 맛집 하나 정도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었다. 매주 화요일은 Taco Tuesday로 피시 타코(*생선 대구 튀김이 또띠야에 들어있는 타코)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날도 있다. 동네의 식당들도, 대학교 안에 있던 한 식당도 화요일마다 피시 타코를 1달러에 먹을 수 있어서 화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조금 더 근사한 멕시코 식당에서는 운이 좋으면 멕시코 전통악기 기타와 비슷한 기따라를 메고 멕시코식 커다란 모자 솜브레로를 쓴 유쾌한 악단이 불러주는 노래를 식당에서 직접 들을 수 있는 이국적이고 밝은 분위기여서 즐겁고도 맛있는 멕시코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가끔 과카몰리를 시키면 직접 테이블 앞에서 취향에 따라 재료를 섞어 주기도 하는데, 신선함부터 맛까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과카몰리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치폴레는 비교적 대기시간이 매우 짧은 패스트푸드의 한 종류였고 캘리포니아에서는 동네마다 있는 식당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이나 지인들, 혹은 멕시코 음식이 생소한 사람들에게 소개해도 언제나 만족스러운 이색적인 코스였다. 그래서 치폴레에 가면 소고기냐 돼지고기냐, 브리또냐 브리또 볼이냐 이런 고민이야 하지만 맛으로는 실패해 본 적 없는 나의 야심 찬 강력 추천 메뉴였다. 그런데 장기출장에 함께하던 선배가 한 입 먹자마자 자기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며 금세 포크를 내려놓으셨다. 연세도 더 있으시고 한식을 좋아하시는 상사 분들은 모두 맛있게 잘 드셨는데, 그분만 유독 별로라고 하시니 당황스러웠다. 식당에 갈 때까지 여기가 얼마나 맛집이며 대학 때부터 친구들이 다 만족해하던 메뉴라고 자신 있게 소개했던 나는 괜히 머쓱해졌고, 그분에게 나의 머쓱함은 그다지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앞에서는 티도 한번 못 내보고 숙소로 돌아와 방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누군가가 고민해서 맛집이라고 소개하고 데려가 애쓴 모습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딱 잘라 별로라고 하다니, 별일 아닌 것 같은데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브리또는 우리의 자존심이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학교가 있는 동네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가면 한인 타운이 있는데(타운이라기엔 길 하나였지만) 멕시코 국경과 더 가까운 샌디에이고 다운타운 지역이다. 그곳에 허름하고 유명한 로컬 맛집 멕시코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그 식당은 식당 안에서 식사할 수 있는 좌석은 없고 야외에 마련된 피크닉 테이블만 제공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위주의 정말 작은 건물의 식당이었다. 식당이라고 말하기에도 허름하고 볼품은 없어도, 학교와는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곳이었다. 밤이 되면 문을 다 닫아 갈 곳이 없는 미국 땅에서 배고픈 학생들을 늦은 시간 저렴한 가격으로 배부르게 해주는 ‘선배가 후배에게 전수해 주는 소문난 맛집’이었다. 샌디에이고 지역의 멕시코 식당에 가면 ‘캘리포니아 브리또(California Burrito)’라는 메뉴가 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브리또에 감자튀김이 인정사정없이 박혀있는 독특한 메뉴다. 브리또 자체도 원래는 멕시코 음식이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노동자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브리또도 예상하기에는 멕시코 본토에는 없지만 미국으로 오면서 누군가 감자튀김에 환장하는 미국 사람들의 입맛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감자튀김이 박혀 있는 브리또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칼로리는 맛과 비례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맛있는 거에 맛있는 거를 섞으니 당연히 맛있고 살찌는 메뉴인 데다, ‘카네 아사다 프라이스(Carne Asada Fries)’는 감자튀김에 소고기, 치즈 등을 얹어 주는 메뉴로 캘리포니아 브리또와 함께 그 식당의 인기 메뉴였다. 게다가 지금도 맛의 비법을 도저히 알 수 없고 어디에서도 비슷한 핫 소스는 보지 못했는데, 이 핫 소스는 맵지 않지만 브리또나 감자튀김에 뿌려먹으면 느끼함을 딱 잡아주는 신비한 마성의 소스였다. 식당은 꽤 늦은 시간까지 운영했기 때문에 야식으로 먹기에 딱이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야식으로 먹을 곳이 없어 우리들의 유일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늘 만족스러웠다. 그 식당은 보통 2-3명 정도의 직원으로 매우 단출하게 운영되는 곳이었고, 언제나 드라이브 스루 줄이 길게 늘어져 대기 시간이 늘 있었다. 길거리 음식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어서 장이 예민한 후배 한 명은 그곳 음식을 먹으면 항상 배탈이 나지만 너무 맛있어서 차라리 먹고 아프겠다며 매번 함께 야식을 즐겼다. 우리들은 밤 10시가 넘어서 먹는 브리또가 역시 제 맛이라며 혈중 지방 농도를 맞추며 행복하게 배를 채웠다. 


  멕시코 음식에 대한 열정과 추억이 있어서인지, 몇 해 전 한국에 치폴레와 거의 비슷하게 만든 <쿠차라>가 처음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대학시절을 보낸 친구들과 기쁜 마음으로 단체로 방문해 감격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브리또에 진심인 나는 그 선배의 ‘브리또가 별로‘는 말에 나의 대학 시절이 스쳐 지나갔고, 내가 만든 브리또도 아니고 멕시코는 1박 2일 여행 가본 것이 전부인 나지만 기분이 묘하게 나쁘긴 했다. 그날 밤 나는 소심한 복수랍시고 그 선배는 보지도 않을 나의 개인 SNS에 ‘치폴레를 싫어하는 사람과 친구를 하지 않겠다..’고 타임라인에 소심하게 올렸다. 치폴레를 사랑하는 적지 않은 수의 국내외의 온라인 동지들은 누가 도대체 치폴레를 싫어하냐며 상종도 하지 말라고 격한 댓글로 나를 달래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 한마디가 무엇이라고 그렇게 기분이 나빴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그 선배의 무례한 태도였다. 사람의 입맛은 누구나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은 모두 다를 수 있기에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았다고 한들 당연히 맛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고민하고 선택해서 데려간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배려가 없는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음식을 사랑하고 즐기는 나에게는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브리또 사건 후에도 현지에 사는 교포 스텝 분께 추천받은 미국 식당에도 여러 번 그 선배와 함께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은 여기는 짜서 별로, 여기는 달아서 별로라는 등의 불평, 불만을 거의 매 끼니마다 늘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동안 함께 하면서 그분이 만족하는 식사를 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댁에서도 부인이 해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참고 먹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또 한 가지는 그 선배는 음식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대하는 태도나 평소의 언행이 ‘언. 제. 나.’ 부정적이었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하기 싫다는 말을 한동안 퍼붓고 결국 그 일을 해내시는데, 좋게 말하면 츤데레(*툴툴거리며 챙겨주는 스타일을 일컫는 말) 스타일이셨고, 내 눈에는 투덜이 스머프로 보였다. 그래서 치폴레의 브리또가 아닌 그분의 태도가 나를 언짢게 한 것이 점점 더 확실해졌다. 그리고 적어도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가 추천해준 음식 앞에 ‘난 별로야’라고 말하는 무례함은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 다른 지인 중에 요리에 관심이 많고 자칭 미식가를 자처하는 요리 부심이 대단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어떤 식당이 맛있었다고 이야기하면 거기는 이래서 별로고 저래서 별로라는 부정적인 말을 먼저 쏟아낸다. 그 친구의 의도가 나쁘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난 그 집이 맛있는데 왜 저렇게 말하지?’라는 의문이 종종 들었다. 자신이 먹는 것에 일가견이 있고 미식가라는 것을 뽐내고 싶은 건지, 자신의 맛집이 좋은 선택이었다는 인정을 원하는 것인지 그 속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매번 그런 말을 들으면 대화가 조금 멈칫해지기는 했다. 그 친구도 더 오래 알고 보니 음식에 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강한 태도와 어조로 일관하는 성향의 친구였다. 유독 음식에만 예민한 부류의 사람들도 있지만,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결국 이것은 음식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가 음식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성격 좋은 우리 작은 이모부는 세상의 모든 음식을 다 맛있게 잘 드시기도 하니까. 모두를 만족시키는 맛집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적어도 누군가의 즐거움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 경험을 거울삼아 나는 음식뿐 아니라 다른 어떠한 것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개인의 취향은 소중하니까. 우리의 입맛은 소중하니까! 조금 더 진지한 관점으로는 음식에 관한 취향이나 식성은 한 사람의 개인적 역사와 경험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가. 엄마의 김치찌개와 비슷해서 그 집 음식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음식 맛을 몰라서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음식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우울하면 단 게 당기고, 스트레스받으면 매운맛이 당기는 것처럼. 밥은 절대 그냥 밥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이 다른 사람의 어떠한 삶의 부분도 부정하거나 폄하하지 않으려고 조금이나마 애를 쓰는 것이다. 사실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치폴레나 브리또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즐거운 식사를 하겠지만, 무례한 사람과는 겸상하기 싫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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