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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3. 2022

<음악으로 세상 읽기 01> 러시아 인형처럼1 리셋음악

리셋음악을 통하여 드러난 음악적 내러티브와 줄거리 해석

- 리셋음악으로 등장한 해리 닐슨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 베토벤 Beethoven 피아노 협주곡 4번 3악장 Piano concerto no.4 - 3. Vivace(Rondo)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1의 줄거리

2019년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1에 대한 이야기.


주인공 나디아는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타임루프를 겪으며 매번 36살의 생일파티로 돌아온다. 다시 태어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러다 우연히 또 다른 남자 주인공 앨런 역시 같은 시각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끝없는 죽음과 힘든 삶 속에서 결국 둘은 합심하여 벗어나고, 함께 행진하며 시즌 1이 마무리된다.

죽음은 쉽다, 힘든 것은 삶이다.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1의 "리셋 음악"

이 때 반복되는 삶과 죽음 속에서 반복되는 음악이 있다. 영화 내에서 반복되는 음악에는 제작자의 신중한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실제 본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 나타샤 리온 Latasha Lyonne*은 주인공들이 다시 태어날 때마다 나오는 음악을 일명 "리셋 음악(Reset song)"으로 칭한다.


극에서 반복되는 음악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읽을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지만, 러시아 인형처럼에서는 매번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상황적 특성에 따라, 상반되어 나타나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음악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주인공 나디아의 리셋 음악해리 닐슨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 남자 주인공 앨런의 리셋 음악베토벤 Beethoven 피아노 협주곡 4번 3악장 Piano concerto no.4-III. Vivace에 집중해볼 것이다.




나디아의 리셋 음악; 해리 닐슨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

먼저 극 중 주인공 나디아가 36번째 생일의 화장실로 다시 태어날 때마다**등장하는 해리 닐슨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이다.



아침이 밝았으니 다시 일어나라는 가사부터도 나름의 은유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하여 Gotta Get Up은 2박과 4박에 강세가 두드러지는 팝송이라는 것에 주목해보자. 전통적인 음악에는 우리가 흔히 배우는 '강 약 중강 약'의 패턴을 가지게 되는데, 이 곡에서는 기타, 색소폰 등 다양한 악기의 음색이 동원되며 공통적으로 첫박이 아닌 박에 강세를 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음악의 강세를 뒤집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업비트 팝송이라는 활기차고 고조된 분위기의 음악에 잘어울리는 어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 등장하는 키보드 소리가 4번씩 묶어지는 4비트로 음악의 뿌리를 잡아주고 있다면, 여기에 얹어지는 기타, 색소폰 소리는 3, 4번째 비트 등에 뜬금없이 등장하여 주요박이 아닌 부수적인 박의 위치를 강조하는 형태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본 음악의 가사와 리듬적 특징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나디아의 모습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가사의 내용을 통해 죽음 이후 삶의 시작을 알리는 역설적인 활기참을 보여준다.





남주인공 앨런의 리셋 음악;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3익장
Beethoven - Piano Concerto no. 4 - 3. Vivace(Rondo)


한편 또 다른 남주인공 엘런은 첫 죽음의 이유도 모른 채 다시 태어난다. 첫 죽음의 기억이 있는 주인공 나디아와 다른 지점이다. 이유 모르게 매번 다시 태어나지만 분명한 것은 매 삶마다 앨런은 강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날 때마다 매번 양치를 하며, 날아다니는 파리를 죽이고***, 성공 확언을 듣고 나서는 집을 나서는 매일의 루틴을 반복한다. 엘런의 리셋 음악으로 등장하는 것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3악장 Beethoven Piano Concerto No.4-III. Vivace이다. 


본 음악은 들으면 알겠지만 클래식 음악이다. 그 중에서도 대략 유럽 문화권의 18세기 즈음에 해당하는 고전시대 음악인데, 고전시대의 클래식 음악은 엄격한 법칙을 따르고, 정해진 음악 어법이 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보다 통제적이다. 예컨대 본 음악은 론도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통제적인 클래식 음악 장르의 특성을 더욱 여실히 보여준다. 론도형식은 A-B-A-C-A 와 같은 알파벳을 통해서도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이야기- B,C -로 갔다가도 다시금 처음의 음악적 주제 -A- 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는 음악 형식 중 하나이다. 이러한 회귀하는 음악적 규칙은 끊임없이 나타나는 죽음과 삶이라는 극적인 내용을 강화함과 동시에 통제적이고 정돈된 남주인공 엘런의 성정을 잘 나타내준다.****





음악적 특징을 통하여 강화되는 주인공의 캐릭터


업비트 속 자유분방함의 나디아와 론도 형식의 통제성을 가진 앨런

요컨대 리셋음악은 본질적으로, 죽음과 삶을 경계짓는 음악인 동시에, 극 속 캐릭터의 속성을 강화시켜주는 장치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두번째 속성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업비트라는 리듬적 속성, 그리고 론도라는 클래식 음악의 형식을 통하여 강화되는 캐릭터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렇게나 다른 두 주인공이 어떻게 삶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는지를 보는 것 또한 작품의 묘미이다.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1 결말과 의미


이렇게나 다른 나디아와 앨런, 자신들이 타임루프를 겪는 이유에 대하여 사족을 붙이며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를 반복한다. 그러다 답은 그들이 서로를 돕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타임루프를 멈출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타임루프를 멈춘 후 주인공들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행진한다.


함께 홀로 서는 연대, 그리고 치유

속의 수많은 인형이 합쳐 하나의 큰 인형이 되듯, 셀수 없이 많고 작으면서도 거대한 절망을 맞이하더라도, 서로를 살펴보고 각자의 아픔을 나누는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자아를 들여다보고 치유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함께 홀로 서기의 여정을 지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타인과의 연대와 타인에 대한 관심이 드라마가 내보이고자 하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온전한 자신을 찾은 둘의 모습을 보면, 마지막 장면의 행진을 단순한 환호의 시각이 아닌, 연대와 사랑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앞으로도 그들 앞에 러시아 인형처럼 비슷한 형태의 수많은 시련이 있을 테지만, 온전한 홀로 서기 과정 속에서 함께 걷는 타인과의 연대와 사랑이 그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극 속 음악의 역할을 '리셋음악'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지만, 본 드라마는 엔딩 크레딧의 음악을 통하여 내러티브를 강화하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가사를 통하여 극의 전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따라서 다음 글에서는 극의 서사를 따라가며, 각 회차마다의 엔딩 크레딧 음악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참여한 나타샤 라온만큼 나디아 역에 적절한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실제 어린 시절 마약 중독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 나디아가 매번 다시 태어나는 화장실의 문고리는 총으로 되어있고, 방아쇠를 당기면 또 다시 리셋되어 힘든 삶(?)이 기다린다는 점도 흥미롭다.
*** 여담으로 학부시절 단기 교환 학생 다녀와 다른 국적의 친구들을 사귄 적이 있는데, 그때 이탈리아 학생이 벌레를 대하는 태도가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날파리가 날아다니면 죽이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지만, 그는 그런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Let it be, Let it in, Let it go” 읊조렸다. 옆에 있던 체코 학생도 그에 동조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한국 학생들 뿐이었다. 그들의 문화에서는 파리 같은 미물도 생명이니 그냥 두라는 것이었다. 그런 점을 비추어 보아 앨런이 파리를 잡는 행동은 그의 강박적이고 통제된 성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론도 형식으로 쓰인 이 곡은 간단하고 전통적인 특성을 가진다. 론도는 A가 지겹도록 나온다는 점에서 흔히 반복과 통제로 비유되는 꽤 흔한 음악적 이디엄(관용구)이다. 음악의 형식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재될 글을 통하여서도 다룰 예정이다.
***** 장르와 형식의 차이는, 쉽게 말하면 장르는 음악의 분류이고 형식을 음악을 쓰는 방식이자 거시적인 틀이다. 글로 보자면 장르는 수필, 산문 등이고 형식은 사언 칠구, 수미상관과 같은 글쓰기의 큰 포맷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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