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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8. 2022

<음악으로 세상 읽기 05>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음악으로 드라마 읽기:  1화 속 음악으로 표현된 병원의 특별한 보통날

- 슈베르트 Franz Schubert , 군대 행진곡 Marche Militaire



우리들의 "특별한 보통날"이 시작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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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좋은 극음악이란, 

지난 <음악으로 세상 읽기> 글들을 통하여 음악의 장르, 가사와 음고, 음색, 음형 등 음악적 요소를 살펴보았다. 또한 소위 막장이라고 치부되는 극적인 전개의 화려함을 콜로라투라의 도약음정에 빗대어 보았다.


지금까지 음악을 통하여 극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오늘은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극 음악의 조건과 함께, 형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적절한 예로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에 대하여 적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좋은 극 음악은 다음의 세가지를 갖추었을 때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첫째, 기능으로서의 매체 음악으로, 음악은 극의 내용과 어울리는 적절한 분위기를 암시해주어야 한다. 둘째, 비유적 장치로서의 매체 음악으로, 극의 예술적 의미를 강화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작품과 별개로 그 자체로도 심미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의 첫 장면이 이 조건들에 부합하는 드라마 음악의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화부터 바쁜 우리 의사 선생님들,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의 일상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으로 군대 행진곡이 등장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1화 20분 즈음부터 군대 행진곡이 나오기 시작하며 율제병원을 멀리서 보여준다. - 본 이미지는 공표된 저작물을 비평의 목적으로 발췌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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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 Music

음악이 등장하는 장면, 익준(조정석 배우님)은 우연히 출근하고 있는 송화(전미도 배우님)를 만난다. 이때 익준은 송화에게 인사와 함께 “아침인데 커피 마셔야지”라는 말을 건넨다. 이 장면부터 군대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익준과 송화의 출근을 시작으로 이제 카메라는 모든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교수들의 의사 생활에 대하여 보여준다. 그렇게 모두의 일상이 시작된다. 이 장면에 왜 하필 이 음악이었을까?



Why? 군대행진곡인가: 특별한(B) 보통날(A)의 ABA

이유를 되짚어보기 위하여 군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군대는 관료제 집단의 결정체로 산업사회 집단의 축약이다. 그런 점에서 군대와 병원은 닮았다. 공통된 목적을 위하여 집단 구성원들이 상하 관계 속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굴러가기 때문이다. 병사-부사관-장교를 거치듯, 병원 또한 인턴-레지던트-펠로우-교수를 거쳐야 한다. 그런 의미로 본 장면에 군대 행진곡이 쓰인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제목의 상징성 뿐만 아니라, 곡 자체가 자아내는 행진곡의 규칙적인 역동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아나스타시아 보롯나야 Anastasia Vorotnaya, 안드레아스 쉬프 András Schiff - F. Schubert, Marche Militaire


음악의 형식 측면에서 보았을 때, 흥미로운 한 가지는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이 A-B-A의 세도막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세도막 형식이란 음악의 형식 중 하나로, 하나의 글이 소주제에 따라 단락을 나누듯 하나의 음악이 작은 주제와 음악적인 아이디어에 따라 나뉘게 되는 형태이다. 특별히 A-B-A는 A의 단락이 뒤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으로, 문학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 수미상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A-B-A의 판단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난 글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언급했던 음고 - 다른 말로 음높이- , 음색 - 음의 색깔 - , 음형 - 음의 형태 - 등의 음악적 요소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직관적으로 듣기에 다시 돌아오는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오는 음악적 요소들을 짚어가며 듣다 보면 더 와닿는다. 우리 모두 아는 그 당당한 선율, 레 - 라라 솔# 라- 는 A의 주제 선율이다. B는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고 새로운 음고와 음형, 앞과 반전되는 여린 음색이 나타난다. 위 영상의 2분 20초 즈음을 들어보자. B의 시작이다. 이 부분에서는 당당했던 A와는 달리 매우 서정적인 선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4분 즈음 다시 A로 돌아오는 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곡의 경우 A와 B의 다름이 너무나 확연하여서 음고, 음색, 음형의 개념을 알지 못해도 그를 판단할 수 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2에서 A-B-A로 돌아오는 세도막 형식을 썼다는 점은 음악 형식을 통하여 극에 대한 비유적인 암시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병원에는 늘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경증이든 중증이든 환자들이 모이는 공간이니까. 이러한 병원의 일상적인 평화를 A라고 본다면, 병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B, 다시 어쨌든 매일 굴러가는 병원을 A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진료, 회진, 수술 등의 일상 속에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병원은 늘 그렇듯 또다시 환자를 돌보는 보통의 일상을 산다. 이는 글의 맨 앞에 첨부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2의 대표 포스터에 나와있는 문구인 "특별한 보통날"에도 부합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시즌 1을 끝내고 시즌 2의 시작에서 이와 같은 군대 행진곡이 나오는 것은 마치 시청자에게 '그동안 잘 지냈냐, 당신이 보지 않은 사이, 병원의 일상은 이렇게 특별한 듯 평범하게 굴러갔다'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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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극음악에 숨겨진 음악적 비유 읽어내기

음악적인 비유에 대한 해석은 청자의 몫이다. 시를 읽는 사람마다 그 감상과 해석이 다르듯, 음악의 언어도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 나의 경우 본 장면을 음악 형식을 통하여 병원의 특별한 보통날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하였다. 드라마 속에 소개된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은 드라마를 빼고 들어도 너무나 저명할 만큼, 그 자체로도 심미적인 음악이기도 하다. 


사실 극 속에서 반복되는 루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세도막형식보다는, 론도형식의 이디엄을 많이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다. 드라마 속 짧은 호흡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이 아니라, 반복과 그 속에서 움트는 변화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추후 영화 트루먼쇼의 음악을 살펴보면서 다룰 예정이다. 






* 아래는 음고, 음색, 음형에 관한 개념을 다룬 이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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