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민정 01

까미노 나를 부르다

by 강민정

1부. 까미노가 나를 부르다.

여행에 앞서

1.

2008년 1월 3일. 여느 날처럼 새날(구로, 새날을여는청소녀쉼터)에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앉아 다른 선생님들을 기다리면서 머리가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서 잠시 방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었는데 다시 들려고 하자 말을 듣지 않았다. 의지는 있었는데 머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누군가 천근만근 돌덩이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것 같이 방바닥에 철썩 달라붙어서는 떼어지지 않았다.

흔히 보아왔던 조금은 현란한 무늬의 그 뇌, 그 빈틈 속에 검고 진덕 진덕 한 것들이 꽉꽉 차 있는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서 더 무겁게 느껴졌을까.

그 길로 고려대 구로병원에 이틀 동안 부정맥 검사기를 차 보기도 하고 진료도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원래도 까무잡잡한 얼굴이 점점 더 어두운 색이 되어가더니 어느 날부터는 오른쪽 눈 밑과 코 옆으로 ㄱ자 모양으로 기미가 올라왔다. 왼쪽 눈밑과 코 옆으로도 똑같이. 까무잡잡한 얼굴에 두 줄기 눈물자국이 난 것처럼.


2004년 아직 CBS 교회에 다니던 중 7월 단독 목회를 결심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 제안이 들어온 청소녀 쉼터 새날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쉼터였는데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는 교회이기도 했다.

일주일에 5일을, 두 번째 사춘기를 맞아 특별히 예민하고 솔직해서 거친 것이 곧 전부였던 청소녀들과 숙직하며 지냈다. 삶의 열정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그럴수록 온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는데, 인생 선후배님들을 만나 조금이나마 힘을 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으며 살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금쪽같았던 나머지 이틀은, 노년을 바라보며 또 한 번 사춘기를 맞아 존재감 찾기에 온 열정을 기울이며 인생 가장 격렬한 싸움에 돌입하신 내 부모님과 지내야 했다. 생전 처음으로 부모님의 상담자가 되었다. 번갈아가며 두 분을 만나 술 한잔 하면서 진심으로 이혼을 독려했다. 그러나 두 분은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이혼하지 않았다.


내 몸속에서 작은 반응들이 하나씩 둘씩 올라오는 것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려 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두렵다기보다는 신경질적이 되어가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2008년 3월이면 목사 안수를 받을 것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응원받으며 기다려왔던 목사 안수였다. 그런데 마음 한편이 그저 신나지만은 않았다. 이대로 담임할 교회를 구하고 그 길로 목회의 삶에 빨리 들어선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교를 하면 할수록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3월이 되고 안수를 받은 후, 내안 교회 담임목사님과 교우님들께서 허락해 주셔서 주일 예배 설교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설교문을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 심리상태는 몸으로도 표현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설교를 하다가 음이탈 현상이 매 번, 정말 매주마다 일어났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매 번 그랬다는 것이. 지금처럼 매일 노래를 할 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착하고 착한 우리 교우님들께는 지금 생각해도 죄송하다.


그즈음, 2007년에 함께 유럽 여행을 했던 독일에서 유학 중이었던 선배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독일에 가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내 생각을 알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었다. 7월 31일. 나는 로이틀링엔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음에 간직했던 그곳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카미노(Santiago de Camino in Spain)가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2.

2007년 여름, 대학 동기가 듣도 보도 못했던 어느 길에 오랫동안 오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선택에 놀랐고 관심이 생겼고 곧 그 길이 나를 부르고 있음에 가슴 뛰었다. 산티아고 데 카미노(Santiago de Camino in Spain).

나는 곧바로 산티아고에 대한 책을 구입했다. “순례자”,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의 두 책을 내리읽고, “산티아고 가는 길”(김효선)을 읽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기회를 얻는 대로 꼭 가리라.

2008년 7월 31일. 독일로 이틀 링엔.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고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서른일곱, 내 인생 첫 독립이었다. 가족으로부터 직업으로부터 그 어떤 것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시간을 만났다. 한량이 따로 없었다. 독일 한인 남부교회 교우들과 그리스 아테네에 봉사활동도 다녀오고, 선배 언니와 밀라노 여행도 잠시 다녀오며, 어학원 등록도 하고 바쁜 두 달을 보냈다. 그리고 10월 14일에 출발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여행을 준비했다.

여행 비자 만료 기간 3개월이 다 되어가는 때였기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비자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만일 1년짜리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여권을 받아 여행 후에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었다. 꿈을 꾸고 계획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야곱이나 순례자들이 어떻게 걸었든지 간에 지금 걷고 있는 내가, 이 길에서 사랑을 베풀고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오늘’ 이 중요했다. 만나는 자연과 만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잘 통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나눌 수 있고, 그렇게 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비자를 기다렸다. 10월 13일 비자가 내 손에 들어왔다.


3.

마음에 꼭 드는 배낭 하나 구입하고, 옷장 한편에 쌓아두었던 물건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삭발을 거행했다.

어떤 이는 뒷 통수가 예쁘냐고 물었고, 또 어떤 이는 꼭 그렇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설마 아니죠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 머리통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고, 머리카락이 완전히 없는 상태의 기분이 궁금했고, 그 시점을 바로 이 여행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버지하고 몇 해 전 우연히, 삭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언젠가 해보리라 마음먹었었다.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남김없이 잘라서 거뭇한 자국만 보이고, 촉감으로는 까끌까끌하게 걸리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아. 웃음이 자꾸 나왔다. 평생의 소원 하나를 또 이루었다. 크크크캭캭캭... 정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얼른 사진 한 장을 찍었다.

평생에 몇 번이나 이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새롭게 시작하는 나의 인생에 이정표를 그려 넣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지금까지의 어떤 사진보다 환한 얼굴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머리 모양에 신경 쓰지 않는 삶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내게는 그렇게 해도 괜찮을 만큼의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외모에 관심 갖기보다 내가 걸어야 할 시간과 그 길에 충실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했다. 이 의식을, 나의 미래를 꿈꾸는 시작으로 삼는다.


단지 머리카락만 잘라 버렸을 뿐이다. 겨우 시작이다. 이제부터 버릴 것이 정말 많다. 생각해 볼수록, 나는 가진 것이 참 많았다. 독일에 올 때도 조금만 가져오자고, 도착해서도 짐을 늘리지 말자고 다짐하곤 했지만 결국 짐은 또 늘어났다. 산티아고 그 길에 들어서면서 다시 주변을 정리하고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넣고 다닐 좋은 가방에 더위와 추위에 기능이 좋은 옷에 먹거리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가진 자중의 가진 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 길에서, 과연 무엇이 필요한 것이고 또 무엇은 불필요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꼭 이 길을 선택해 걸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누구로부터도 쉽게 방해받지 않으면서 오롯이 내 안의 신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겼을 뿐이다. 수많은 순례자들처럼 나 또한 고요히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때론 고행일 것이지만, 그러므로 더욱 값있는 길이라 생각된다.

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또 마음에 두었던 것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 아닐까. 왜 이 길을 걷고자 했을까. 그들의 걸음에는 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홀로 40여 일을 걷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찌 결단하여 그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러니 그이들 또한 순례자의 마음을 닮아 있지 않을까.

나처럼 생각하며 오는 친구들도 하나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언어는 물론이거니와 소통 자체가 잘 되지 않을 테지만, 지나는 이들 한 번씩 쳐다봐 주고, 한 마디라도 그를 위해 기도해 주며 눈빛으로 토닥여 주기도 하고 만나고 보내주고 그렇게 나 또한 떠나오고 싶다.

날씨가 안 받쳐준다고 불평할 일도 아닐 것이다. 늦은 가을과 겨울을 택한 건 나이니까.

몸에 남아있는 노폐물들, 마음에 있던 무거운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싶다. 사랑했으나 이제는 다르게 사랑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자유롭고 싶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기억들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신의 손 길 닿은 자연 속에서 감탄하며 느끼는 대로 표현하고 싶다. 소리도 질러보고, 노래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함께 있는 신과 만나고 싶다. 그들 안에 살아 움직이시는 신의 섭리를 느끼고 싶다.

신의 뜻을 깨달으며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이, 느리고 소박한 삶이, 한적한 시골에서의 삶이, 작은 꿈이, 성실함이, 가진 것 없어도 기쁘게 살아갈 줄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확신을 얻고 싶다. 그 확신을 얻을 때 나의 땅에 돌아가서도 어느 곳이든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버리고 채우고 확신을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안다. 인생에서 얻은 소중한 기회를 통해 배우고 싶을 뿐이다.

건강을 유지하며 걷기 위해 때론 더 먹게 될 것이고, 때론 먹지 않기도 할 것이다. 매일의 걸음 안에서 내가 성장하길,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그 길.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길. 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의 작품 안에서 내 인생의 미래를 발견하게 될 바로 그 길로 들어서는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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