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민정 02

까미노 나를 부르다

by 강민정


첫 째 날.

Madrid - Zaragoza - Jaca Jaca 알베르게

마드리드, 아테네, 밀라노, 파리의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이곳 열차는 조금 오래된 것들이 그대로 눈에 띄었고, 천장이 낮았고 크기도 작아 보였다. 낡은 것을 오래도록 사용하는 습관이 좋아 보였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이어진 봉이 여기저기 있어서 어린이들이나 나같이 키 작은 성인들에게도 불편함이 덜해서 좋았다. 어떤 것은 내 가슴 높이쯤에 올록볼록 입체적으로 스틱이 휘어져 튀어나와 있었다. 잡기에 편했다. 내 머리 위에 있는 손잡이를 잡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대도시의 북적북적한 것이나 속도감은 서울이나 다른 나라나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 도심의 지하철이 키 작은 나를 내 나라보다 더 배려하고 있었다. 타국에서 뜻 밖에 진짜 모국을 만난 느낌이었다.


마드리드의 민박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사라 코사의 크나큰 고속버스 터미널을 경유해서 마침내 하카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삶은 계란, 미역국, 바게트와 커피 한잔.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긴장한 탓이었을까.

밤 열 시 반쯤. 다들 침대에 들었을 때, 누군가 숙소의 현관을 요란스럽게 두드렸다. 숙소지기는 퇴근을 한 상태였고, 피곤했는지 귀찮았는지 모른 척하는 건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세 번이나 두드리는 것을 보니, 잘 곳을 못 찾아서인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네 번째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자, 드디어 프랑스인 아저씨께서 내려가셨다. 그리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좀 전 보다 더 크게 났다. 예상하건대, 문이 자동으로 닫혔을 것 같았다. 내려가 보았더니 내 생각이 맞았다. 문을 열어 드리고 한바탕 웃으며 함께 올라왔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둘째 날.

Jaca - Somport 30km. Jaca 알베르게

솜 포르트(Somport)로 가기 위해 티켓 판매소로 이동했다. 직원이 [옐로 부스]에서 티켓을 구입하라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밖으로 나와 옐로 부스(Yellow Booth)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건물 주변을 모두 뒤졌지만 어디에도 옐로 부스(Yellow Booth)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가서 옐로 부스(Yellow Booth)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옆에 서 있던 남자분이 나를 안타깝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왜 쳐다보는 걸까.

고개를 갸웃 거리며 “웨얼 이즈 옐로 부스(Where is Yellow Booth)? “라고 말하려다가 옆에 남자를 보는 순간 입에서 다른 말이 나왔다. “옐로 버스(Yellow Bus)?” 했더니 그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웃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티켓 판매소 직원이 말한 옐로 부스(Yellow Booth)가 옐로 버스(Yellow Bus)라는 것을 알았다. 뭐야, 버스를 부스라고 하는 거였어? 창피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한참 웃었다. 이내 옐로 부스가 나타났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혹여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잊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한 방 맞았다.


솜 포르트 꼭대기에 도착한 후 한 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장엄한 산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설렘, 흥분, 기쁨, 그리고 뭔지 모를 자신감. 아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프랑스 국경 저 쪽 너머를 한 번 휘 둘러보고 배낭을 고쳐 맨 후 걷기 시작했다. 이곳까지 드디어 왔구나. 잘 걸어 보자.

처음 걸음을 걷는 어린아이처럼 정성스럽게 걸었다. 발 뒤꿈치부터 앞꿈치가 모두 닿도록 천천히.


비아 누아라는 동네 어귀에 도착했을 때쯤, 어린 학생들의 싸움을 목격했다. 한쪽 편에 덩치가 큰 친구가 다른 편의 친구를 많이 때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만둬! STOP STOP”

아이들은 낯 선 아시아 여인이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6학년쯤 혹은 중학교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친구들이었다. 싸우던 친구들을 한 명씩 안아주고, 등을 쓸어주면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을 터이라 큰 소리가 오고 갔는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는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내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마저도 나만의 길은 아니었다. 그래. 우리 인생은 누구든 자신의 길에서 자신만의 일을 하면서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관계를 맺든 지나치든 다른 사람들이 그 길에 늘 함께 서 있다. 그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고 있음으로 함께 존재한다.


솜 포르트 국경에서 스페인 쪽은 꽤 높은 산들이 있었다. 멋진 산들을 보니 갑자기 ‘얼마나 오랫동안 저렇게 서로 마주 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했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며 또 서로가 있어서 행복하지 않았니?”

문득 생각나서 물어보았다. 대답해 주지 않았다. 너무 당연해서였을까. 부모님 생각이 났다. 마주 보고 있는 그들. 그분들이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긴 세월 동안 서로 마주 보고 있어서 만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없었던 산들. 그러나 그들은 그 산중을 오가는 수많은 순례자들에게 자신들의 몸을 내어 주고 그들의 발자취를 통해 전해져 오는 서로의 향내를 맡았을 것이다. 순례자들이 이쪽에서 또 저쪽에서 바라보며 멋지다고 말해 줄 때, 이 산들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 기뻤을 것이다. 그렇게 느꼈졌다.

그때 이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고맙다. 멋진 너희들이 여기 있어서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이곳에 와서 널 보고 가게 되어 기쁘다. 여기 있어줘서 고맙다. 안녕-안녕- 이곳에 오게 될 또 다른 친구들과도 그렇게 반갑게 인사해주렴.” 처음 만난 녀석들 하나하나한테 인사를 건넸다. 안녕~안녕. 노래를 하기도 하고, 대화도 나누었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환하게 소리 내어 웃기도 하며 걸었다. 남들이 보면 미친 사람 같았을 것이다. 하긴, 미쳤으니까 이렇게 긴 시간 혼자 걸어보겠다고 여기까지 왔지. 내가 평소에도 이렇게 지나치는 모든 것들과 인사를 잘 나누었던가. 인사가 절로 나왔다.


시골길을 걷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한 무리의 소 떼를 만났다. 그중 한 녀석이 바로 앞에서 코를 땅에 박고 열심히 풀을 뜯어먹으면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녀석의 속도에 맞추어 걸었다. 그 녀석이 움직이지 않는데 녀석을 거스른다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속으로 말했다. ‘조금만 빨리 가주라. 조금만. 너를 방해하지는 않을게.’

그랬더니 정말 그 녀석이 조금 비껴 서며 길을 내어 주었다.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놀랍고 신기해하면서도 얼른 잰걸음으로 녀석을 앞질렀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엔 양 떼를 만났다. 이 양 떼들, 참 놀라운 놈들이었다. 인도하는 목자와 개가 가만히 있으면 양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목자와 개가 인도하는 곳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무척이나 순종적인 그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산, 태양, 소, 양, 나무 친구가 있어 홀로 걸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자연’이 모두 친구였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마을로 들어서면 뭔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자연의 품에서 걸을 때가 확실히 더 평온한 느낌이다.

여기 있어줘서 고맙다.


셋째 날.

Jaca - Santa Cilia 12km. 산타 실리아 Santa Cilia 알베르게

두 시간에 한 번씩은 쉬면서 걸었다. 그래서였을까 발이 편안했다. 마음과 몸이 원하는 바가 다를 때가 많았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만 계속 걸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몸이 원하는 대로만 계속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출발했던 마을이 끝나는 어디쯤엔가 넓은 잔디가 보였다. 가 보았더니 민들레가 지천이었다. 꽃이 지고 민들레 씨를 품은 하얀 솜털들이 가득이었다. 잔디밭 한 편으로 들어가 보았다.

“민들레 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 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 데도 민들레처럼”.

오로지 민들레들만이 나의 노래를 들었다. 그들의 삶을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노래했다.


하카를 벗어나자 길은 자연스럽게 도로 옆의 산 쪽으로 나를 인도했다. 산 중턱에서 식사를 하고 주위 경관과 인사하면서 산타 칠리아에 도착했다. 작고 아담하고 전형적인 스페인의 돌집들이 늘어서 있는, 정감 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저녁나절에는 바(Bar)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주인 아주머님이 고맙게도 토마토 한 알을 챙겨주셨다.

솜 포르트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니베스 일행과 다시 만났다. 이들은 다른 코스를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오늘이 니베스의 생일이라며 식당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녀에게 생일 선물을 주고 싶어서 한반도 책갈피를 찾아 카드와 함께 전했다.

독일로 오기 전, 반크(사이버 외교동아리)에서 홍보용 음식 사진엽서, 부채, 세계 지도를 받아 가지고 왔다. 인사동에서 한반도 책갈피도 구입했다. 그중에서 세계 지도와 독도가 표시된 한반도 책갈피를 가져왔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뜻깊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단지 생일 선물을 했을 뿐인데 무슨 굉장한 일이라도 한 듯이 기분이 좋았다.


내가 길 위에 서 있으면 나 자신이 ‘그 길의 일부가 된다’는 것 ‘그 길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예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예수를 ‘나’라고 바꾸어 읽어 보았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자가 없다”. 이미 길 위에 서 있어서 길과 하나가 되어 있었던 예수였기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오직 예수만 신께 가는 길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미 신과 하나가 되어 걷고 있음을 깨닫고 길 위에 서 있는 ‘나’라는 모든 존재는 ‘길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 안에 크신 분이 계심을, 그러한 나를 바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진리요 생명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불현듯 떠 올랐고 확신하게 되었다.


또 하나, 걷고 있는 길과 하나 되어 서 있으면 건너편 길의 멋진 경관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멋진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 길 위에 서 있기만 하다면.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건너편에 있는 남을 보면 그 있는 그대로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사실, 내가 보아 안다고 느낄 때의 모습조차도 또 다른 상황에서 바라볼 때에는 상이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본 것을 말할 뿐이다.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평가를 할 것이라면 자신만을 성찰하면 그뿐일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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