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나를 부르다
넷째 날.
Santa Cilia -Arteida 24km. 아르 테이다 Arteida 알베르게
동터오는 하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설레어 떠나는 순례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만큼 황홀했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은 개 한 마리 때문에 금방 깨졌다.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에 울타리가 둘려진 마당 안에서 짖고 있는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개가 울타리를 타고 올라서서는 금방이라도 밖으로 뛰어나올 것 같았다. 어찌나 무서운지 우회하는 길에 들어서려고 차도로 나갔다. 그러다 길을 잃을까 봐 걱정이 되어 다시 처음 길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울타리 안의 개는 절대로 나를 넘보지 못할 텐데도 말이다.
마침내 도망치듯 처음 계획했던 대로 집 울타리 옆으로 내 달렸다. 그 집을 지나치고 나서 돌아보니, 그냥 차도로 갔어도 우회해서 만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조금 더 침착하지 못했던 내가 한심했다.
길은 여러 갈래이면서 다시 연결되어 있었다. 미리 겁먹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시작한 하루였지만, 종일 바람과 꿈 때문에 참 고마운 하루였다. 푸엔테 라 레이나 데 하카까지는 도로 옆으로 길이 있었다. 지루하기까지 한 들녘을 몇 시간이고 걷고 나서야 아르테이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 아버지께서는 늘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하셨지만, 나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하며 남의 얘기하듯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경험은 오로지 네 거야. 다른 이들은 살아있는 네 경험, 그것을 듣고 싶어 할 수도 있어.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너는 그저 네 경험을 글로 쓰면 되는 거야. 누구나 그런 거야. 너도 할 수 있어.”
오늘 문득, 아버지의 그 말씀이 떠오르면서 이 길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더 확고해졌다. 길고 긴 들녘을 걸으며 너무나 분명하게 꿈을 꾸었다.
그러다 문득 ‘다 왔구나!’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앞이 정말 깜깜했다. 알베르게로 향하는 마을 길이 눈앞에 높이 펼쳐져 있었다. 기어가다시피 낑낑거리며 어렵사리 알베르게 근처에 도착했다. 오스피탈레로가 저 먼 길 끝에서 환한 얼굴로 환영해주셨다. 마중까지 나와서 반겨주시고는 방으로 안내해 주시며, 등록까지 일사천리로 해주시더니 곧 어디론가 가 버리셔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으신다. 댁으로 가셨나 보다.
짐도 정리하고, 샤워도 했더니 목이 말랐다. 물을 먹고 싶었지만, 숙소에는 식수대가 없었다. 오스피탈 레로 가 계속 안 오신다면 화장실 물을 먹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때 마침 아래층 바(Bar)에서 여자분들 목소리가 들렸다. 물을 얻으러 얼른 내려갔다. 화장실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첫 유럽여행을 생각해 보면 첫날부터 허리가 아파서 자주 앉아서 쉬어야 했었다. 그런데 배낭까지 메고 걷는 여행 첫날부터 오늘까지 허리가 아픈 적이 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왠지 오늘은 마음이 무거운 하루였다. 한적하고 기운 빠지도록 무서운 더위에 고된 지점을 지나는 동안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바람과 함께 고단한 나그네의 무거운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주었다.
알베르게에 이 시간까지 다른 순례자가 오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홀로 산속의 숙소를 지켜야 하나 보다.
다섯째 날.
Arteida-Sangüesa 32km. 상규에 사 Sangüesa 알베르게
홀로 걸어서였을까 힘이 들어서였을까 말할 수 없이 지루할 때가 있었다.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고 싶은 오솔길도 있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자꾸 풀을 헤치며 걷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실체가 보이지 않으니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두렵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천둥소리 같기도 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급하고 빠르며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굽엉!! 총소리 같았다.
엄청나게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힘 없이 길 옆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누가 이 길을 안전하다고 말한 거야’ 라며 괴성을 질러 대면서 벌떡 일어나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내어 본 적 없었던 속력으로 길고 긴 오솔길을 단숨에 뛰었다. 사사사 사사사삭.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내 인생 최초의 초인적인 빠르기였다. 속히 숲을 빠져나가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신히 숲을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헉헉 숨을 내 쉬었다. 놀라움과 분함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멀리 사냥꾼이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쏘아댄 총소리에 놀란 나그네에겐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니 자신이 데리고 온 엄청나게 큰 사냥개가 날뛰는 것에 무서워 떨고 있다는 것에 관심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는 한 손으로 얼른 지나가라는 제스처를 할 뿐이었다.
안전? 에잇. 내 몸뚱이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 몸을 사리고, 두려워 떨고 있었다. 한 마리 동물에 불과한 나 자신을 인정해야 했다. 목사라고 해서 없던 용기가 몇 배로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주체할 수 없이 쿵쾅대는 내 심장을 알아 버렸다. 그래도 초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안쓰러웠다. 내 몸뚱이와 내 영혼 중 무엇이 안쓰러웠을까.
루에스타에 도착할 때까지 하늘은 그야말로 장마철 하늘을 해가지고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바(Bar)에 있던 이가 나를 보고는 밖으로 나와서, 그곳에서부터 상규에 사까지 22km 정도 거리라면서 산을 넘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정말 난감했다. 산에 또 오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선택해야 했다. 얼마나 산중에 있어야 할지를 예상하기 어려워서 걱정이 더 앞섰다. 22km 라면 내 걷는 속도로 산속에서 헤매다가 해가 저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하기 쉽지 않았다. 잠시 돌담 밑에 앉아서 쉬었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가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또 숲으로 들어갔다.
오솔길을 지나고 나니, 큰 트럭이 지나가며 만든 바퀴 자국이 짙은 널따란 자갈길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때 ‘이런 길로만 산을 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 길은 그렇게 쭉 널따란 길로 완만하게 오르막이었다. 다만,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 지그재그로 끊임없이 올라야 하는 길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지쳐서 올라가기 싫을까 봐, 중간중간 힘든데도 바닥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급한 숨을 몰아 쉬며 만족할 때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산속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버텼다. 그렇게 두 시간 만에 오른 곳은 상상했던 가파른 봉우리가 아니었다.
산 정상에서 내리막길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드넓은 평야였다. 아뿔싸. 아직도 멀었구나. 그 높은 지대를 한 시간 정도 가로지른 후에야 내리막길을 만날 수 있었다. 정말 너무하다 싶었다.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이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우스꽝스러웠다. 길을 걷겠다고 제 발로 와 놓고서는 원망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 정말 정말 산이 원망스러웠다.
내리막길에서 동네가 보여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생각에 홀가분하게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세상에 그 동네가 골짜기의 맞은편 산 위에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골짜기를 내려갔다가 다시 마을 위로 기다시피 올라갔다. 그때 마침 한 남자분이 집 앞마당을 쓸고 있었다. 염치 불고하고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했더니 친절하게도 마당을 쓸다 말고 들어가서 가져다주셨다. 정말이지 고마웠다. 평생에 이런 기쁨을 몇 번이나 맛볼 수 있을까.
그는 두 시간 정도 더 가면 상규에 사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두 시간 삼십 분 정도 예상을 하고 걸었다. 오후 5시경이면 알베르게에 도착하겠지 싶어서 무더운 들녘을 지나 지친 몸이었지만 얼른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남은 힘을 다해 걸었다. 가방이 엉덩이 밑으로 떨어져 땅속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마을 초입부터 알베르게를 찾아 환희를 맛보기까지, 꼬박 50분이 더 걸렸다. 이미 너무너무 지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제까지는 마을 초입이 보이면 곧 숙소를 찾는데 문제가 없었다.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은 지나쳤던 어느 마을보다 큰 마을이어서 숙소 찾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배고픔을 달래려고 슈퍼마켓을 다녀왔다. 부엌에 들어서자 눈에 익은 브랜드. L*. 전자레인지가 보였다. 낯선 이국 땅에서 보는 내 나라의 자랑스러운 전자 브랜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왠지 모르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오늘도 하룻길 감사했다. 상규에사까지 오는 길은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다시 산길을 올라야 했을 때 그 산으로 가는 길은 루에스타에서 만난 길처럼 좁고 어두운 것이 아니라 넓었고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을 걸을 땐 마음이 무거워서, 하늘이 보이는 길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걸었다. 그 소원대로 루에스타 오솔길 뒤에는 하늘을 보면서 오르고 올랐다. 그 덕에 다시 하늘을 보면서 황량한 자갈길을 내려와야 했지만.
‘아. 이제 다시 산에는 못 갑니다. 산에는 못 가요’ 하며 걸었더니,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까지 다시는 오르막길이 없었다. 다만, 그늘 하나 없는 길고 긴 평지였을 뿐.
하나의 평안을 얻었고, 다른 하나의 불편을 견뎌야 했다. 모두를 가지기는 쉽지 않은 걸까.
길이 친구였다. 선물인 줄 믿고 걸었다. 선물은 매우 즉각적이었다. 단순한 말 한마디의 기도는 오늘따라 자동판매기 같았다. 믿음대로 된 것일까, 선물이었을까. 어느 쪽이었든 그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