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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아임 와칭 유I'm watching you

      

  돈을 던졌다. 돈벼락을 꿈꿔보긴 했지만 달랑 한 장이 날아들 줄은 몰랐다. 그것도 천 원짜리로.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주워들고 뒤돌아보았을 때 그 여자는 잔돈은 됐어요, 라는 말만 남기고 벌써 저만치나 가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알파벳의 첫 번째와 세 번째를 연달아 나직이 읊어댔다.

  이렇게 참다가는 아마 몇 달 후에 내 뼈 마디마디에서도 사리가 나오지 않을까, 이러다가 나도 부처가 되는 거 아닐까, 싶었다.


  내가 주차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게 된 첫 번째 진상손님인 그 여자. 다시 보게 된다면 뿌릴 거면 큰돈이나 뿌리지 겨우 천 원이 뭐냐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아마 쫄보인 나는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날 속은 더 부글거리고 오래도록 주먹이 꼬옥 쥐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놈의 뻘겅 차. 아무리 털어버리려 해도 잘 되지 않아 그 날 하루를 몽땅 망쳐버렸던 그 망할 놈의 차가 또 나타났다. 낯짝도 두껍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차라인도 그려있지 않은 초소 바로 옆 자리에 차를 주차하고 그 여자는 자리를 떠났다. 도대체 뭘 먹어야 저렇게 싸가지가 없어지는 걸까. 도대체 뭘 어떻게 배워야 저렇게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고도 다시금 나를 대하며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이를 뿌득뿌득 갈며 그 차로 향했다.


  차는 그녀의 입술처럼 유난히도 빨갛게 번뜩였다. 너는 어쩌다가 그런 싹퉁머리 없는 주인을 만났냐고 물어도 대답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와이퍼를 살짝 들어 주차표를 꽂은 후, 차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주위도 슬쩍 살폈다. 나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는 이때다. 애꿎은 차바퀴를 힘껏 뻥 차주었다. 그러고선 냅다 도망쳤다. 


  복수라는 이름을 가진 자학행위였던가. 찰진 고무바퀴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고 외려 내 발만 아팠다.

  그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범행은 아니었다. 그저 그 여자의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뻔뻔함이 미웠을 뿐이고, 하는 짓은 미운데 얼굴은 무엇 하나 모난 데 없이 예쁜 것에 열 받았을 뿐이고, 그리고 유난스럽게 빨간색이 나를 유혹했을 뿐이다. 


  그런데 초소에 돌아와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픈 발을 주무르다 보니 슬슬 생각이 많아졌다. 그깟 발길질 한 번에 속은 후련해졌는데, 행여나 그 여자가 알게 되면 어쩌나 싶어 슬슬 걱정이 몰려왔다. 그러다가 문득 그 차를 돌아본 순간 나는 어떤 눈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지나가는 행인1도 아니고, 행인 2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여자도 아닌, 그것은 바로 블랙박스. 그리도 주위를 살폈건만 가장 예리하며 기억력 끝내주는 눈 하나를 놓치고 만 것이다. 


  설마, 설마 저 눈구녕에 내 유치찬란한 행동이 고스란히 담긴 건 아니겠지. 아냐, 앞도 아니고 옆인데 찍혔을라고. 아냐, 요즘에는 사방이 다 찍힌다던데. 아냐, 저 차에 렌즈는 저기 앞에 있는 거 하나였어. 그래도 어찌어찌 그 여자가 이 일을 알고 너 이리 나와. 감히 내 차를 발로 차. 너 죽고 나 살자. 내 머리끄덩이 잡고 흔드는 건 아닐까. 에이, 한번만 참을 걸. 한번만 그냥 저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넘길 걸.  


  되돌릴 수 없는 후회, 쓸데없는 걱정 따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 깊은 시름에서 구원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했다. 잔머리를 굴려 먼저 휴대전화를 이용해 블랙박스 용량을 검색해보니 웬만한 제품의 저장기간이 겨우 몇 시간에 불과했다. 그 글을 읽고서야 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다시 걱정이 잔가지를 쳤다. 저 블랙박스는 완전 신형에 메모리가 빵빵한 거면 어떡하냐.


  결국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했다. 절대 그 여자가 블랙박스 열어볼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블랙박스 파일이 깨끗하게 지워질 수 있도록, 혹시 모르니 더도 말고 딱 석 달만 무사고로 안전운전하게 해주세요. 나는 뜻하지 않게 그 여자의 안전을 기원하고 말았다. 그것도 석 달씩이나. 


  보는 눈을 감지하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했던 그 날, 나는 미친 척하고 떡판에 엎드렸다가 동네방네 창피를 떨 뻔했다. 겨우 여섯 달 일하다가 생긴 일이다. 그런데 다시 백수가 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별일이 아님에도 살짝 오금이 저리곤 한다. 아니, 제대로 치밀하게 계산하여 복수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요즘엔 온갖 곳에 눈이 달려있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눈이 아닌 척 숨어있고, 못 본 척 내색 한 번 하지 않지만 늘 지켜보고 있다. CCTV라는 이름으로, 블랙박스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것들은 영어이름 가졌다고 영어로 조용히 경고한다. 아임 와칭 유I'm watching you,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그러니 잘 살아 볼 일이다. 언제나 정의롭게. 언제나 착하게. 


  그리고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정당방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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