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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제 Jul 26. 2020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해서 미안해!

오늘도 아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합니다.


일요일 아침, 이상하게 눈이 일찍 떠졌다.  오전 6시 30분. 침대에 그대로 누운 채, 간밤에 일어난 사건 사고 소식들을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뉴스를 통해 읽었다. 요즘 내가 관심있는 뉴스는 단연 부동산 가격 상승에 관련된 뉴스다. 나이 30살에 그저 오늘 하루 먹고 살 돈밖에 없는데, 부동산가격은 계속 오른다. 시중에는 경기부양을 위한 수많은 돈이 풀리고 있고, 돈의 가치는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안그래도 X도 없는 내 은행잔고는 줄어만 간다. 



답답한 마음에 부동산값 상승에 관한 기사를 부모님께 공유해드렸다. 곧바로 카톡의 숫자 '1'이 사라지고,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모님과 나는 평소에도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항상  똑같은 소리를 한다. '돈! 돈! 돈!이 중요한 거라고.  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룰거라고.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남이 아닌 나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고. 내 꿈을 믿어달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꼭 보여드리겠다고!'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줄곧  돈을 좇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덕분에 나는 돈 걱정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든 필요하면 용돈이 손에 쥐어졌고, 갖고 싶은 장난감도 마음껏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집안 창고 한켠에는 내 어릴 적 장난감이 수북이 쌓여있다. 공무원인 어머니와 교수인 아버지의 직업적 안정성 덕분에 나는 돈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되면서 돈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서울에는 부자가 많았고, 나는 그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돈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돈은 곧 시간이었고, 생각과 상상력의 크기를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였다. 나는 아직도 건물주 아들이었던 선배의 말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필요하다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고용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공부하면 된다.



그 선배를 만나기 전, 나는 열심히 공부만 한다면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런데, 좋은 직장에 취업해도 나는 평생 온전히 내 시간을 살 수 없다. 선배처럼 더 큰 생각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 시간을 헌납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그 날 이후 나는 내 시간을 절대 월급과 교환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루에도 수없이 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남들이 '도대체 얘는 뭐하는 얘야?'라고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나름대로의 도전과 실험으로 가득 채워가고 있다. 아직 눈에 띄는 결과는 없지만, 그리고 이 길이 틀린 길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삶을 오롯이 나를 위해 사는 길인 것만은 확신이 든다.


풍수지탄(風樹之嘆): 
효도하고자 할 때에 이미 부모는 돌아가셔서, 효행을 다하지 못하는 슬픔을 뜻하는 사자성어


스피커폰 너머로 조용히 아들의 말을 듣고 계셨던 엄마가 한 말씀하셨다. "너가 말한대로 돈 많이 벌어서 효도할 때쯤 되면 부모는 이미 떠나고 없을 수 있어." 말문이 막혔다. 정말 그럴 수 있다. 내가 지금 꿈꾸는 것들은 말 그대로 '뜬구름 소리'에 불과하니까. 일요일 아침, 두 시간 동안 이어진 부모님과의 통화는 그렇게 엄마의 '팩트폭행'과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내 구차한 변명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내 길을 묵묵히 갈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런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곧 결과로 보여줄께!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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