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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Jan 19. 2022

어떤 가방을 들래?

이민가방과 이케아 침대와의 사투, 그리고 두 남자들


2016년 9월


일주일 동안 짐을 쌌다. 추리고 또 추려서 짐을 쌌음에도 출국날 내 손에는 23Kg 짜리 이민가방 두 개와 약 20Kg인 캐리어 하나가 들려있었다. 터지지 않도록 각각의 가방에 벨트를 매야 했다. 한국나이로 29살이나 (쳐)먹은 나는 60세가 넘은 아버지가 일일이 벨트를 채우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아버지는 내가 나설라치면 본인이 척척 해냈다. 그것은 내가 평생을 살아온 방식이었다. 나는 전구를 갈아본 적이 없었고, 드라이버로 나사 하나 조여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칼만 봐도 지레 겁을 먹는 어른으로 자랐다. 한국에서 마지막 날까지도 나는 남성적인 아버지 뒤에 숨어버린 어린 아이였다.



총 64Kg에 육박하는 세 개의 짐을 공항 카트로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택시를 타기로 하였다. 택시를 타고 학생 임대 주택 앞으로 가면 핀란드인 튜터를 만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외국인 신입생을 위해 배정해준 튜터가 나의 집 키를 가지고 올 예정이었다. 내가 사는 집은 아파트에서 3층이었고 엘레베이터가 없었다.



저 멀리서 샛노란 말총 머리를 한 사내가 뚜벅 뚜벅 걸어왔다. 그가 바로 나의 튜터였다. 그는 헤이키라고 소개를 하며 키를 건넸다. 그리고 세 개의 짐을 보더니 옮기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는 키가 170인 나보다 약 20센티는 커보였고, 다리는 젓가락처럼 가늘었으나, 그가 ‘그’라는 이유로 나는 당연한 장면을 상상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물었다.


어떤 짐을 들래?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에 있을 때 남성으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신선한 질문을 곱씹다 대답할 시간을 놓쳤다. 그러자 그는 두 개의 23킬로 짜리 이민가방 중 하나를 들었다. 20킬로 짜리 캐리어와 23킬로의 이민가방이 남았다. 나는 23킬로의 이민가방을 택했다. 그에게 대답하진 못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나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사한 직후, 나는 우연히 옆동에 사는 중국인 친구를 알게 되었다. 길치인 내가 버스정류장에 내려 우왕좌왕 하자 그는 대뜸 손가락으로 기숙사를 가르켰다. 그 손가락 너머에 '너도 유학생이지?' 라는 질문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이케아 침대를 반절 밖에 조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자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우리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조립을 하였다. 나는 가만히 있어야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서자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였다. 침대 프레임의 무거운 부분을 들라쳐도 손사레를 쳤다.


핀란드인 튜터와 중국인 친구 사이에 나는 익숙함과 낯설음의 경계를 보았다. 한쪽에는 과보호를 받고 자란 내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언제나 그것을 부정하며 강인한 여성을 표방하고자 한 내가 있었다. 핀란드에 도착하자 그 경계가 선명히 보였다. 그동안 나는 그 경계가 없는 척을 했는지도 모른다. 독립적이고 강인한 인간으로 나를 설명해왔고,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 삶 속에는 남성적이고 어떤 면에선 지배적인 아버지가 있었다. 노란 말총머리 사내를 만나고나서야 아버지 뒤로 자주 숨어있던 내가 보였다.




이케아 침대 조립 초보의 패기 그리고 세 개의 짐, 나의 첫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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