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_2016-2020 핀란드에서 생긴 일
2016년 8월 18일. 광복절이 지나고 꼬박 3일 후 나는 인천공항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떠나는 핀에어 항공기를 탔다. 한국나이로 30살을 앞둔 때였다. 약 9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2시 쯤, 이민가방 2개와 캐리어 1개와 함께 반타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학생주택으로 가는 길 내내 창 밖에는 나무와 또 나무 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나의 미래엔 '다시 서울'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2017년도에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늦깎이 교환학생으로 4개월을 보냈다. 2018년도에는 헬싱키에 위치한 미국식 바비큐 레스토랑의 접시닦이 일과 다큐멘터리 한/영 번역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석사 논문을 마무리했다. 2019년도에 연애를 하기 바빴고 2020년도에는 애증의 관계였던 핀란드와 드디어 결별했다.
2021년의 절반이 지난 지금, 나는 핀란드를 추억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에서 핀란드의 기억 한 조각이라도 추억할 만한 감각을 찾지 못했다. 서울에서는 내가 원한적 없는 감각이 상시로 나의 눈, 코, 귀를 자극한다. 길거리에 듣고 싶지 않은 음악과 맡고 싶지 않은 냄새와 부딪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다. 이곳에서 무색무취의 핀란드를 떠올릴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핀란드에서 기억을 글로서라도 붙잡고 싶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핀란드와 나와 관계를 풀어내고 싶었다. 애증이라는 단어 말고도 복잡하게 얽힌 핀란드와 나의 관계를 여러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핀란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누군가는 그렇게 묻겠다. 이런 질문에 핀란드 없는 핀란드 이야기라고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답을 하고 싶다. 핀란드 이야기만 하기엔 여전히 나는 '나'를 떼어놓고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핀란드에서 30대를 맞이한 사람이자, 여성이자, 외국인 유학생이자, 아시안이자, 사람 관찰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자, 경험주의자인 어떤 이에 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