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nfonia Feb 15. 2022

아버지가 묶어준 나이키 운동화

핀란드에서 4년을 함께한 운동화, 절대 풀리지 않는 마법  

2019. 8


신발끈으로 단단하게 조여진 나이키 운동화를 볼 때마다 아지를 떠올린다. 매무새가 항상 엉성한 막내딸이 못 미더워 아지는 나이키 운동화의 끈을 대신 묶어줬다. 그런 아지를 뒤로 하고 운동화만이 핀란드에 따라왔다. 아버지가 마법을 부린 걸까. 몇 년이 지나도 운동화는 좀체 끈을 놓을 줄 모른다. 절대 풀리지 않는 리본을 만지며 아버지와 똑 닮은 나의 손을 바라본다. 핏줄이 불거진 마른 손등, 긴 손가락, 양쪽으로 살짝 튀어나온 손마디. 하지만 그와 그렇게도 닮은 그 손은 항상 어설펐다. 아버지는 손이 느리고 굼뜬 딸을 미리 걱정했을랑가.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나의 별명은 '발타쿠'였다. 새로운 곳에 가면 발을 찍는 버릇이 있다. 나이키 운동화와 함께한 핀란드의 4년도 사진으로 남았다.


아버지가 표현하지 못한 말을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며 듣는다. 아마도 아버지는 여러 번이고 투박하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열두 살 난 딸의 방학과제인 고무동력기를 밤새워 만들었을 때에도, 인천공항에서 스물여덟 먹은 딸 대신 캐리어에 벨트를 조일 때에도, 아버지는 사랑을 말했다. 지난주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현재 불안한 마음을 잔뜩 늘어놓았다. 잠을 쿨쿨 자는 것 같았던 아버지는 딸의 걱정거리에 벌떡 일어났다. 대뜸 불호령을 냈다. 서둘러라. 무얼 망설이느냐. 노력해라. 여전히 투박하고 날카로운 우리 아버지. 그 말을 듣고서야 생산적인 한 주를 시작한 나도 지독한 막내딸이다.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는 나는 여전한 어린 딸이다.





알토대학교 오타니에미 캠퍼스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RIP 나이키 운동화 (2015. 1 ~ 2020. 12)

이 나이키 운동화는 나의 영화제 시절부터 핀란드 4년까지 함께한 녀석이다. 핀란드의 학생 스포츠센터인 유니스포츠에서 운동을 할 때나, 기숙사가 위치한 오타니에미의 산책로를 친구와 떠들며 걸어갈 때도 나이키 운동화가 있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를 걸쳐서 5번을 이사하며 나는 본의 아니게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달팽이처럼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다녔지만 낡아빠진 나이키 운동화를 버릴 수 없었다. 이 녀석은 결국 핀란드에서 한국행 핀에어까지 타고 왔다. 용케도 미니멀리스트의 선택에 매번 살아남았다. 한국에 와서 보니 구멍이 나고 밑창의 바람이 다 빠진 나이키 운동화는 내가 놓아주어야 할 과거였다. 그는 온몸으로 핀란드에서 4년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만 킬로미터를 함께한 나이키 운동화와 작별했다. 버리는 순간까지도 아버지가 묶어준 리본은 단단했다.

이전 02화 어떤 가방을 들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