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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Feb 21. 2022

틴더렐라의 첫 여정

북유럽의 혹독한 겨울에서 생존하는 방법, 어떻게 배웠냐고요?

틴더렐라의 여정은 누군가의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언니, 틴더 왜 안 해요?"


2017년 오슬로에서 교환학생을 했을 때 만난 한국인 동생이 물어보았다. 그녀는 나보다 7살이 어렸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런 만남' 좋아하지 않는다고 꼰대 같이 말했다. 사실 난 이미 틴더를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나의 그리스인 룸메이트는 틴더로 만날 남자들의 신상을 읊어주곤 했다. 그녀가 요란하게 꾸민 날에는 어김없이 틴더 데이팅이 있는 날이었다. 룸메이트는 언제나 나에게 '오늘도' 별로라고 했다. 그런 후기 때문에 나는 선비 같은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 오슬로에도 봄이 찾아왔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내 마음에도 눈이 녹았다. 교환학생 기간이 한 달 남은 무렵이었다. 한국인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틴더를 다운로드하여서 프로필을 작성했다. 얼굴이 잘 나온 듯 아주 뚜렷하게 나오지 않은 사진을 대강 올렸다.


많은 남자들이 사시사철 여름인 나라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유럽에서도 북쪽 끝에 사는 그들에게 '쿨함'은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 가는 정도쯤이었나 보다. 사이클을 타거나 서핑을 하거나 실내 암벽 등반을 하는 사진도 많았다. 그 사진을 올림으로써 그들은 건장한 체격을 자연스럽게 자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유럽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프로필로 지정해놓듯, 어떤 부류는 일본의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공개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적당히 문화적으로 열려있으며, 건강한 취미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 했다.


다음으로 많이 본 이미지 메이킹은 요리를 잘하는 '요섹남'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 알게 된 유럽 남자들은 하나 같이 요리를 잘한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요리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 평등을 지향하는 남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동급이었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인상적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개 '요섹남'으로 본인을 포장하였다.


독일 베를린에서 본 틴더 광고. Single does what single wants. '동네친구'를 사귀라는 한국 틴더 광고와 대조적이다.


나는 틴더 마케팅에 아주 잘 넘어갔다. 짐작컨대 틴더는 처음 가입한 사람에게 최상의 후보를 보여준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길거리를 걸어만 다녀도 구척장신의 라떼 파파들이 유모차를 명품백 마냥 멋지게 끌고 다니는 나라였다. 그러니 싱글남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그들이 유난히 외모가 뛰어나서 멋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들의 넓은 어깨와 긴 다리에 압도당했다는 말이 알맞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슈퍼라이크'라는 것을 받았다. 틴더에서는 서로 '라이크'를 눌러야만 매칭이 된다. 내가 '라이크'를 해도 상대방이 날 '라이크'를 하지 않는다면 매칭이 되지 않는다. 슈퍼라이크는 그런 것과 관계없이 내가 상대방을 '라이크'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린다.  


나를 슈퍼라이크한 남자는 프로필에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청년으로 자신을 묘사했다. 호기심에 슈퍼라이크에 응했다. 몇 번의 채팅이 오갔고 나는 교환학생 신분임을 밝혔다. 너와 내가 지속적인 관계가 될 수 없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런데도 그는 데이트를 제안했다. 오슬로를 떠나기 3주 전이었다. 나는 그 남자가 무엇 때문에 날 슈퍼라이크를 했는지 궁금하여 데이트를 수락했다.


 남자가 지정한 바가 있는 지역은 교환학생의 신분으로선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오슬로의 젊은이들이 넘치는 와인바였다.  남자는 머리부터  끝까지 검은색으로 입고 있었다. 나보다 하얗고 예쁜 얼굴을  남자였다.


그 남자의 범상치 않은 스타일에서 짐작을 했다. 그는 나와 매우 비슷한 사람이었다. 예술을 공부하고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이미 그 남자의 길고 흰 손가락에서 느꼈다. 나는 오늘 이 사람과 친구처럼 수다를 떨다 오겠구나 싶었다. 나는 원래 동족에게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와인을 두 잔 정도 비웠을 때였다. 지금이 헤어질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일어나자고 말을 했다. 와인바를 나서서 그 남자와 오슬로의 시내 중심부를 걸으니 나도 오슬로의 젊은이들 무리에게 그럴듯하게 섞이는 것 같았다. 교환학생, 외국인, 임시거주자 등의 딱지를 잠시 뗀 것 같았다. 섞이는 기분도 나쁘지 않은 걸. 그렇게 생각할 때 즈음 그는 자신의 집에 가서 한 잔을 더 하자고 권했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3주 남은 시점에 다음은 있을 수 없었다. 그나 나나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쉬운 듯 포옹을 하였다. 그때 나는 이미 틴더의 사랑법을 깨우쳐야 했을까? 3주면 떠날 사람과의 데이트를 하는 그 남자의 마음. 와인 두 잔을 마셔도 또랑또랑한 나의 정신. 두세 시간만큼의 애정을 담은 포옹. 어떤 사람이냐보다 어떤 손가락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 그저 이런 짐작 만으로 틴더렐라의 첫 데이트는 끝났다.


틴더렐라는 그 이후 두 번의 겨울을 더 보내야 했다. 핀란드의 겨울은 길고 어두웠다. 핀란드의 기나긴 겨울에 생존하는 방법은 각자의 성에 사는 사람에게 손을 뻗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틴더렐라는 다른 사람의 성으로 가고자 '라이크'를 눌러야 했다. 그렇게 틴더렐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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