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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Feb 27. 2022

빨래를 걷어야 한다며 떠난 그들

틴더렐라의 여정 (2) - 잘못된 땅으로 왔다  

틴더렐라가 처음 틴더를 킨 곳은 오슬로였다. 그곳의 남자들은 정글의 법칙 김병만과 같았다. 무슨 일인지 모두들 웃통을 벗고 있거나 태국이나 베트남의 어느 열대 도시에서 하와이안 셔츠 따위를 입고 있었다. 과연 바이킹의 민족인가. 그녀는 날 것의 후보군에 꽤 만족했다. 그러나 핀란드의 후보군은 결코 그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핀란드에서 틴더를 켠 지 3일 만에 삭제했다. 


몇 개월이 다시 흘러 그녀는 핀란드에서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였다.  5월 중순에도 눈은 지겹게 내렸다. 핀란드는 사람의 체온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다시 틴더를 켰다. 


틴더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한다. 당신이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대답할 수 있었다. '틴더를 켜보시오' 한국에서 소개팅 혹은 자만추 등의 지극히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루트로 연애를 했던 그녀도 스스로 자신이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없었다. 나를 매물로 내놓은 적도, 매물로 나온 남자들을 골라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약 3개월 정도 라이크를 열심히 누르고 데이트를 했을 때 깨달았다. 


'나는 잘못된 땅으로 왔다'


그녀가 고른 남자들은 다음과 같았다. 짙은 머리색의 꼬불꼬불한 머리칼에 수염을 가졌으며 사슴 같은 큰 눈에 긴 속눈썹을 휘날리는 이들이었다. 대부분 핀란드에 사는 외국인이었다.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핀란드인을 찾긴 매우 어렵다. 출처: Very Finnish Problems


게다가 핀란드 남자와의 데이트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참하디 참한 남성들이었다. 여자에게 선택을 받고자 기다리는 수동적인 남성들이었다. 데이트 때 도무지 그들의 호감 표시를 읽을 수 없었다. 소극적인 태도와 무표정을 보고 어느 정도 결론을 짓고 데이트를 끝마치려고 하면 갑작스럽게 다음번에 봤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자도 있었다. 틴더렐라가 어릴 때 보았던 유럽 영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은 그곳에 없었다. 그들은 술 한 잔 함부로 사지 않았고 추파 하나 던지지 못했다. 여자들의 경제력을 함부로 낮잡아 보지 않았으며 젠 체를 하며 추파를 던지는 일만큼 남자로서 추잡스러운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현실적인 가사가 현실이 되는 곳, 핀란드


여기에 그들의 스테레오타입까지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들은 대체로 무표정했고 지나치게 정직했다. 틴더렐라의 동지였던 그녀의 친구는 데이트 중에 남자가 '빨래를 걷으러 가야 한다'라고 하여 데이트를 마쳤다고 했다. 양준일의 노래 속 가사가 현실이 되는 곳이었다. 심지어 빨래를 걷으러 간 남자는 그녀의 친구에게 만나고 싶다며 다시 연락을 했다. 변명이 아니라 정말로 빨래를 걷으러 간 것이었다. 달콤한 거짓말을 꾸며내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틴더렐라와 그녀의 동지들은 우스갯소리로 핀란드엔 김태희가 와도 데이트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핀란드 남자들은 그만큼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은 애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여권이 발달한 나라에서 남자들의 역할이란 조신하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틴더렐라는 항상 비슷한 데이트와 패턴에 지쳐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핀란드 남자들의 무표정에 지쳤다. 핀란드에 왔다고 핀란드 사람만 만나란 법은 없다. 그녀는 틴더가 가르쳐 준 욕망에 충실하기로 했다. 금발과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은 잠시 뒤로 하였다.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지만 그녀는 핀란드 데이트의 법을 거스르기로 했다. 대신 틴더가 말하는 게임의 법칙에 충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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